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투자자가 텅 빈 말레이시아 주식시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국제 무역 마찰과 일부 신흥국의 정세불안으로 최근 신흥국 펀드 시장은 부진에 빠진 상태다. 다만 일각에서는 주요 신흥국들의 경제기반이 튼튼하다는 점을 이유로 매수 의견도 나오고 있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연초만 해도 고수익 투자처로 각광받았던 신흥국 펀드의 부진이 길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신흥국시장 ETF인 아이쉐어즈 MSCI 이머징 마켓 ETF(EEM)는 올해 봄부터 하락일로를 걷고 있다. 20일(현지시각) 현재 EEM 지수는 42.55로 지난 1월 22일(현지시각)의 81% 수준에 불과하다. 당시 기록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였다는 점에 비춰보면 신흥국 펀드의 부진은 더 충격적으로 느껴진다.

펀드 지수가 급락하자 투자자들은 자금 회수에 나섰다. 6월 11일부터 6월 15일까지 총 22억달러의 자금이 EEM에서 빠져나갔는데, 이는 2014년 1월 이후 가장 많은 자금유출 기록이다(일주일 기준). 동기간 시장규모 기준 세계 최대의 신흥국 ETF인 뱅가드 FTSE 이머징 마켓 ETF(VWO)에서는 2억7,000만달러의 자금유출이 관측됐으며 이 역시 근 2년간 최고 기록이다.

◇ 위기는 곧 기회? “국가마다 상황 달라”

그러나 몇몇 펀드 전문가들은 지수가 하락한 지금이 신흥국 펀드에 투자할 기회라고 말하고 있다. 자산운용사 ‘카르티카 매니지먼트’의 테레사 바르저 CEO는 13일(현지시각) 싱가포르에서 열린 밀켄연구소의 경제 컨퍼런스에서 신흥국 펀드 시황에 대해 “경제 기반은 매우 좋고 투자자들의 인식은 나쁜, 매우 드문 시기”라고 평가했다. 신흥국 위기설의 진원지인 아르헨티나·터키·베네수엘라가 ‘시스템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나라라는 지적이다.

페소화 가치가 작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아르헨티나는 지난 8월 29일(현지시각) IMF에 조기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3월까지만 해도 30%를 밑돌았던 아르헨티나의 기준금리는 세 차례의 급격한 인상을 통해 60%로 올라선 상태다. 터키와 베네수엘라는 각각 에르도안 대통령과 마두로 대통령의 불안한 리더십이 도마에 오르면서 자금유출 압박을 받고 있다. 이들 세 나라의 경제위기는 MSCI 신흥시장지수가 지난 1월에 비해 20% 가까이 떨어진 가장 큰 이유다.

반면 바르저 CEO는 “시장의 상승세가 정치적 이슈들에 가려져있다”며 다른 신흥국에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카르티카 매니지먼트는 지난 6월 기준 28억달러의 자산을 신흥국 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포트폴리오의 32%는 인도 시장이 차지했으며, 브라질·필리핀·멕시코에도 각각 14·13·12%의 자금이 투자된 상태다. 세계 2위 신흥국 투자펀드 ‘오펜하이머 디벨로핑 마켓’의 저스틴 레버렌즈 펀드매니저도 8월 27일(현지시각) CNBC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투자처를 찾아낸다면 경기가 좋지 않아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자사가 멕시코 지역의 코카콜라 판매회사인 ‘펨사’에 투자한 것을 예시로 들었다.

◇ 연내 반등 가능성도 제기

한편 미국 금융정보·뉴스포털 ‘인베스토피디아’는 17일(현지시각) 신흥국펀드가 4분기 중 20%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무역전쟁의 첫 탄환을 쏜 4월부터 현재까지 EEM이 약 20% 떨어졌으니, 이는 곧 향후 3개월 동안 신흥국펀드의 손실분이 모두 회복될 것이라는 뜻이다.

인베스토피디아가 제시한 근거는 EEM의 장기 동향에서 나타난 상승과 하락의 사이클이었다. EEM은 2003년과 2009년, 2011년 하반기와 2016년에 뚜렷한 성장세를 기록했으며, 이는 모두 급격한 하락장이 나타난 지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흐른 후였다. 신흥국 펀드 시장은 2000~2002년과 2015년에 부진했으며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2011년 상반기는 중국의 고도경제성장률이 약화되기 시작한 때다. 즉 오는 4분기부터는 하락장 후 상승장이 나타나는 브이(V)자 그래프가 다시 관찰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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