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기소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집행유예를 선고를 받고 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변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기소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집행유예를 선고를 받고 5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변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구속 234일 만에 석방됐다. 신 회장은 경영비리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국정농단 뇌물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이에 항소심에서는 사실상 뇌물 혐의에 대한 판단에 따라 석방 여부가 갈리게 됐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뇌물을 유죄로 인정했다. 그러나 “책임을 엄히 묻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같은 사안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대법원에서 뒤집힌다고 해도 구속 여부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박근혜 항소심 결과에 초조했던 롯데, 결국 웃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법정구속 된 신동빈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다만 뇌물 혐의는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가 인정됐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던 이재용 부회장과는 다른 결과였다. 하지만 구치소를 나서던 신 회장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판사 강승준)는 5일 오후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신 회장에 대해 징역 2년6개월과 벌금 180억원·추징금 72억여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검찰에 따르면 신 회장은 2015년 11월 면세점 사업에서 탈락한 후 다음해인 2016년 3월 11일과 14일 각각 안종범 전 경제수석과 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 이후 롯데는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70억원을 지원했고, 2016년 12월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됐다. 검찰과 1심 재판부는 이 같은 정황을 볼 때 롯데가 추가로 건넨 70억원이 뇌물이라고 봤다. 명시적으로 청탁을 하진 않았더라도 당시 면세점 사업이 주요 현안이었던 만큼 묵시적인 청탁이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1심 재판부는 당시 “신 회장 입장에서는 면세점 탈락 후 특허 재취득이 절실했던 만큼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도 “이는 경쟁기업들은 물론 정당하게 인허가를 받으려는 기업들에 허탈감을 주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요구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선처하면 뇌물을 주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며 “대통령과 재벌 총수 사이의 뇌물은 엄히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신 회장에 대해 “책임을 엄히 묻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요구해 수동적으로 응했고, 불응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며 “의사결정의 자유가 다소 제한된 상황이었다”는 게 항소심의 설명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 유죄가 인정됐음에도 집행유예로 풀려남으로써 이재용 삼성 부회장 역시 대법원에서 유죄로 뒤집히더라도 또 다시 구속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뉴시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 유죄가 인정됐음에도 집행유예로 풀려남으로써 이재용 삼성 부회장 역시 대법원에서 유죄로 뒤집히더라도 또 다시 구속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뉴시스

◇ 이재용 부회장 대법 선고에 미칠 영향은?

신 회장은 구속 수사 때부터 줄곧 무죄를 주장해왔다. “박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면세점 사업을 잘 봐달라고 청탁을 하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라며 “오히려 경영권 분쟁으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회장직을) 그만두라는 말을 듣지 않을까 겁이 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롯데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데다 신 회장의 항소심 공판에선 ‘말 바꾸기’ 논란도 불거졌다.

앞서 신 회장은 70억원 추가 출연은 고(故) 이인원 부회장이 처리했다고 주장해왔다. 이 같은 발언은 2016년 12월 청문회 당시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검찰과 재판부의 지적이 지속되자 결국 지난 7월 “박 전 대통령이 독대 말미에 K스포츠재단 지원을 요청했다”고 기존 입장을 바꿨다.

또한 박 전 대통령에게 청탁할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주장과 달리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에는 ‘박 전 대통령이 하남시 부지를 임대해 75억원 규모의 시설을 짓고 운영은 K스포츠재단이 하는 것으로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강요에 의한 의사결정이었다는 점에 무게를 뒀다.

이번 판결에 따라 국정농단 사태로 기소돼 구속됐던 재벌 총수들은 사실상 경영일선으로 복귀하게 됐다. 또한 대법원 선고만을 남겨둔 이재용 부회장 한숨을 돌리게 됐다. 신 회장이 항소심에서도 유죄로 인정돼 1심의 선고가 유지될 경우 이 부회장 역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죄가 인정됐음에도 집행유예로 풀려남으로써 이 부회장 역시 대법원에서 뒤집히더라도 또 다시 구속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아울러 항소심 재판부는 신 회장의 경영비리 혐의에 대해 롯데시네마 매점에 영업이익을 몰아줬다는 일부 배임 혐의를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총수 일가에 공짜 급여를 지급했다는 횡령 혐의에는 1심과 달리 무죄로 판단했다.

한편 이날 신 회장의 항소심 선고 직후 입장을 밝힌 롯데지주 측은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존중한다”면서 “롯데는 그간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던 일들을 챙겨 나가는 한편,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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