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지난 928일 통계청은 2000년 이후 우리나라 1인 가구의 변화하는 모습을 담은‘1인 가구의 현황 및 특성보고서를 발표했네. 놀랍게도 1인 가구가 2000222만 가구에서 지난해에는 562만 가구로 2.5 배 넘게 늘어났더군.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5.5%에서 28.6%로 크게 늘어났고. 10가구 중 3 가구가 혼자 사는 가구라니 놀랍지 않는가? 우리나라 가족의 형태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들을 보면서 백석의 <수라 修羅>를 다시 읽었네. 좀 어렵더라도 함께 읽어보세.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이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매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싹다: 삭다. 긴장이나 화가 풀려 마음이 가라앉다. 가제: , 방금)

새끼거미, 큰거미, 좁쌀만 한 작은 새끼거미 등을 문밖으로 버리면서 겪는 시인의 감정 변화를 천천히 따라가 보세나.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새끼거미를 버리지만, 그 새끼거미가 있던 곳에 나타난 큰거미를 보자 가슴이 짜릿해지고, 큰거미를 새끼 있는 곳으로 가라고 차디찬 문밖으로 버릴 때는 서러워하기까지 하네.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큰거미가 있었던 곳으로 와서 아물거릴 땐 가슴이 매이는 듯하고, 오르라고 손을 내밀었지만 자기가 무서운 듯 달아나버릴 땐 서럽고, “엄마와 누나나 형만나라고 문밖으로 버리긴 했지만 쉽게 만날 수 있을지 걱정이 돼 슬퍼하기도 하고요즘 생태학적 상상력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저런 시인의 감정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생태학적 상상력이 어떻게 발달되어 가는지를 알 수 있을 걸세. 개미 가족들의 이산을 보고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었다가, 서러워하고, 가슴이 메고 슬퍼하는 시인의 점층적인 감정 변화가 바로 생태적 감성의 표출인 거지.

이 시는 1930년대부터 시작된 가족의 해체를 우화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시로도 해석할 수 있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연대감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을 백석은 이미 80여 년 전에 감지한 거지. 평안도 정주가 고향인 백석은 가족들을 떠나 서울, 함흥, 동경, 만주 등에서 살았네. 백석의 많은 시들이 혈연적 유대감이 끈끈하게 유지되는 공동체적 삶을 노래하고 있는 것도 아마 그 자신이 그런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고향을 떠나 살아야만 하는 자신의 신세가 저 거미들 같아서 서럽고 슬퍼졌던 거야.

백석은 가족의 해체가 가속화될 것을 알기라고 한 듯 시 제목을 아수라阿修羅에서 따온 修羅로 달았네. 아수라는 고대 인도신화의 악신(惡神)인데, 그 아수라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에서 아수라장이라는 말도 나왔어. 그래서 우리는 눈을 뜨고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상황을 흔히 아수라장이라고 표현하지. 백석에게는 가족들이 뿔뿔이 헤어져 사는 모습이 아수라장만큼 처참하게 보였던 것 같네. 그런 그가 지금 여기의가족들 모습을 보면 뭐라고 표현할지 무척 궁금하구먼.

사회학자들은 가족을 크게 확대가족과 핵가족으로 나누네. 확대가족이란 3대 이상이 한 집에서 사는 가족 형태로 아직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전 농촌공동체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가족 형태지. 쉽게 말하면,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고모, 이모 등이 가족구성원으로 포함되면 확대가족이야. 반면에 핵가족은 부부와 자녀로만 이루어진 근대의 가족 형태일세. 2촌 이내의 사람들이 한 가족을 구성하고 있지.

백석이 아쉬워한 것은 확대가족의 해체이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목격하거나 직접 경험하고 있는 건 핵가족의 해체야. 2017년 말 현재 우리나라에서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28.6%나 된다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수치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네. 취업난과 가치관의 변화로 결혼을 꼭 해야 한다거나 자식을 꼭 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이혼이나 사별로 혼자 사는 중장년층이 늘어나고 있으니 당연한 거지. 아마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걸세. 그래서 예전처럼 끈끈한 혈연적 유대감으로 하나가 된 가족을 그리워하는 백석 같은 사람들이나 우리처럼 나이 든 사람들은 당장 확대가족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게 좋을 거야. 노인들도 새로 등장하는 다양한 형태의 신가족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함께 살아갈 준비를 해야만 마음이 편안해지는지금 여기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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