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7 19:07 (월)
[사건 in 현장] 거리농성 300일,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의 고단한 기다림
[사건 in 현장] 거리농성 300일,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의 고단한 기다림
  • 조나리 기자
  • 승인 2018.08.3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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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오후 1시 국회 앞에 자리 잡은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진상규명 촉구 농성장. <조나리 기자>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오는 9월 1일이면 300일이다. 너무나 추웠고, 너무나 더웠던 나날이었다. 무엇보다도 애써 외면하며 지나치는 국회의원들의 발길이 야속했다. 고작 300일뿐이었으랴. 국회 앞에서 무기한 농성을 하고 있는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대표는 “익숙하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부터 1인 시위를 시작, 아무도 몰랐던 형제복지원 사건을 고발했다. 그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도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5년간 고민만 하고 있던 종선 씨를 움직였던 것은 영화 속 대사 한마디였다.

                    “자네는 지금까지 꿈만 꿨기 때문에 나에게 인질이 되었던 것이다.”

그 사이 대통령도 두 번이나 바뀌었다. 방송에 사건이 보도되면서 관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 나섰던 1인 시위 당시 그의 외침은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피해자들을 짐승처럼 만들었으면 다시 사람이 될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 씨는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재조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촉구하는 것이 바로 그 사건에 대한 조사다”라고 말했다. <조나리 기자>

◇ “형제복지원 재조사? 시작도 한 적 없는데..”

29일 오후 국회 앞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형제복지원 생존자 한종선 씨와 최승우 씨를 만났다. 허리를 푹 숙이고 들어간 천막에서 기자를 포함해 종선 씨와 승우 씨가 겨우 마주보고 앉았다. 전날 폭우로 선선해진 날씨와 달리 안은 땀이 날 정도로 더웠다.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던 승우 씨는 “이번 겨울이 정말 추웠는데 여름도 힘들었다”면서 “그나마 추울 땐 이불속에 있지만 더울 때는 아무 것도 못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엔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비상상고하는 방안을 논의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비상상고’란 확정된 형사사건 판결에 법령위반이 발견된 경우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상고하는 절차다. 당시 특수감금과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를 받았던 박인근 원장에 대해 횡령만 유죄를 인정한 대법원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 검찰은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윗선의 외압 등을 수사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다소 아쉬움을 나타냈다. 종선 씨는 “꼭 필요한 절차긴 하다”면서도 “엄밀히 말해 지금 검찰이 재조사하는 사건은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즉, 현재 검찰이 조사하는 사건은 고(故)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 개인 비리 사건 당시 수사 외압 여부라는 것. 그는 “언론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 재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하고 있지만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제대로 조사한 적이 없다”면서 “지금 우리가 촉구하는 것이 바로 그 사건에 대한 조사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물론 박인근 원장의 비리 사건에 수사 외압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번 재조사에서 밝혀진다면 자연히 형제복지원 수사도 외압이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만약 외압이 없었다고 결론이 난다면 정말 막막해진다”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종선 씨가 우려하는 이유는 지난 6년간 지금과 비슷한 과정들을 여러 차례 겪었기 때문이다. 종선 씨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순간들이 많았다. 방송을 통해 사건이 알려지고, 외신도 취재를 오고 실제로 법안도 입법됐었다”면서 “그런데 지금 결론을 보면 사건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다. 또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 씨. 그의 목에 걸려있는 ‘세월호 리본’이 눈에 띈다. <조나리 기자>

◇ 정부에 서운해도 말 못해… “우리는 투명인간”

부산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은 대부분 밖으로 자신을 내보이지 않는다. 지금이야 조금 달라졌지만 몇 년 전만해도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에 대한 인식은 ‘부랑아’에 머물러 있었다. 이 때문에 자신이 형제복지원에 있었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생존자들은 각종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승우 씨는 “우리들은 유년기, 청소년기를 그곳에서 감금당하면서 매일 살아남는 게 목표였던 사람들”이라며 “눈치 보는 게 일상이고, 억울해도 말 못하고, 시키는 일만하는 그런 노예 같은 삶을 살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새정부 들어 부산부터 청와대까지 국토대장정을 하고 진상규명에 대한 기대가 굉장히 높았다”면서 “그런데 청와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아무런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그랬으면 우리가 300일 가까이 여기서 거리생활을 하고 있겠는가”라며 씁쓸해했다.

정부에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색하기도 힘들다.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게 두 사람의 대답이다. 종선 씨는 “어떤 사람들이 그러더라. 왜 전 정부에서는 조용했다가 지금 와서 그러냐고. 그저 답답하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시작한건데”라며 “그래도 정부에는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정부도 적폐청산을 내건 만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고, 그걸 방해하고 싶지 않다”라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방송에도 소개되고, 외신에서도 보도가 되며 관심을 받았다. 이 시기 법안도 발의가 됐지만 통과되지는 못했다. 사진은 2016년 4월 27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 그래도 희망은 있다... 꿈꾸는 생존자들

승우 씨는 인터뷰 중간 중간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기자의 모습을 열심히 찍었다. 이유를 묻자 자신들의 투쟁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고 싶다고. 벌써 스마트폰 사진첩 용량이 다 찼다던 그는 “기자님도 나중에 영상에 나올 수도 있잖아요”라며 그간 찍었던 사진들을 보여줬다. 기자는 영상에 출연한다면 영광이라고 답했다. 배우의 꿈을 키우고 있는 승우씨는 조만간 연극 무대 데뷔를 앞두고 있다.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은 대부분 순탄한 학창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배운 게 없다보니 어디 가서 일을 하기도 어려웠다. 어렵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도 사장님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또 다시 폭행에 노출되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랬던 생존자들이 요즘 들어 ‘늦깎이 학생’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모두 종선 씨 덕분이었다.

한종선씨의 다이어리에 적인 요구사항.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지원과 사건 자료에 대한 발굴, 과거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은폐나 조사를 막은 공무원들에 대한 징계 등이 적혀있다. <조나리 기자>

종선 씨는 과거 혼자 1인 시위 중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던 전규찬 한예종 교수의 조언에 따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종선 씨는 <살아남은 아이>라는 책을 출간했고, 올해 6월엔 ‘제8회 진실의 힘 인권상’에 수상, 시상식에서 자신이 쓴 연설문을 읽었다. 종선 씨는 글을 잘 쓴다. 그의 다이어리에는 사소한 것부터 앞으로의 계획과 현재 진행 중인 일들의 문제점 등 자신의 모든 생각이 기록돼 있다.

이에 대해 승우 씨는 “내가 공부를 시작하고 배우의 꿈을 키운 것도 다 종선이 때문”이라며 “내 동생도 마찬가지고,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보통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너무 힘들었을 때 종선이가 하나씩 해내는 모습들이 힘이 됐다”고 지난날을 떠올렸다.

한종선씨가 9살부터 지금까지의 자신의 일대기를 얼굴 표정으로 표현한 작품. 가운데 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다. 그는 9살 어느날 오후 8시에 형제복지원에 입소했다. <조나리 기자>

종선 씨가 악착같이 배우기로 했던 것도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 때문이었다. ‘부랑아’, ‘못 배운 사람들’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아무도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작은 작품들도 만들고 있다. 종선 씨는 직접 바느질을 해 형제복지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현재까지 겪었던 주요 사건들을 자신의 얼굴 표정으로 표현했다. 9살부터 지금의 40대가 되기까지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종선 씨가 작품을 보여주며 설명하자 옆에 있던 승우 씨는 “종선이는 예술가다”라며 칭찬을 늘어놨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우리들이 빨리 시간이 흘러 세상에 사라지길 바라는 것 같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죽지 않을 것이다.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여기서 이렇게 배우고 성장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연극 무대 데뷔를 앞둔 최승우 씨가 감독 역할을 위해 기른 꽁지머리를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모아 향후 형제복지원 투쟁기를 영상으로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조나리 기자>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은 자신들을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 ‘증언자’로 봐주길 바란다. 스스로도 늘 그렇게 다짐하고 있다. 피해자로만 남을 경우 영원히 형제복지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단순히 고발 행위 자체에 머물지 않고, 늘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승우 씨는 조만간 대학로에서 선보일 연극 무대 준비에 정신이 없다. “시간이 되면 제가 연극하는 날 보러 오세요. 제가 맡은 역할이 감독 역인데, 그래서 머리도 이렇게 길었잖아요.” 승우 씨가 자신의 ‘꽁지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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