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검찰이 1심 재판부가 피해자의 ‘정조’를 언급하는 등, 성폭력 재판에서 준수해야할 법령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뉴시스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검찰이 1심 재판부가 피해자의 ‘정조’를 언급하는 등, 성폭력 재판에서 준수해야할 법령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지난 20일 검찰은 무죄가 선고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당시 알려진 검찰의 항소 이유는 법리 오해와 사실 오인, 심리 미진 등이었다. 항소 제기 일주일 후인 지난 27일에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나왔다. 1심 재판부가 피해자의 ‘정조’를 언급하는 등, 통상 성폭력 재판에서 준수해야할 법령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 안희정 전 지사의 재판을 통해 과거부터 지적된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법원의 문제점들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 검찰 “법원, 성폭력 재판 법령 어겼다”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 사건을 다루고 있는 서울서부지검은 앞서 법원에 항소장을 내고 법원의 법리 오해 등을 지적했다. 검찰은 그 근거로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안 전 지사 사건보다 명시적인 위력이 나타나지 않은 사건에서도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했다는 것.

검찰은 “안 전 지사 건은 명백하게 위력이 인정되고 위력으로 간음한 것도 인정이 된다”면서 “1심 재판부는 위력을 너무 좁게 해석한 것으로, 기존 대법원 판례와도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또 1심 재판부가 김지은 씨의 진술을 배척했다고도 밝혔다. 통화 내역이나 피해자의 정황 설명, 증인 등의 자료가 있었음에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검찰 측은 1심 재판부가 사실상 ‘김씨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후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검찰의 항소이유서에는 좀더 구체적인 사유들이 적시돼 있었다. 검찰은 “재판부는 피해자 김지은 씨를 심문하면서 ‘정조’라는 단어를 쓰거나 피해자의 심리상태에 대한 전문가 의견도 수렴하지 않았다”면서 “성폭력 재판과 관련한 법령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안 전 지사 측의 부적절한 내용의 반대 심문을 방치했고, 재판을 전부 공개하지 말아달라는 피해자의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아 2차 피해가 벌어졌다고도 지적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법원은 성폭력 재판에서 피해자의 인격이나 명예가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2심 재판에서는 이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재판부의 ‘소송 지휘권’을 엄정히 행사해달라고도 촉구했다. 반면 이 같은 검찰의 주장에 안 전 지사 측 변호인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입장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안 전 지사 측은 당시 재판부가 정조란 단어를 지적받고 즉각 정정했다고 말했다. 또한 심리 과정에서도 문제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1심 재판부의 ‘정조’ 발언을 비롯한 논란은 검찰이 항소를 제기하기 전부터 제기됐었다. 지난 16일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안 전 지사의 무죄 선고에 대해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정조라는 말을 꺼내어 꾸짖었다”면서 “또한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며 피해자가 성폭력 후 업무를 수행한 것을 무죄의 증거로 봤다. 유력 대선후보였던 안 전 지사가 행사할 수 있었던 일상적 권력을 ‘위력’으로 보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 대법원 “가해자 지시 따랐다? 무죄 이유 아냐”

검찰은 1심 재판부의 법리 오해 근거로 대법원 판례를 제시했다. 나아가 이달 12일에는 성폭력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가해자의 지시에 따르고 근무를 했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진술을 못 믿겠다고 밝힌 하급심 판결이 잘못됐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오기도 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같이 근무하던 간호사를 세 차례에 걸쳐 강해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병원장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1심에선 피해 간호사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뒤집혔다.

이 사건 역시 쟁점은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이었다. 유일한 증거는 피해를 주장한 간호사의 진술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믿기 어렵다’거나 ‘고소한 경위도 석연찮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주장을 모두 배척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진술의 주요 부분이 일관되면 사소한 사항의 진술이 다소 일관성이 없어도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면서 “피해자는 추행 경위와 추행 종료 이유 등에 대해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한편 안 전 지사의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 7월 김지은 씨의 변호인단은 “피해자 측 입장은 비공개되고, 안 전 지사 측에 유리한 증언만 공개돼 2차 피해가 심각하다”면서 “김씨는 불안증세로 병원에 입원해 재판에 출석하지 못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