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사들의 해외수주 누적액이 53년 만에 8,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하지만 최근 중동 정세의 불안이 계속되는 등 해외건설 시장을 둘러싼 환경이 호전되지 않고 있어 수주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건설 수주액 누계가 8,000억 달러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이제는 9,000억 달러를 넘어 1조 달러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중대기로에 서게 됐지만, 해외건설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우호적으로만 흘러가지 않고 있어 마냥 기뻐할 수 만은 없는 상황이다.

◇ 해외건설 53년 쾌거에도 터지지 않는 축포

국가경제를 지탱하는 대표적인 중후장대 산업인 건설이 금자탑을 달성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5일을 기준으로 해외건설 수주 누적 금액이 8,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지난 1965년 현대건설이 태국에서 98㎞ 길이의 고속도로를 수주한 것을 시작으로 53년 만에 이룬 쾌거다.

지난 반백년 동안의 해외건설 성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70년대 ‘중동붐’으로 대변되는 해외건설 텃밭인 중동 시장에서만 총 4,303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전체 수주액의 절반(53.8%)을 이억만리 떨어진 중동에서 벌어들인 셈이다. 다음으로 아시아가 2,560억 달러(32%)로 뒤를 이었다.

공종별로는 플랜트가 4,617억 달러(57.7%)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플랜트 강국의 면모를 어김없이 보여줬다. 건축과 토목이 각각 1,546억 달러(19.3%)와 1,474억 달러(18.5%)를 기록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지난 2015년 누적액 7,000억 달러를 달성한 후 3년 만에 이뤄낸 성과에도 마냥 자축할 수만은 없는 분위기다. 최근 국제 유가 등 해외건설 시장을 에워싼 경영 환경이 결코 녹록지만은 않은 상황이라 9,000억 달러, 나아가 1조 달러의 벽을 넘기까지 상당한 시간일 걸릴 것으로 관측돼서다.

최근 수주 동향을 살펴보면 해외건설은 전성기를 지나 침체 국면에 접어든 상태다. 2014년을 기점으로 꺾이기 시작한 수주 그래프는 좀처럼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 결과 지난 2년 연속으로 2010~2014년 연간 수주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300억 달러 미만의 수주를 달성하는 데 그쳤다.

◇ 청신호 켜진 국제유가, 중동 리스크는 여전

올해 역시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3분기가 지난 현재 시점에서 봤을 때 최종 성적은 전년과 비슷한 선에서 머무를 것으로 점쳐진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14일 기준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건설 수주합계는 221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205억 달러) 8% 증가한 수준이다. 다만 희망적인 대목이라면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당면 목표인 300억 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유가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대목이다. 지난해까지 배럴당 40~50달러선에 머물던 국제 유가는 올해 들어 70달러를 웃돌면서 해외 발주 물량 증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연간 수주액이 600억 달러를 넘던 전성기를 회복하기까지는 여러 난관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수주 텃밭인 중동 정세가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건 해외건설 전망을 어둡게 바라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특히나 미국의 대이란 핵협상 탈퇴로 인해 지난해 52억 수주를 책임졌던 이란에서의 수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건 큰 손실이다.

2010년대 초반 과거의 저가 수주로 인해 어닝쇼크를 경험한 건설사들이 해외사업에 있어 보수적인 전략으로 돌아섰다는 점도 장애물로 지적된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52시간 근무제 실시로 인해 해외업체와의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데 있어 지장이 초래 될 수 있다”면서 “일본의 경우처럼 해외건설 부문이라도 5년여 간의 유예기간을 부여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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