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민생경제연구소 공동기획]

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민생 경제’ 위기는 단 한가지 원인으로 귀결될 수 없다.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중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각종 불공정한 시스템도 중심축 역할을 한다. <본지>는 시민활동가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주요 민생 이슈를 살펴보고,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편집자주]

 

추석 명절 연휴를 앞두고 편의점주들이 명절 휴무와 자율 영업 허용을 요구하고 나서 이목이 끌고 있다. 사진은 24시간 영업 중인 서울의 한 편의점. <시사위크>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편의점은 어느새 우리 일상 깊숙이 자리잡은 친숙한 존재가 됐다. ‘365일 24시간’ 영업하는 덕분에 편리한 부분이 많다. 소비자 입장에선 늦은 새벽이라도 필요한 물건을 손쉽게 살 수 있다. 하지만 낮이나 밤이나 불을 밝히고 손님이 뜸하더라도 이 영업시간을 무조건 지켜야 하는 편의점주들의 삶을 어떨까. 최근 편의점주들 사이에서 자율영업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 편의점주 “올해 추석에는 부모님 얼굴 뵙고 싶다”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 연휴가 내일(22일)부터 시작된다. 오랜만에 고향에서 가족들을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귀성객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그런데 추석 명절 연휴를 앞두고 “올해 명절에는 부모님 얼굴을 뵙고 싶다”는 편의점주들의 간절한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편의점주들은 20일 서울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통업계 노동자들과 함께 “명절 당일이라도 자율 휴무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국내 편의점은 여러 가맹업종 가운데에서도 영업시간의 강도가 높다. 상당수의 편의점이 명절을 포함해 ‘365일 24시간’ 영업을 하는 구조다. 예전에는 심야영업으로 수개월간 적자가 나도 무조건 24시간 문을 열어야 했다. 하지만 2013년 점주들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면서 영업시간 강제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지난 2014년 2월14일부터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12조3항(부당한 영업시간 구속 금지)에 따라 부당한 24시간 영업을 강요할 수 없도록 법이 바뀌었다. 이에 따라 6개월간 심야 영업 수익이 영업비용에 미치지 못할 경우엔 점주가 심야 영업(오전 1시~6시) 중단을 요청할 수 있게 됐다. 또 최근에는 가맹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으로 심야영업 중단 요건이 이전보다 완화됐다. 새로운 개정안에 따르면 심야시간 영업적자를 증명해야 하는 기간이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됐다.

편의점 업계의 영업 시간이 추석 연휴를 앞두고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뉴시스>

그럼에도 심야영업 중단 요청을 망설이는 점주들이 상당하다는 후문이다. 왜 그럴까.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그 배경 중 하나로 본사의 꼼수 의혹을 제기했다. 안진걸 소장은 “현행법상 가맹본부는 야간영업을 강제하면 안 된다”며 “하지만 편의점 본사들이 지원금을 미끼로 점주들에게 심야영업을 강제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국내 주요 편의점들은 심야영업을 했을 때만 전기세 지원을 해주고 있다. 한푼이라도 아쉬운 점주들 입장에서는 이같은 지원을 쉽게 포기할 수 없을 터. 이에 손실이 나더라도 ‘심야영업’ 할 수 없게 유도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 전기세 지원 미끼로 심야영업 강제?… 편의점 본사 꼼수 논란 

실제로 GS25의 100% 전기세 지원은 심야영업을 하는 가맹점에만 적용된다. CU도 심야영업이 전제되야 일정 부분의 전기세가 지원된다. 세븐일레븐도 사정은 같다.  실제로 이같은 지원 때문에 심야영업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점주들이 상당하다고 점주들은 얘기하고 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인 이호준(GS25 부천지역 경영주협의회 부천, 김포지역장) 씨는 “전기세 지원 혜택을 쉽게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한푼이라도 아쉬운 점주들 입장에서 고민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걸 것이 전기세는 편의점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비용이다. 한달에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이 나가기도 한다. 심야영업을 포기한다고 해서 전기세 비용이 낮아지는 것이 아닌만큼 점주들 입장에서는 쉽게 결단을 내리기 어렵다.

이에 대해 하승재 전국편의점주협의회 편의점본부 대표는 “편의점은 영업을 안 한다고 해서 전기를 안 쓰는 게 아니다. 영업을 안 해도 냉동고 등이 돌아가기 때문에 전기가 계속 나간다”며 “여름같은 때는 한달 전기세가 100만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심야영업을 안 하면 편의점 본사가 전기세 지원을 끊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폐기 지원금을 축소하기도 경우도 있어 점주들 입장에선 심야영업을 중단을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성종 한국세븐일레븐가맹점주협의회 부회장은 본사의 이같은 조치가 심야영업을 강제하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시내 가맹점주와 시민들을 상대로 편의점 명절 휴무와 심야 영업에 대한 인식조사를 한 결과. <그래픽=이선민 기자>
[사용된 이미지 출처:프리픽(Freepik)]

동대문에서 편의점을 운영 중인 이 부회장은 2013년 본사에 심야영업을 중단을 요청한 후 새벽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재 그는 전기세 50% 지원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본래 전기세 지원은 가맹계약 당시 약속됐던 조건이었다”며 “이후 2013년 심야영업 중단을 요청할 수 있는 법이 생기면서 바로 새벽 영업 중단을 요청했다. 이후에도 전기세 지원은 이뤄졌다. 하지만 그해 심야영업 중단 신청 사례가 많아지자 본사가 가맹 계약 시 ‘심야영업을 해야만 전기세 지원이 가능하다‘는 특약 조항을 넣기 시작했다. 신규 가맹점주 입장에선 19시간 영업을 했을 때보다 조건이 좋으니 24시간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24시간 영업 굴레 갇힌 편의점주, 이들도 쉬고 싶다 

하지만 심야영업은 갈수록 편의점주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건비 부담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경기 침체, 경쟁 심화로 경영난은 계속 가중되고 있다. 인건비 부담에 아르바이트생을 제대로 고용하지 못하다보니 장기간 근로에 시달리는 점주들도 상당하다.

서울시가 시내 5대 편의점 주인 951명의 근무환경실태를 조사해 지난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편의점주 37.9%가 한달 동안 쉬는 날이 하루도 없다고 답변했다. 편의점주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65.7시간에 달했다. 이는 국내 전체 자영업자 주당 근무시간 48.3시간보다 17.4시간이 더 많다. 또 근무 중 한끼 식사시간은 평균 15.6분에 그쳤다.

안진걸 소장은 “현행법상 가맹본부는 야간영업을 강제하면 안 된다”며 “하지만 편의점 본사들이 지원금을 미끼로 점주들에게 심야영업을 강제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사위크 DB>

‘365일 24시간 의무영업’에 대한 반발도 컸다. 전체 응답자의 86.9%가 명절 당일 자율영업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93.1%가 현재 심야영업을 하고 있으나 중단 희망을 밝힌 응답자도 62%에 달했다. 지난 20일 거리로 나온 편의점주들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명절 휴무와 영업 자율권 확대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편의점 본사들은 이에 대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고 있다. 명절 휴무에 대해선 시민들의 불편을 감안해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타난다.

하지만 서울시가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조사 결과 고객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응답자 중 편의점 명절 자율휴무제를 찬성한 비율은 65.3%에 달했다. 심야시간 자율휴무제 찬성률이 71.4%로 나타났다.

가맹점주 단체와 시민단체에선 편의점 본사들의 교묘한 영업시간 강제 행위에 대해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 역시 “공정위에 신고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소상공인 지원책을 발표하면서 가맹점의 영업시간 구속행위에 대한 실태 조사에 나선다고 밝힌 바 있다.

내일이면 민족 명절인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가족들과 따뜻한 밥 한끼를 먹겠다는 점주들의 호소를 되새겨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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