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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 '에세이'] H에게-주꾸미보다 민망한 족속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지난 일요일 친구들이랑 서해에 있는 한 섬에 다녀왔네. 그 섬에 꽤 유명한 절이 있어 구경 갔는데 온 경내에 돈 냄새가 진동하더군.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교가 돈으로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한승원 시인의 <쭈꾸미>라는 시를 떠올렸네.

“세상에서 제일 미련한 것은 주꾸미들이다/ 소라껍질에 끈 달아 제 놈 잡으려고/ 바다 밑에 놓아두면/ 자기들 들어가 알 낳으면서 살라고 그런 줄 알고/ 태평스럽게 들어가 있다/ 어부가 그 껍질을 끌어올려도 도망치지 않는다/ 파도가 말했다/ 주꾸미보다 더 민망스러운 족속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소라고둥 껍질 속에 들어앉은 채 누군가에게/ 자기들을 하늘나라로 극락으로 데려다 달라고 빈다”

우리들이 흔히 '쭈꾸미'라고 부르는 연체동물의 정확한 이름은 '주꾸미'라네. 어부들은 주꾸미를 그물로 잡기도 하고, 소라와 고둥의 빈껍데기를 이용해서 잡기도 하지. 고둥, 전복, 소라 등의 껍데기를 몇 개씩 줄에 묶어 바다 밑에 놓아두면 밤에 주로 활동하는 주꾸미가 그곳이 자기들이 살 집인 줄 알고 “태평스럽게 들어가 있다”가 술꾼들의 안주거리가 된다고 하는군. 그래서 시인은 “세상에서 제일 미련한 것이 주꾸미들이다”고 말하네. 하지만 그건 우리 인간들 생각일 뿐이야. 아마 주꾸미들은 우리 인간들 보고 ‘사돈 남 말 한다’고 비웃을지도 몰라.

시인도 주꾸미의 반격을 예상한 듯 “주꾸미보다 더 민망스러운 족속들이 있다”고 얼른 말을 바꾸는군. 주꾸미보다 더 미련한 족속이 누구일까? 물론 우리 인간일세. 왜냐고? “자기들이 만든 소라고둥 껍질 속에 들어앉은 채 누군가에게 자기들을 하늘나라로 극락으로 데려다 달라고”돈까지 받쳐가면서 비는 족속이 인간 말고 누구겠는가?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그런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을 ‘소외’라는 고상한 말로 설명하지. 자신들이 스스로 만든 제도나 종교에 의존하고 지배당하는, 그래서 주객이 바뀐 상황이 되어버렸는데도 그걸 모르니 주꾸미보다 잘 난 게 전혀 없다는 뜻이야.

시인이 말하는 “자기들이 만든 소라고둥 껍질”은 종교의 비유일세. 우리 잠깐 눈을 꼭 감고 사람들이 동굴에서 살았던 먼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볼까? 천둥번개와 폭풍우가 몰아치는 극한 상황에서 동굴이나 움막에서 살고 있는 우리 조상들을 생각해보세. 요즘도 천둥번개가 치고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때가 많지? 그럴 때 무섭지 않는 사람은 드물 걸세. 동굴 속에서 살았던 고대인들에게 그런 자연은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었네. 그럴 때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게 무엇이었을까? 자신들이 전혀 알 수 없는 이런 상황을 ‘잘 알고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겠지.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상상한 이 전지전능한 존재를 신(God)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래서 신이 인간을 만든 게 아니고 인간이 신을 만든 거라는 주장이 나온 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이 만든 신은 실제로 저 멀리 하늘나라에 존재하는 것처럼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되었고, 그 전지전능한 신에게 의존하는 주객전도 현상이 나타났지. 이게 내 생각이냐고? 그건 아냐. 헤겔의 관념론을 물구나무 세워서 마르크스에게 인계한 포이에르바흐의 소외론을 요약 설명한 걸세. 근대 유물론 철학의 시작이지.

자신들이 만든 신에게 무릎 꿇고 비는 인간들. 유물론자들에게는 인간소외의 가장 대표적인 제도가 종교일세. 그런 시각으로 보면, 우리들 삶을 힘들게 하는 고통의 원인을 찾아 고치거나 제거함으로써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할 인간들이 자신들이 만든 신 앞에서 빌고만 있으니 “주꾸미보다 더 민망스러운 족속”인 거지.

나는 아직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 무신론자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선택까지 무시하거나 폄하하고 싶지는 않네. 종교의 자유도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중요한 기본권들 중 하나이니까. 다만 종교가 돈이나 ‘부자 세습’등으로 타락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네. 전체 사회를 오염시킬 수도 있으니까. 매주 교회나 성당, 절을 찾는 사람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자기 자신이나 자기 가족의 안녕과 행운만을 비는 표층적인 신앙을 넘어서서, 자신을 깨우치고, 전 인류의 안녕과 평화를 추구하는 심층적 신앙 활동을 해주길 바랄 뿐일세. 우리 인간을 포함한 생명 있는 것들 모두가 신성을 가진 존재라는 걸 잊지 말고.

시사위크  sisaweek@sisa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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