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 두 번째)이 16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아 아델 알 주베르 외무장관(왼쪽 세 번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AP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 두 번째)이 16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아 아델 알 주베르 외무장관(왼쪽 세 번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사우디아라비아의 언론인 피살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국제사회가 왕가 배후설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고 나선 한편 다수의 기업인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최되는 포럼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최근에는 국제 석유시장까지 논란에 휩싸였다. 석유를 방패로 국제사회의 압박에 대응하던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이번엔 증산을 언급하며 태세를 전환했다.

◇ “경제제재”에 “석유 보복”… 얼굴 붉혔던 미국·사우디, 빠르게 화해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왕실이 자말 카슈끄지 기자의 사망을 사주한 배후임이 드러날 경우 ‘몇 가지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사우디 측은 ‘왕국이 국제 경제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행사해 맞대응하겠다며 반발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국제 경제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란 물론 석유판매량 조절을 통한 유가 흔들기를 뜻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다음 사실들을 바탕으로 국제석유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최고의 석유 수출국이며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사실상의 의장국 역할을 맡고 있고, 마지막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소수의 산유국에 속한다.

논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각) 자신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과 20여분 동안 전화통화를 가졌으며, 살만 왕이 ‘기자 암살설’을 단호히 부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내가 그의 생각을 넘겨짚고 싶지는 않지만, 내겐 이 사건이 ‘로그 킬러(불한당)’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누가 알겠는가?”라며 사우디 왕실을 대변하는 모습도 보였다.

CNN은 15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 측이 카슈끄지 기자가 경찰 수사 도중 실수로 사망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즉 기자의 죽음은 하급 실무자들의 잘못이며, 왕실은 관련이 없다는 취지다.

◇ “배럴당 200달러·사우디 경제제재 ‘설전’은 모두 허세”

양국 정상의 전화통화가 있기 전까진 사우디아라비아 측에서 석유를 무기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국제원유시장에서 불안감이 고조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방송사 알 아라비야는 15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이 배럴당 80달러의 유가에 화가 났다면, 앞으로 100달러나 200달러, 혹은 그 두 배로 오를 가능성도 배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고 선언했다. 또한 앞으로 원유 거래에서 달러를 받지 않을 가능성(위안화 등으로 대체),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사우디아라비아가 러시아·중국과 군사전략적 관계를 강화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미국의 석유산업 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와 같은 강경발언들은 ‘블러핑’일 가능성이 높다. 석유 가격을 높이는 것이 사우디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배럴당 80달러의 유가는 이미 신흥국의 경제성장을 제약하는 수준이며, 추가적인 석유 감산은 국제경제를 침체시켜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더구나 유가가 에너지전환비용을 넘어설 정도로 높아지는 것은 산유국도 바라지 않는 일이다.

한편 오일프라이스닷컴은 사우디에 ‘몇 가지 제재’를 가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도 마찬가지로 블러핑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양국이 원하는 것은 이번 사태가 조용히 지나가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생산량을 다소나마 늘린다면 미국은 만족할 것이라는 뜻이다. 16일(현지시각) 현재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를 급히 찾은 상태다. 폼페이오 장관이 살만 빈 국왕을 만난 후엔 자말 카슈끄지 기자의 사망사건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공식 입장과 구체적인 증산 규모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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