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렬(정책기획위원회 평화번영분과 위원 / 국방대 교수)
문장렬
▲정책기획위원회 평화번영분과 위원
▲국방대 교수

남북관계가 평화를 향하여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 평화와 함께 번영도 오리라는 기대감이 크다. 지난 9월의 남북정상회담과 평양선언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길에 세운 중요한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아마 종전선언과 비핵화, 평화협정, 남북연합 등이 통일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에 거쳐 갈 남은 중요한 이정표들일 것이다.

9월평양공동선언과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이하, 군사분야합의서)는 남북한 사이의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원칙과 실천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로 이어나가기로 하였다. 또한 한반도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적극 취해나가며 상시적 소통과 긴밀한 협의를 위하여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조속히 가동하기로 했다.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채택된 군사분야합의서에서 남과 북은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고, 이를 위하여 현재의 비무장지대보다 더 확장된 일정 구역에서 각종 군사연습을 중지하고 군용기의 비행을 금지하기로 했다. 또 비무장지대 내의 감시초소(GP)의 철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남북공동 유해발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의 평화수역화와 공동어로구역 설정, 교류협력 및 접촉·왕래 활성화에 필요한 군사적 보장 대책의 강구 등에 합의했다.

남북한 사이의 군사적 긴장완화에 관한 이러한 합의는 다음과 같은 중대한 함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남북한이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겠다는 것은 ‘사실상의 종전’을 선언한 셈이다. 종전선언은 지금까지 소위 당사자 문제로 논란이 있었지만 남북한만이 ‘개전 당사자’임에는 틀림없다. 남북한 사이의 종전은 참전, 휴전협정, 정전체제의 모든 당사국(자)들 사이의 공식적인 종전선언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선언이 진정 중요한 것은 앞으로 아무리 외부적 상황이 나빠지더라도 적어도 남북한 사이의 군사적 긴장과 전쟁은 막자는 것이다. 예컨대, 과거 북미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남북한 사이의 군사적 긴장도 덩달아 고조되어 한반도가 전쟁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던 경험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이다.

둘째, 남북한 사이의 군사적 적대관계 해소는 남북관계 일반의 발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토대가 된다. 평화 없이는 경제도 없다.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북 제재 국면에서 당장에 본격적인 남북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는 제재와 무관하게 얼마든지 실행할 수 있다. 그것은 ‘시간표’ 짜는 문제로써 ‘번영’을 치밀하게 설계하고 준비하면서 먼저 ‘평화’라는 기초를 튼실하게 다지는 일이다.

셋째, 남북한 사이의 평화가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를 견인하고 북미관계의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관계 정상화는 한반도의 평화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다. 한미동맹은 두 기둥의 연결보와 같다. 이러한 관계들의 구조를 보면 북미관계의 정상화가 비핵화와 제재의 문제로 지체와 정체를 반복하더라도 남북관계의 개선이 상황의 역진을 방지하고 엉킨 실타래를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별히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하여 9월평양선언은 남한도 문제 해결의 당사자임을 공식화했다. 북한이 초기에 어떤 목적으로 핵개발을 추진했건 일단 핵무장을 한 이상 그것은 남한에게도 군사적 위협이 된다. 따라서 앞으로 비핵화 과정에 남·북·미 3자가 참여해야 하며 남북 사이의 군사적 긴장완화가 핵문제의 해결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도록 남한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9월평양선언과 군사분야합의서의 내용들이 과연 실천에 옮겨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실질적으로 기여할지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려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그렇지 않겠는가. 누구도 미래를 함부로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래는 그저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46년 전에 발표된 7·4남북공동성명과 26년 전에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등은 모두 보수정권 시절에 나왔다. 최근 합의들의 근저에는 이전 합의서들의 정신이 면면히 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점에서 보수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질 만한 자격이 있다. 남북한 사이의 군사적 긴장완화가 국방태세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우리 군의 능력과 정신에 대한 부당한 불신일 뿐이다.

지금까지 남북 사이에 이루어진 모든 합의에는 민족의 자주와 자결 원칙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다. 이 역시 이 땅이 가진 역사의 산물이다. 한미동맹이나 국제 정세를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민족의 중지를 모아 평화를 주도하고 선도하자는 것이다. 남북한 사이의 적대적 군사관계는 평화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였다. 이제 그것을 ‘협력적’ 관계로 변화시켜 디딤돌을 만들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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