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제지가 최근 이복진 대표 후임으로 안재호 전 삼성SDI 부사장을 영입해 위기 탈출에 나선다. <한국제지>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경영 악화에 빠진 한국제지가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상반기 영업적자 폭이 커지며 올해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자 서둘러 새 수장 교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 3년 반 가까이 이끌어 온 이복진 대표 후임으로 안재호 전 삼성SDI 부사장이 내정된 것. 하지만 펄프 가격 인상 등 제지 산업을 둘러싼 경영 환경이 결코 녹록지 않아 난관이 예상된다.

◇ ‘전문성’ 대신 ‘간판’ 택한 한국제지… 왜?

제지 업계 3위 한국제지가 ‘삼성DNA’ 수혈에 나섰다. 30일 한국제지 등에 따르면 최근 안재호 전 삼성SDI 부사장이 한국제지에 합류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안재호 전 부사장이 경영임원회 대표로 임명됐다”고 말했다. 안 전 부사장의 담당 업무인 ‘경영임원회 대표’는 전임 이복진 대표와 동일한 것이라 사실상 회사를 총괄하는 전문경영인으로 해석된다.

한국제지가 삼성맨을 모셔온 배경엔 한층 고조되고 있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흔히 재계에서 통용되는 ‘삼성맨은 위기에 강하다’는 속설을 반영한 인사로 읽힌다. 주력 사업에 대한 전문성보다는 삼성이라는 타이틀에 의존한 기색이 짙다는 얘기다. 전자공학과 출신의 안 전 부사장은 삼성SDI에서 소형전지 사업을 총괄하는 등 제지업과 무관한 인물이라는 점은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이는 지금까지의 한국제지의 인사 문화와는 동떨어진 파격 인사에 가깝다. 그간 한국제지는 내부 출신을 선호해 온 색채가 강했다. 이복진 대표를 포함해 그의 전임인 김광권 전 대표 모두 한국제지 입사에 대표직까지 올랐다. 이 대표의 경우 대학원에서 제지공학 석‧박사 학위까지 취득했을 정도로 자타공인 업계를 대표하는 제지 전문가란 평가를 받아 왔다.

그만큼 이번 인사에는 삼성맨 영입을 통해 원가 절감 등을 통한 경영 효율화와 재무 구조 개선을 실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 나홀로 적자 한국제지… 삼성DNA 효과 볼까

실제 한국제지가 처해 있는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주 원재료인 활엽수(BHK)의 톤당 가격이 1,000달러 가까이 치솟음에 따라 업계 전체가 어려워진 가운데서도 유독 부진한 기색이 역력하다. 국내 제지 3사 중 유일하게 올해 상반기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한국제지의 2분기 누적 적자는 49억원에 이른다. 반기순손실 규모도 72억원에 달한다.

3분기가 마무리되는 시점까지도 별다른 호재성 이슈가 터지지 않고 있어 한국제지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지난해 전년 대비 영업익이 40% 가량 감소하면서 100억원의 벽이 무너진 경험을 한 한국제지가 실적 반등은커녕, 적자 전환 될 수 있다는 관측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위기의 순간에 삼성맨 영입이라는 특단의 카드를 꺼내든 한국제지가 그 효과를 볼 수 있을지, 한국제지의 하반기 성적표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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