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 ‘자회사 방식’ 정규직 전환 강행에 “이강래 사장 퇴진” 반발

지난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한국도로공사정규직전환공동투쟁본부가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이들은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에 대한 직접고용을 촉구했다. /뉴시스
지난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한국도로공사정규직전환공동투쟁본부가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이들은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에 대한 직접고용을 촉구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를 약속했다. 이후 모든 공공부문에서 정규직 전환이 추진됐고, 대부분 마무리 된 상태다.

하지만 비정규직 규모가 가장 큰 축에 속했던 한국도로공사에서는 여전히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정규직 전환을 위해 마련된 노·사·전문가협의회는 원만한 합의를 도출하는데 실패했다. 이후 사측이 ‘자회사 방식’ 강행 움직임을 보이자 반대 측에선 “이강래 사장 퇴진”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노·사·전문가협의회 파행에도 자회사 전환 강행

도로공사와 민주노총에 따르면, 도로공사는 추석연휴가 끝난 직후인 지난 27일부터 ‘요금수납원 자회사 전환 개별동의서’를 접수받고 있다.

도로공사가 배포한 알림 문서엔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노사간 협의를 통해 요금수납원은 자회사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하기로 결정됐다”는 언급과 함께 기간 및 구체적인 동의서 접수 방법이 담겨있다. 특히 “서류 미작성시에는 향후 고용안정 방안 마련시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현장 배치시 타지역 배치 등)”이란 문구도 눈에 띈다.

함께 배포된 ‘근로계약 신청서’에는 “고속도로 요금수납원 정규직 전환에 따라 작성된 노사합의문 내용에 동의하며 이를 준수한다”는 내용이 가장 먼저 적시돼있다. 또한 중요표시와 함께 “본 신청서는 현재 진행 중인 근로자지위확인소송 및 임금 청구소송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또한 근로자가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승소하더라도 자회사 근로조건에 동의하며 자회사 전환 효력은 유지된다”고 적혀있다.

사측이 제시한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요금수납원 정규직 전환방안 거부확인서’를 받는다. 여기엔 “법원 판결 전까지 도로공사의 기간제근로자로, 수납업무가 아닌 공사 조무원이 수행하는 업무(도로정비, 조경, 청소, 경비 조리원 등)가 부여된다”, “근로자가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통행료 수납업무를 수행하는 자회사의 직원이 될 수 없다”, “근로자가 패소할 경우 기간제 근로가 종료되며 공사 또는 자회사의 직원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측은 “도로공사가 주장하는 노사합의문은 정규직전환 협의기구에서 결정된 합의내용이 아니고, 일부 자회사에 찬성하는 근로자대표와 도공 사측이 합의한 것”이라며 “직접고용을 주장하는 수많은 요금수납원들의 요구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승소하더라도 자회사 전환 효력이 유지된다는 것은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강조했다.

‘요금수납원 정규직 전환방안 거부확인서’의 내용에 대해서도 “소송결과와 상관없이 수납업무 보다 과중한 업무를 부여하여 자회사에 찬성을 유도하는 행위로 밖에 볼 수 없는 아주 악질적인 꼼수이고, 비정규직을 두 번 죽이는 행위”라며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이들은 도로공사의 일방적 행보를 강력 규탄하며 개별동의서 및 거부확인서 서명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도로공사의 비정규직 문제는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는 갈등이다. 도로공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한 요금수납원들은 현재 1심과 2심에서 모두 승소해 대법원 판결만을 남겨놓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자 도로공사 역시 지난해부터 노·사·전문가협의회를 구성하고 방안 마련에 나섰다.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한 요금수납원 등은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도로공사는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이 기본 입장이었다. 결과적으로 노·사·전문가협의회는 원만한 합의점을 찾는데 실패했다. 일부 근로자대표가 자회사 방식에 반대했고, 전문가위원들도 더 이상 협의가 어렵다며 중단을 선언했다.

이처럼 노·사·전문가협의회에서 결론이 도출되지 못했음에도 도로공사는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을 강행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도로공사 측은 “협의회는 파행됐지만, 원칙적으로 정규직 전환 방식 결정은 노사간 협의사항이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에도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업무가 아니라면 노사간 협의에 따라 전환 방식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며 “근로자대표 6명 중 1명만이 반대했고, 나머지는 모두 자회사 방식에 동의했기 때문에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최종 판결 전까지 수납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가 주어지도록 하는 것은 자회사 방식에 동의한 요금수납원들과 같은 업무를 맡길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도로공사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직접고용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꼼수를 쓰고 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개별동의서 및 거부확인서에 명시된 내용들이 요금수납원들을 압박하고,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 또한 제기된다.

무엇보다 도로공사의 이 같은 행보는 문재인 정부가 기치로 내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갈등만 점점 커지고 있는 도로공사가 언제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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