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발암물질인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들어있는 발사르탄 성분 고혈압치료제를 판매한 제약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발사르탄 고혈압약’ 사태가 정부와 제약사들 간의 소송전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최근 정부는 발암물질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포함된 발사르탄 성분의 고혈압약을 제조·판매한 제약사들에게 구상권 또는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애초 발사르탄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부담하지 않았을 재정에 대해 법률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 제약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해당 성분에 대한 검출 기준도 마련하지 않았던 정부가 모든 책임을 제약사에게 전가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는 것. 일각에선 오히려 제약사들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구체적인 손해배상 규모는 내년 초쯤 나올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각각의 소송 전략도 추후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 조용히 넘어가나 했더니.. 제약업계 폭탄 맞나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13일 제15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건보공단이 문제의약품 재처방·조제 등으로 발생한 재정지출에 대해 구상권 또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보고했다. 복지부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 이를 위한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식약처는 중국 기업 제지앙화하이가 제조한 ‘발사르탄’에 발암 의심물질이 검출됐다며 해당 의약품의 판매중지 처분을 내렸다. 당시 정부가 발표한 문제의 혈압약 복용 환자는 17만8,000여명으로 이중 95.8%인 17만1,042명이 재처방·재조제를 받았다. 이후 지난 8월에는 대봉에이스와 명문제약 고혈압약에서도 문제의 성분이 검출됐다.

정부는 이번 법률 검토의 근거로 ‘공단은 제3자의 행위로 보험급여사유가 생겨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에게 보험급여를 한 경우 급여에 들어간 비용 한도에서 그 제3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얻는다’는 건강보험법 제58조를 들고 있다. 특히 약에 대해 생긴 문제임에도 제약사에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분명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또 기존에 복용하던 의약품보다 비싼 의약품으로 재처방·조제한 경우, 의료기관과 약국의 손실에 대해서도 그 차액을 지급할 계획이다. 이에 대한 차액 역시 향후 구상권 또는 손해배상액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배상 청구 규모 등이 올해 말 이후에야 파악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 사이 여러 논란이 될 수 있는 법률 문제들을 검토한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제약업계는 당초 정부에서 NDMA에 대한 검출 기준이 없었다며 정부 또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 “법률 따랐을 뿐”… 제약사들 반발 조짐

이같은 정부 발표에 대해 제약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정부 역시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우선 제약업계는 당초 정부에서 NDMA에 대한 검출 기준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후 발사르탄 사태가 유럽에서 먼저 터지자 판매 중지 처분을 내리고 부랴부랴 검출 기준을 정했다는 것.

또한 NDMA의 유해성이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도 향후 소송 등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정부는 유해성 여부는 구상권 청구 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제약사의 약 때문에 재정이 나갔다는 것이 법률 검토의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비슷한 가습기 살균제 사태 때도 정부의 책임 논란이 뜨거웠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국회 등은 사법부의 판단과 별개로 정부의 ‘무한책임’ ‘무과실책임’ 논리를 들며 사과 및 배상책임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까지도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일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받은 피해자들에 한해서만 치료비를 지원하고 기업 측에 구상권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발사르탄 고혈압약 사태는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경우 피해가 드러난 반면, 고혈압약 사태의 경우 아직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연구조차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유해성 여부는 구상권 청구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향후 개별적으로 제약사들과 소송을 벌일 시 유해성 여부가 주요 쟁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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