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공개변론이 열린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지난 6월 28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자연히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형사처벌 사건을 다룰 대법원에 관심이 쏠렸다. 30일 오후 2시 대법원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 3명의 병역법 위반 혐의 상고심 재판의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앞서 헌재는 대체복무제가 없는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입영거부가 병역법에서 규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 변론에서는 ‘대체복무제 여부’가 아닌 ‘양심의 측정’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 헌재의 쟁점과 대법원의 쟁점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는 대신 군에 입영하는 젊은이는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협을 받고 많은 기본권이 제한되는데, 이를 ‘정당한 사유’로 해석할 수 있는가?” (박상옥 대법관)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등 안보가 엄중한 상황인데, 자칫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특정 종교를 국가가 우대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조희대 대법관)

헌재 결정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지만, 대법원의 공개변론에 나온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대법원장들도 민감한 사안인 만큼 날카로운 질문들을 양측에 쏟아냈다.

앞서 헌재는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 의무를 거부하는 병역기피자에 대한 처벌은 합헌으로 판단하면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로 봤다. 이날 공개변론장에는 종교적인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다. 그러나 검찰과 대법관, 변호인 측은 ‘양심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검찰은 오히려 대체복무제가 없는 상황에서 처벌까지 못할 경우 병역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했다. 현 상황에선 처벌이라도 해야 거짓으로 병역을 기피하는 일들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법관들도 변호인 측에 그간 대법원 판례에 입각한 질문들을 이어갔다.

검찰 측 발언자로 나선 김후곤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도 “신념이나 종교 등 주관적 사유는 병역을 피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면서 “주관적 사유는 국가가 측정할 방법이 없다. 정당한 사유란 천재지변이나 교통사고 등 객관적 사유로 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메르스 지역이나 지진발생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군복무보다 위험하지 않은가하는 부분에 대해 최근 사회가 많이 수긍하는 것 같다”면서 “대체복무를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게 한다면 인적자원을 골고루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맞섰다. 또한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무죄를 선고받아도 의무를 이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변론에서 대체복무제 도입 여부 자체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으면서 대법원 판례가 바뀌지 않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진보성향으로 구분되는 만큼, 대법원이 전향적인 판결을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뉴시스>

◇ 대법원, 사상 첫 병역거부자 무죄 선고할까

대법원은 1968년 7월 종교적인 이유로 군복무를 거부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며 병역 거부자에 대해 처벌 확정 판결을 내렸다. 1만9,000여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이 판결을 근거로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왔다.

그러다 2004년 대법원은 30여년 만에 다시 한 번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유죄판결을 확정지었다. 헌재도 같은해 8월과 2011년 8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처벌을 규정한 병역법을 합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2011년 헌재 결정은 2004년만큼 합헌에 손을 든 재판관 수가 압도적이진 않았다. 이에 대법원에서도 처음으로 전향적인 판례가 나올지 주목되고 있다.

실제로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재판관의 절반이 진보성향인 점을 감안하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대법원은 이날 공개변론 의견을 수렴해 이르면 올해 중으로 지난 14년간 줄곧 양심적 병역 거부 사건에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판례를 바꿀지 결정한다.

한편 병역법 88조1항은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정해진 기간 내 응하지 않는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예비군법 15조9항도 ‘훈련을 정당한 사유 없이 받지 않은 사람은 1년 이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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