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청호나이스 정수기 엔지니어들이 열악한 처우와 근무환경을 고발하고, 본사의 직접고용을 촉구했다. 특히 엔지니어들은 지난 4월부터 추진된 자회사 설립 및 엔지니어 편입 과정에서 나타난 각종 문제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엔지니어들은 출근시간에 전국 사업장 20곳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다.

◇ 청호나이스 엔지니어들에게 무슨 일 있었나

지난해 청호나이스는 3,84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는 4,500억원의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청호나이스의 정수기를 설치하고 수리 업무를 하는 엔지니어들의 월 기본급은 190만원이다. 엔지니어들은 “1대당 평균 230만원의 정수기를 설치하고 있지만 정작 엔지니어들의 처지는 정수기 한 대 값만도 못하다”고 꼬집었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청호나이스 노조는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기존 청호나이스 엔지니어들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개인사업자 신분의 특수고용노동자였다. 회사의 지시를 받고 일을 하고 있지만 모든 업무에 들어가는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했다. 하물며 청호나이스 유니폼조차도 엔지니어들이 자비로 구입했다.

엔지니어들과 노동자성 인정을 전제로 한 퇴직금 소송을 진행 중이던 청호나이스는 올해 4월 엔지니어들을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단, 청호나이스가 직접 고용하는 것이 아닌 ‘나이스엔지니어링’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개인사업자 신분의 엔지니어를 편입했다. 이 과정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일했던 엔지니어들조차 정규직 전환을 조건으로 시용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노조는 이날 “청호나이스에서 근무하던 임직원들도 나이스엔지니어링으로 편입된 분들이 있다”면서 “과연 그 분들도 저희처럼 시용계약을 체결했을지 의문이다. 우리도 그분들과 똑같이 청호나이스 유니폼을 입고 청호나이스 정수기를 판매하고 설치해왔다”고 꼬집었다.

더욱이 정규직 전환을 전제로 나이스엔지니어링에 편입된 엔지니어들은 개인사업자 신분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근무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도천 청호나이스 노조위원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지금도 나이스엔지니어링 소속 기사들이 개인 차량으로 개인이 유류비를 내고 업무를 다니고 있다”면서 “190만원에 각종 비용을 제하고 나면 사실상 최저임금도 못 미치는 기본급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청호나이스노동조합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계약직 직원 직접고용을 위한 노사교섭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 노동조합 설립한 엔지니어들, 국회로 온 이유

청호나이스 노조는 자회사 편입 및 시용계약 문제가 불거지면서 지난 5월 설립됐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단 한 차례도 청호나이스와 단체교섭을 진행하지 못했다. 청호나이스 노조가 국회까지 온 이유이기도 하다. 그나마 자회사인 나이스엔지니어링과는 세 차례 교섭이 있었지만 교섭 당사자를 두고 이견만 확인하는 자리였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는 엔지니어들의 실질적인 사용자는 나이스엔지니어링이 아닌 청호나이스라고 말한다. 때문에 기본급 인상, 영업압박 문제, 시용계약, 실적금 삭감, 책임이행보증금(관련기사: 청호나이스, ‘엔지니어 책임보증금’ 반환 앞두고 논란인 이유) 등 각종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자회사가 아닌 청호나이스가 교섭에 나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청호나이스는 지난 5월 15일, 6월 1일, 8월 29일 등 세 차례 교섭 요청에도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임성택 청호나이스 노조 부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엔지니어가 직책이지만 영업이 주 업무인 실정”이라며 “매월 할당 목표를 채우기 위해 적게는 1대에서 많게는 10대까지 제품을 자비로 구입하고 다시 헐값에 고객들에게 팔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5월과 6월에는 개인 카드로 2,000만원을 썼다”면서 “회사에서는 사업처장들이 지시한 일이라거나 엔지니어가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고 하지만 누가 그 말을 믿겠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노조는 개인사업자 신분 당시 매월 10만원씩 500만원이 될 때까지 급여에서 공제했던 ‘책임이행보증금’과 관련해 사용처와 이자 수익 등에 대해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노조는 “더이상 저희들의 노동의 대가를 가정이 아닌 제품 구매 카드값으로 쓰고 싶지 않다”면서 “청호나이스 지금이라도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교섭에 응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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