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용 변호사는 억울하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를 받기도 전부터 수사 상황이 실시간으로 언론에 공개돼 엄청난 범죄자로 기정사실화되고 있다는 것. 하지만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퇴직하면서 기밀 자료를 불법으로 반출, 파기한데 대한 해명은 석연치않았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대법원 선임·수석재판연구관 출신의 유해용 변호사가 12일 검찰에 재소환됐다. 대법원 기밀 자료를 불법으로 반출한 뒤 파기한 혐의다. 검찰이 압수수색에서 발견한 자료에 대해 임의제출을 요구하자 영장을 받아오라던 그였다. 증거인멸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서약서까지 썼지만, 법원과 검찰이 영장기각으로 옥신각신하는 사이 파기해버렸다. 이에 대해 유해용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상 서약서를 작성할 의무가 없는데 검사가 장시간에 걸쳐 요구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작성했다”고 말했다. 자료를 파기한 이유에 대해선 부족한 답변이었다.  

◇ 영장기각률 89%, 통상보다 9배 높아

검찰은 부글부글 끓었다. 고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유해용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세 차례 기각됐다는데 사실상 법원이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이례적으로 입장 발표문을 내놨다. “증거인멸 행위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여기엔 영장심사를 담당한 박범석 부장판사도 예외일 수 없다. 현재 박범석 부장판사와 유해용 변호사의 유착 의혹까지 불거진 상태다. 

두 사람은 과거 대법원에서 선임재판연구관과 재판연구관으로 1년간 함께 근무한 바 있다. 박범석 부장판사가 후배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선 그가 영장심사를 맡지 않았어야 옳다. 하지만 회피하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 없이 영장심사를 3일 미룬 뒤에야 내놓은 말은 “유해용 변호사가 대법원 자료를 반출, 소지한 것은 대법원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나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리어 해당 자료를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하는 것은 재판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박범석 부장판사의 판단에 논리의 부족함을 지적한다. 범죄 자체가 아닌 법원과 검찰과의 관계에 치우쳐있다는 얘기다. 이른바 ‘제식구 챙기기’다. 결국 영장기각으로 수 만 건에 달하는 증거물이 폐기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검찰은 “사실 관계를 확정하기 전인 압수수색 단계에서 영장전담판사가 어떠한 죄도 안 된다고 단정한 판단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사례는 비단 이뿐이 아니다. 검찰이 사법농단 의혹 관련 두 달여간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208건 중 185건이 기각됐다. 영장기각률이 무려 89%다. 애초 유해용 변호사도 일제 강제징용 소송과 통합진보당 지위확인 소송 관련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 거래에서 법원행정처, 대법원, 청와대를 연결하는 통로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사실상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제외하면 사건 당시 최고위 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은 모두 무산된 것이다. 통상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기각률은 10% 수준이다.

검찰이 사법농단 의혹 관련 두 달여간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208건 중 185건이 기각됐다. 영장기각률이 무려 89%다. 통상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기각률은 10% 수준이라는 점에서 뒷말을 낳았다. <뉴시스>

◇ 무게 실리는 특별재판부 설치, 왜? 

이에 따라 법원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사 대상인 법원이 영장을 심사하고 있어 판단의 신뢰성이 훼손된 것은 물론 기소 후 재판 과정에서도 법원이 공정성을 유지할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는 지적에서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기간 중의 사법농단 의혹사건 재판을 위한 특별형사절차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이유다. 법안의 골자는 특별재판부 설치다. 전날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여당 위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조사 추진과 함께 “공정한 재판을 위해 필요하다면 특별재판부 설치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유해용 변호사는 압수수색 영장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현직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구명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유해용 변호사는 “저의 안위를 걱정해서 소식을 물어보고 궁금해 하는 연수원 제자들, 법대 동기 몇 명, 그리고 고교 선배 극소수에게 보냈다”면서 “조사 받기도 전에 엄청난 범죄자로 기정사실화되는 상황에서 제가 억울한 처지를 주변 사람들에게조차도 호소하지 못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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