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주지훈이 영화 ‘암수살인’(감독 김태균)으로 강렬한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쇼박스 제공
배우 주지훈이 영화 ‘암수살인’(감독 김태균)으로 강렬한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쇼박스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꽃미남 황태자, 까칠한 재벌남, 능글맞은 저승차사, 엘리트 북한 보위부 요원까지 어느 것 하나 비슷한 것이 없다. 맡은 역할마다 완벽히 캐릭터에 녹아들어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이번에도 새롭다. 피도 눈물도 없는 연쇄살인마로 분한 그는 선과 악을 오가는 또 다른 얼굴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배우 주지훈, 제대로 일냈다.

주지훈은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암수살인’(감독 김태균)으로 또 한 번 연기 변신에 나섰다. ‘암수살인’은 감옥에서 7건의 추가 살인을 자백하는 살인범과 자백을 믿고 사건을 쫓는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 실화극이다. 부산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모티브(2012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에피소드)로 감옥 안의 살인범 강태오(주지훈 분)와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살인범의 자백을 유일하게 믿고 사건의 실체를 쫓는 형사 김형민(김윤석 분)의 치열한 심리전을 담았다.

‘암수살인’은 잔인하고 자극적인 묘사 없이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선사하며 범죄 영화도 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개봉 7일째 200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개봉 8일째인 10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다. 올여름 가장 뜨거운 시간을 보낸 주지훈은 ‘신과 함께-인과 연’, ‘공작’ 등에 이어 ‘암수살인’까지 흥행에 성공하며 3연타석 홈런을 날리게 됐다.

주지훈은 ‘암수살인’에서 희대의 살인범 강태오로 분해 삭발과 노 메이크업 등 거친 외모로의 외적 변신뿐 아니라 강렬한 억양과 독특한 성조를 오가는 부산 사투리를 능숙하게 소화했다. 특히 흔한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아닌 실제에 대한 감정조차 불가능해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을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그려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그는 스크린 속으로 만난 자신의 새로운 얼굴에 대해 “관객들의 평가가 중요하다”며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주지훈이 ‘암수살인’에서 김윤석과 연기 호흡을 맞춘 소감을 전했다. /쇼박스 제공
주지훈이 ‘암수살인’에서 김윤석과 연기 호흡을 맞춘 소감을 전했다. /쇼박스 제공

-‘암수살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잘 넘어가는 대본들이 있어요. 읽으면서 그냥 쭉 넘어가는 내용들이 있는데 ‘암수살인’의 이야기들이 재밌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새롭잖아요. 실화를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너무 가볍게 들릴 수 있어서 걱정도 되지만 실제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이야기로만 읽었을 때 형사 장르물을 탈피한 느낌이 들었어요. 새로운 이야기가 재밌기 쉽지 않거든요. 이 이야기는 새로우면서도 재밌었어요. 그래서 끌렸어요. 캐릭터 자체도 울퉁불퉁한 느낌이 있었는데 그런 점도 매력적이었고요. 걱정도 됐어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관객들이 잘 받아들여주실까?’하는 생각에서요. (김)윤석 선배가 큰 힘이 됐죠. 선배님이 계시면 많은 도움을 받고 의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여하게 됐죠.”

-실제로 김윤석 배우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나요.
“그럼요. 실제적인 연기 디렉션을 주는 건 아니에요. 선배님들이 그런 거 잘 안 하세요. 내가 물어보면 답해주시지 막 나서서 그렇게 해주시진 않으시거든요. 왜냐하면 연출가가 따로 있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조금 부족해도 에너지를 채워줄 수 있는 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걱정을 하나 덜어놓으니까 더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용기를 내서 펼쳐내기도 좋았던 것 같아요.”

-워낙 대선배이기 때문에 무섭거나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다행히 (하)정우 형이랑 친하니까 ‘윤석 형 너무 좋고 너무 귀엽다’면서 저랑 잘 맞을 거라고 말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무섭다기보다 신나는 마음으로 만났어요. 인간관계는 내가 어렵게 생각하면 어렵게 다가오고 내가 편하게 생각하면 이 사람도 편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관계라는 건 함께 하는 거니까요. 물론 선을 안 지키면 서로 불편해지겠지만요. 그리고 도움이 되는 수준까지 해야겠다는 부담이 있어서 열심히 준비했죠. 영화에서 윤석 선배를 갖고 놀고, 그의 감정을 쥐락펴락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요.”

-스크린 속 만난 주지훈의 새로운 얼굴은 어땠나요.
“제가 보는 건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아요. 언론배급시사회가 끝나고 인터뷰도 그렇고 얘기들을 들어봤을 때 외적인 변화를 준 게 영화 안의 캐릭터를 이해시키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이에요. 메이크업도 안 하고 머리도 짧게 자르고 나름 열심히 했는데 ‘뭐 하러 저랬어?’하면 잘못한 건데, 도움이 됐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부산 사투리를 쓰면서 연기하는 게 외국어로 연기하는 것과 비슷할 것 같아요. 영화에서 쓴 부산 사투리가 어려운 난도의 사투리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준비했나요.
“곽경택 감독님이 제작자이자 작가로 같이 하셨는데 몇 달 동안 매일 만나서 과외공부하듯 했어요. 사실 진이 빠지긴 했었어요. 사투리 교육이라는 개념보다는 카메라 돌린 거랑 똑같이 하는 거예요. 사투리가 조금 됐다 싶으면 감정 넣어서 계속했어요. 연극처럼. 새로운 작업 방식이었고 고됐지만, 보람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도움이 많이 됐어요.”

‘암수살인’에서 연쇄살인마 강태오로 분한 주지훈 스틸컷. /쇼박스 제공
‘암수살인’에서 연쇄살인마 강태오로 분한 주지훈 스틸컷. /쇼박스 제공

-사투리도 그렇고 쉽지 않은 도전이었어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부정적인 평가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제 무덤을 파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생각보다 단순하고 긍정적인 성격이에요. 어릴 때부터 ‘친구’, ‘똥개’처럼 사투리가 나오는 영화들을 되게 재밌게 봤거든요. ‘나도 하고 싶다. 언젠간 할 거야’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암수살인’ 대본을 받고 가장 신났던 이유도 사투리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큰 실수였죠. 작품을 선택한 게 실수가 아니라 사투리를 쉽게 봤던 것 같아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어요. 제가 제 발목 잡았죠. 되게 많은 새로운 시도들을 해봤어요. 원래 대본에 적고 이런 스타일이 아닌데 한 글자 한 글자 대본에 체크도 하고, 곽 감독님이 녹음해준 테이프 들으면서 대여섯 시간씩 걸어 다니기도 하고요.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하면서 중얼거리기도 했어요.”

-강태오라는 캐릭터 자체가 평범함을 벗어난 감정불가의 연쇄살인범이었어요.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했나요. 
“이 캐릭터를 이해할 때는 인간이 악해지는 데는 생각보다 큰 이유도 없고 그럴 수 있다라고 그냥 받아들이려고 했어요. 영화에서 살인이 거의 이유가 없는 ‘묻지마 살인’이잖아요. 사람이 사람을 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신병인 거잖아요. 책에서 봤는데 우리가 피를 보면 놀라고 그러는 게 방어기제가 있대요. 그래서 누군가를 죽이고 이런 것은 뇌가 거부한데요. 그런데 그 본능을 뚫고 살인을 저지른다는 것은 제정신이 아닌 거죠. 그래서 그 감정을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했기 보다는 최대한 받아들이려고 했어요. 그럴 수 있다.”

-최근 출연 작품들을 보면 만만하지 않은 역할들을 소화하고 있어요. 과거 꽃미남 청춘스타 포지션을 쭉 유지하고 갈 수도 있었는데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선택하며 다른 길로 걷고 있는 모습이에요.
“단순하기도 하고 사람을 잘 믿어요. 그리고 책이든 영화든 한 장르에 빠져있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이것저것 다 재밌어하는 스타일이에요. B급 코미디도 좋아하고 제3세계 영화인데 상 받았다 그러면 궁금해서 보기도 하고요. 보다 보면 또 ‘이 영화는 또 이런 재미가 있구나’ 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여러 장르의 대본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실수한 적도 많고, 맞지 않은 옷을 입었다는 평가를 받은 적도 있고요. 거부감이 많이 없어요. 그게 저에게 약일지 독일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죠.”

올 한 해를 가장 뜨겁게 보낸 주지훈. /쇼박스 제공
올 한 해를 가장 뜨겁게 보낸 주지훈. /쇼박스 제공

-‘암수살인’에서도 ‘공작’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심리전을 펼쳐요. 두 작품 모두 소화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결이 달라요. ‘공작’은 현장에 가는 건 편했는데 신나게 가서 끝나고 나면 지치는 거고 ‘암수살인’은 현장에 가기가 싫었어요. 너무 가기가 싫은데 막상 가면 시원한 느낌? 한 여름에 찬물 샤워하면 너무 시원한데 몸에 뿌리기까지 쉽지 않잖아요. 현장 가면 재밌어할 거고 집중하면서 가기 전에는 두려운 거예요. 언어도 그렇고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공작’은 그냥 신나서 갔다가 지쳐서 돌아오고 그랬죠.”

-‘신과 함께’에 ‘공작’ 그리고 ‘암수살인’까지 올 한 해를 정말 뜨겁게 보냈어요.
“정말 감사한 해인 것 같아요. 제가 마음먹고 올해는 관객들 많이 만나고 싶다고 한다고 되지도 않거든요. 행운이 찾아온 한 해였어요. 제 코가 석자라 보고 고르지 않거든요. 운 좋게 들어온 작품들이 장르도, 캐릭터들도 겹치지 않게 감사하게 들어왔고 그걸 했더니 순차적으로 개봉을 하고 있고요. 너무 다행히 관객분들이 많이 사랑해주셨고요. 이게 마치 제 입장에서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영화배우 캐릭터를 했을 때 글로써도 작위적일 만큼 감사한 상황이에요. 정말 감사하게 잘 보내고 있어요.”

-차기작은 드라마예요. 오랜만에 브라운관으로 돌아오는데 소감이 어떤가요. (주지훈은 내년 초 방송 예정인 MBC 새 드라마 ‘아이템’에 캐스팅돼 지난 9월 말부터 촬영에 들어갔다.)
“설레고 걱정도 많이 돼요. 드라마를 4년 만에 하는 거라. 얘기를 들어봤는데 시스템이 많이 변했더라고요. 그런 시스템에 적응도 해야 하고요. 다행인 것은 캐스팅 된 배우들(김강우·진세연)이 다 작업을 했던 사람들이라 낯설지 않아요. 호흡도 잘 맞았던 배우들이고요. 또 드라마가 워낙 대중들과 스킨십이 좋잖아요. 그런 점에서는 기대가 있고요. 걱정도 돼요. 나이도 먹어서 밤은 또 어떻게 새나 싶기도 하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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