‘진격의 회계’에 가려진 빈부격차의 그림자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이 진부하기 그지없는 클리셰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회계제도 개혁에도 적용되는 모양새다. 오는 2020년 일정 기간 국가에서 지정한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도록 하는 ‘지정감사제’와 상장사의 감사 자격을 제한하는 ‘감사인 등록제’ 시행을 앞두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열세한 기업과 회계법인 양쪽에서 아우성이 들려오고 있다. [편집자 주]

 

남기권 중소회계법인협의회장이 안중근 의사의 '인무원려 난성대업'(멀리 앞을 보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글귀가 적힌 액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사위크>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말살정책’, ‘오판’, ‘몰아주기’. 앞으로 회계 시장의 판도를 뒤바꿀 회계개혁이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다소 강한 표현들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만큼 최근 중소회계법인들이 놓인 상황이 시급하다는 반증일 터. 임기 1년을 맞은 시점에서 감사인 등록제라는 거대 이슈와 맞닥뜨리게 된 남기권 중소회계법인협의회장은 회원사들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 27일 자신이 대표직을 맡고 있는 서울 구로구 신도림에 위치한 진일회계법인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남 협회장은 국내 대다수 회계법인의 운명을 좌우할 감사인 등록제에 대한 소견을 가감 없이 털어놨다.

- 요즘 중소회계법인 분위기가 말이 아닐 것 같다. 어떤가.

“초상집 분위기다. 중소회계 법인 말살정책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전체 186개 회계법인 중 152개가 40인 미만의 회계사를 고용하고 있다. 82%가 탈락 대상이다. 회계사의 수가 문제가 아니다. 인원이야 M&A 등을 통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해도, 그 다음 문지방이 또 있다. 금융위에서 통합관리체계까지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건 지점별로 파트너십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중소회계법인으로서는 상당한 제약이 따르는 일이다.”

-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사나 수입, 지출 등의 의사결정 권한을 일원화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나.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조직 관리 차원이 아니라 회계 투명성이라는 측면을 놓고 봤을 때, 대형회계법인과 같은 ‘원펌조직’보다 중소회계법인의 ‘파트너십조직’이 더 우수한 면이 있다. 원펌조직은 담당 이사의 견제장치가 작동하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수직된 의사결정으로 감사의견이 통제된다는 단점이 있다.”

-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회계법인에 소속된 회계사들 역시 여느 직장인들과 다르지 않다. 개개인이 전문 인력인 회계사들 역시 회사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자신이 감사한 기업의 문제를 지적해도 위에서 (기업과의 관계를 고려해) 적정 의견을 내면 그걸로 끝이다. 중앙 집권적인 대기업에서 조직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은 것처럼, 회계법인 역시 자금과 인사권이 통제되면 이는 감사의견이 통제되는 부작용을 낳을 개연성이 높다.”

지난 27일 서울 신도림에 위치한 진일회계법인 사무실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남 회장의 모습. 남 회장은 40명을 기준으로 한 감사인 등록제도는 중소회계법인을 말살하려는 정책과 다른 없다며 금융 당국이 제도를 보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시사위크>

- 이번 회계개혁의 배경에 된 대우조선해양 사태도 ‘빅4’ 회계법인 중 하나인 딜로이트 안진의 부실감사에서 촉발된 것 아닌가.

“정부가 개혁대상을 오판하고 있는 셈이다. 부실감사 사건의 개혁대상인 대형회계법인에는 아무런 개혁조치 없이 중소회계법인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인원 문제에 있어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금융위는 고용된 회계사의 인원을 주사무소(본점) 기준으로 두고 있다. 지방에서 이 기준을 충족시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지방소재 상장사는 서울에서 감사해야 한다. 이는 비용 증가를 불러오는 것은 물론 감사시기에도 제약이 따른다.”

- ‘40명 기준’을 골자로 한 이번 ‘감사인 등록제’는 문재인 정부의 색깔에도 맞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회계법인) 보다는 대기업, 지방보다는 수도권에 유리한데.

“한마디로 대형회계법인에 일감몰아주기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2,100여개의 상장사 가운데 730개(35%) 정도를 중소회계법인이 담당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몰수당하고 향후에 배정받지 못할 처지에 놓쳤다. 여기에 정부는 “지점 남설을 방지한다”는 명분 아래 인원을 주사무소에 한정해 감사 등록의 문턱을 더욱 높였다. 상장사 감사 자격을 얻지 못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비등록법인에는 ‘2류 회계법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세무나 경영컨설팅 등 각종 업무에서 배제되는 2차 피해가 발생하게 될 거다.”

- 이런 각종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40명을 기준으로 삼아 감사인 등록제를 시행하려는 이유가 무엇이라 보나.

“우리도 그 부분이 궁금하다. 금융위 포함 어디서도 여기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일단 큰 회계법인 일수록 회계 품질이 좋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회계법인의 조직 규모와 감사품질과의 연관성은 증명된 바 없다.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문도 상당 수 존재한다. 오히려 대형사고는 큰 데서 치지 않았는가.

혹시 지정 감사제도 시행과의 연관성이 있는 게 아닌가란 조심스런 추측이 든다. 감사인을 지정한 정부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한 두려움이 정책 입안자들에게 깔려 있을 수 있다는 거다. 만약 정부에서 지정한 감사인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금융 당국 역시 주주나 채권자들로부터 비난 여론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이 경우 ‘작은 법인 보다는 아무래도 큰 법인들이 사태를 수습하는 데 좀 더 유능하지 않겠나’라는 일종의 방어심리가 작용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 그렇다면 중소회계법인에서 생각하는 ‘올바른’ 감사인 등록제의 대안은 어떤 건가.

“새로운 정책이 시행되면 최소 대상의 반은 끌고 가야 한다고 본다. 합병이나 인원확충이 촉박하므로 초기엔 20명 기준이 적정하다는 생각이다. 여건상 40명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면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방안을 강구해 주길 요청 드린다. 3년 뒤 30명으로, 6년 후 40명으로 늘려가는 식이다. 또 회계사의 경력을 반영한 ‘감사인점수’도 적용하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다. 경력 1년차 40명과 20년차 40명의 감사품질은 같을 수 없다. 단순히 인원 수 만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공인회계사들의 직급에 맞는 적정한 점수치를 반영해주길 당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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