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 폐지의 뜻을 밝힌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근하며 차량에 오르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 폐지를 골자로 한 법원 개혁안을 발표한 것과 관련, 법조계에서는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다만 앞으로 진행될 사법 개혁 절차와는 별개로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사법농단 사건 영장기각 논란은 지금과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 ‘김명수 개혁안’, 주요 내용은?

김 대법원장은 20일 법원 전산망을 통해 배포한 ‘법원 제도개혁 추진에 관해 국민과 법원 가족 여러분께 올리는 말씀’에서 사법행정기구 개편 및 향후 개혁방안을 공지했다. 김 대법원장은 지금의 사법부가 처한 위기의 원인을 법관들이 독립된 재판기관으로서의 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구조에 있다고 꼽았다. 이에 임기 내 법원의 관료문화와 폐쇄적인 행정구조를 개편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김 대법원장은 우선 법원행정처 폐지를 공식화했다. 이를 위해 사법행정회의(가칭)에 행정권한을 부여하고 법원행정처는 집행업무만 담당하는 법원사무처와 대법원 사무국으로 분리하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법원사무처에는 상근법관직을 두지 않고, 내년 정기인사부터 법원행정처 상근법관을 줄이겠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법관 간 계층구조를 없애고, 내년부터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법관의 책임성 강화를 위해 윤리감사관을 외부 개방형 직위로 임용하고 지난 3월 발족한 ‘사법발전위원회’의 건의사항을 실행할 별도의 추진단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추진단에는 사법발전위원회와 전국법관대표회의, 법원공무원노동조합으로부터 인사들을 추천받기로 했다.

특히 김 대법원장은 윤리감사관 개방화와 고등법원 부장판사 폐지 등은 추진단의 검토가 이뤄지기 전 곧바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 법조계 “문제인식은 공감... 문제는 속도”

이 같은 조치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최근 김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사건 관련자들의 잇따른 영장기각 사태와 맞물려 리더십 부재 논란까지 불러왔다. 이 와중에 김 대법원장이 직접 사법 개혁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 항간의 우려를 일축했다는 설명이다.

지난 7월 25일 사법개혁 긴급간담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김준우(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 변호사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그간 사법부 개혁과 관련해 가장 큰 우려는 개혁의 대상이 개혁을 추진하는 ‘셀프 개혁’ 문제였다”면서 “그러나 구체적인 방안과 관련해 다양한 인사들로 구성된 추진단을 마련하고, 투명하게 운영하겠다고 밝힌 점은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이 늦게 나온 만큼 속도전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무원노조 법원본부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김 대법원장은 이 같은 일들을 하겠다고 인사청문회 때부터 거듭 밝혀왔다. 진즉에 진행됐어야 할 일이었다”면서도 “권위적인 문화와 폐쇄적인 행정구조를 개선해야 법원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김 대법원장의 현실 인식에는 동의한다”고 밝혔다.

김호철 민변 회장이 지난 8월 3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동문 앞에서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해 법원의 잇따른 영장기각을 비판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 관계자는 이어 “개혁은 속도가 중요하다. 이미 3~4개월 가량 늦은 상황”이라며 “올해 정기국회에서 관련 입법이 완료되도록 법원본부도 추진단에 합류할 위원을 하루 빨리 추천해 사법개혁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사법 개혁과는 별개로 사법농단 수사를 둘러싼 검찰과 법원의 기싸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 대법원장이 개혁안을 발표한 지난 20일 서울중앙지법(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유 전 연구관은 대법원 기밀 문건을 반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법원의 기각사유는 ‘기각을 위한 기각’에 불과하다”며 즉각 반발했다.

김준우 민변 사무차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대법원장이 개별 재판에 개입할 순 없기 때문에 지금의 흐름에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면서 “더욱이 현재 법원은 작심하고 기각만을 결정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그 자체가 법원이 왜 개혁 대상인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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