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4만원.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의 5일 정오 기준 비트코인 시세다. 정확히 1년 전인 2017년 10월 5일 정오엔 486만원이었다. 최근 시세가 1년 전에 비해 250만원 가량 높다. 하지만 실제 위상은 정반대다. 지난해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암호화폐 광풍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렇다고 암호화폐가 완전히 몰락한 것은 아니다. 1년 전에 비하면 훨씬 더 많은 종류의 암호화폐가 탄생해 거래되고 있다. 미래에 대한 투자로 암호화폐를 선택하는 이들 역시 여전히 적지 않다. 1년 새 확 달라진 암호화폐의 현주소를 <시사위크>가 진단해본다.

지난해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어들었다. 암호화폐 광풍이 사라진 것이다.
지난해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어들었다. 암호화폐 광풍이 사라진 것이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비트코인이라고 알아? 블록체인이란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가상화폐인데….”

지난해 연초만 해도 이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 경계의 눈빛부터 돌아왔다. 마치 길거리에서 “도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는 듯 말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거의 모든 사람이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하반기, 대한민국은 암호화폐 광풍에 휩싸였었다. 하루에 100만원씩 오르고, 일주일이면 두 배 세 배로 뛰는 암호화폐 시세에 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의 달콤한 꿈을 꿨다.

암호화폐 투자로 순식간에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퍼져나가면서, 많은 자금이 암호화폐 거래소에 유입됐다. 시세가 급등 또는 급락할 때면 거래소가 다운되기 일쑤였고, 짧은 시간에 이익을 실현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막대한 손해를 본 이들도 적지 않았다. 암호화폐를 둘러싼 논란도 거세게 일었다. 튤립버블에 비교하며 ‘사기’라는 비판도 있었고, ‘화폐 혁명’이자 4차산업혁명시대의 기반이 될 핵심기술이란 평가도 있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암호화폐 시세는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연초 100만원을 오가던 비트코인 시세는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600만원과 700만원을 단숨에 돌파하더니 11월엔 1,300만원까지 올랐다. 특히 11월 말엔 하루에 100만원씩 오르며 세간을 들끓게 만들었다. 12월 역시 가파른 상승세가 계속됐고, 2,000만원 고지마저 점령했다. 절정은 올해 초였다. 거침없이 오르다 한동안 주춤했던 비트코인 시세가 새해 들어 다시 들썩였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2,500만원까지 올랐다. “가즈아”라는 신조어도 이러한 광풍 속에 탄생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결국 탈이 났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규제 방안이 나오고, 더 강력한 규제가 예고되면서 암호화폐 시세는 곤두박질쳤다. 연초 2,500만원까지 올랐던 비트코인 시세가 700만원대로 돌아오기까지는 딱 한 달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후 오르락 내리락을 거듭한 비트코인 시세는 다시 700만원대에 자리 잡고 있다.

시세 급등이 일확천금의 달콤한 꿈을 꾸게 해줬다면, 시세 급락은 그 꿈을 산산조각 냈다. 꿈에서 깬 이들은 쓰린 속을 달래며 현실로 돌아왔다. 그렇게 암호화폐 광풍도 차갑게 식어버렸다.

처음에 비트코인 100만원어치를 샀는데, 금세 300만원이 됐었어요. 100만원을 빼서 사고 싶은 것도 사고, 부모님께 용돈도 드렸죠. 앞으로 큰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참 행복했어요. 이후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 모아 몇백만원을 더 투자했는데, 갑자기 뚝뚝 떨어지더라고요. 이제 끝인가 싶어 손해를 감수하고 팔았더니 다시 오르지 뭐에요. 그렇게 이익과 손해를 오가다 결국은 본전치기 수준에서 손을 뗐어요. 시세를 보느라 잠도 제대로 못자는 제 모습이 한심하더라고요.

지난해 암호화폐 투자에 나섰던 사회초년생 A씨(29)의 말이다.

식어버린 암호화폐 광풍은 우리 사회 전반에 무기력증을 가져오기도 했다.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달콤한 꿈이 이내 독으로 돌아온 것이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에 반발하는 이들과 더 강력한 규제를 요구하는 이들이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 더욱 찬물을 끼얹은 것은 각종 사건·사고였다. 암호화폐와 관련된 사기사건이 기승을 부리고, 암호화폐 거래소가 대규모 해킹 피해를 입는 일이 반복해 발생했다. 이는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 및 관심을 더욱 떨어뜨리는 계기가 됐다.

그렇다고 암호화폐가 사양길에 접어든 것은 아니다. 과거와 같은 시세 급등은 없지만,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128조에 달한다. 또한 암호화폐 종류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지난해만해도 빗썸에서 거래 가능한 암호화폐가 10여종에 그쳤으나, 지금은 50여종이 넘는다. 주식시장의 IPO에 해당하는 암호화폐 ICO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암호화폐에 대해 잘 모른 채 뛰어드는 이들이 많았던 지난해와 달리 신중하게 따져보고 투자하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암호화폐 전문가는 “1년, 2년과 같은 단기투자를 목적으로 암호화폐를 바라봐서는 안되며, ICO의 경우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암호화폐 시장이 커질수록 사기 또한 더욱 교묘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록 암호화폐 시세 및 화제성은 크게 떨어졌으나, 암호화폐를 우리 사회에 연착륙시키기 위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암호화폐 관련 법 제정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고, 각 기업들도 암호화폐 대응으로 분주하다. 시세 하락으로 인해 암호화폐 광풍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암호화폐 정착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모습이다.

암호화폐 거래소 업계 관계자는 “가히 폭발적이었던 지난해 및 올해 초에 비해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고, 거래량 및 신규 자금 유입도 줄어든 게 사실”이라면서도 “논란이 다소 잠잠해지면서 암호화폐에 대한 논의가 훨씬 정상적인 환경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여전히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암호화폐의 허상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여전하고, 애꿎은 피해를 막아야한다는 우려도 계속해서 남아있다. 반면, 암호화폐가 지닌 장점과 미래가치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세간의 관심은 1년 새 뚝 떨어졌지만, 암호화폐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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