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미정 기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수장 자리가 15개월만에 메워졌다. 1년 넘게 비어졌던 자리가 드디어 채워진 점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다만 그 전에 새 수장을 찾는 작업이 왜 이렇게 오래 걸렸고, 그 과정에서 노출된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은 그 책임과 권한이 막강한 자리다. 640조원이 달하는 국민의 노후자금을 운용하고 책임지는 자리인데다 투자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이 때문에 ‘자본시장의 대통령’이라는 칭호까지 갖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매력적인 타이틀을 갖고 있음에도 CIO 인선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구인난’을 겪었다는 사실은 널리 퍼져 있는 얘기다. 이는 국민연금 CIO직이 ‘독이 든 성배’라는 인식이 업계 내에 자리잡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말부터 투자업계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CIO직 하마평에 올랐지만 정작 당사자들을 손사래부터 치는 상황이 연출됐다. 그 배경을 두고 업계에선 국민연금 CIO직이 임기가 짧고 보수가 낮은데다 정치적 외풍까지 시달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데서 원인을 찾았다.

실제로 국민연금 CIO 전임자들 가운데서는 수난을 겪은 이들이 많다. 독립성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다 보니 정치적인 외풍에 시달리다 초라하게 물러나는 일이 많았다. 심지어 홍완선 전 CIO의 경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논란에 연루돼 구속된 전례까지 있다. 또 정권 교체 시기에 석연치 않게 퇴직해 업계에서 조용히 자취를 감추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 내부에서조차 “퇴직한 CIO 중에 잘 된 사람이 없는데, 누가 오려고 하겠냐”는 자조 섞인 한탄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정치적 외풍 논란은 이번 CIO 인선에서도 반복됐다. 국민연금은 올 초부터 CIO 인선 절차를 시작했지만 1차 공모에서 적격 후보를 찾지 못하고 잡음만 노출했다. 당시 1차 공모에서 최종 후보에 올랐던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으로부터 응모를 권유 받았다며 인사 개입 의혹을 제기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같은 잡음 끝에 진행된 2차 공모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운용업계 경험이 없는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이 막판에 유력주자로 부각되면서 코드인사 논란이 불거지는 등 진통이 이어졌다.

이같은 우여곡절 끝에 안효준 CIO가 최종 발탁됐지만 인선 과정에서 노출된 잡음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안효준 CIO는 운용업계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근무한 이력도 갖고 있는 인사다. 일단 무난한 인사가 선임됐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내부 출신의 장점을 발휘해 오랫동안 수장 공백으로 흐트러진 조직을 빠르게 안정화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새 수장이 인선됐음에도 한켠에선 불안해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기금운용본부 조직이 제대로 된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또 다시 정부가 입맛대로 흔들려 한다면 과거의 흑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복지부의 기금운용체계 개편안을 두고 기금운용본부 독립성 약화 우려가 불거진 점 역시, 이에 대한 안팎의 불신이 얼마나 큰지를 증명한다.

기금운용본부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선 불필요한 정치적 간섭이 없어야 한다. 조직 안정화는 노후자금의 안정적인 운용과 직결되는 중요한 이슈다. 가뜩이나 기금 고갈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또 다시 과거의 전례가 반복돼서는 안 될 것이다.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와 국민연금의 의지가 공허한 외침이 되질 않길 바란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