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혜 부총리가 18일 열린 전국 부교육감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유은혜 부총리가 18일 열린 전국 부교육감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사립유치원의 비리 척결을 요구하는 국민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시작된 바람은 국민여론을 타고 정부를 움직이기에 이르렀다. “사립 유치원 비리를 전부 밝히라”는 이낙연 총리의 지시가 떨어졌고, 유은혜 부총리를 중심으로 교육부가 대책마련에 착수했다.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전국 시도 부교육감 회의를 주재한 유은혜 부총리는 “사립유치원의 비리와 도덕적 해이가 이렇게 심각해질 때까지 교육 당국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국민께 송구하다”면서 “지금부터라도 교육부와 전국 시도 교육청이 국민 눈높이에서 사립유치원 투명성 강화와 비리근절을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교육권 볼모로 이익 지켜왔던 한유총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은 사립유치원 감사결과 실명공개 여부, 추가적 감사대상 확정, 비리신고 시스템 구축 방안들을 마련할 예정이다. 개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립유치원 국가회계시스템 도입과 상시 감시체계 구축 등은 이르면 다음 주 중 발표될 예정이다. 아울러 집단 휴업 등 교육권을 침해하는 사립유치원에 대해서는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며 엄단하겠다고 경고했다.

교육부와 대척점에 서 있는 집단은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다. 1995년 사단법인으로 등록해 현재 전국적으로 약 4,000여 명의 사립유치원 원장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단체다.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가 터지자 기자회견을 여는 등 사립유치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이익단체로 받아들여진다.

회계감사 시스템 도입과 국가예산 증액, 국공립 유치원 확대 등을 놓고 교육부와 한유총이 대립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유총이 처음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2002년 공립단설유치원 설립 반대운동에 나선 때다. 2004년 유아교육법 제정 시에는 전국적으로 집단행동을 개시해 관철시킴으로써 자신감을 얻었다. 2012년 누리과정 도입 후 국고지원금 내역 공개 목소리가 높아지자 더욱 집단적으로 결속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립유치원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적지 않았지만 한유총은 아이들의 교육권을 볼모로 한 집단휴업과 정치적 영향력이라는 무기로 버텨왔다. 국공립 유치원 신설 반대와 예산지원 확대, 사립유치원만의 회계시스템 인정 등이 주요 요구사항이다. ‘표’를 매개로 정치권과의 유착관계가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한유총은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위해 지난 대선에서는 유력 후보 중 한 사람이었던 안철수 후보를 초청하는 행사도 열었다.

◇ ‘갈등 최소화’ ‘투명성 확보’ 두 마리 토끼

지난해 7월 한유총 구성원들이 서울시청 유아교육발전 계획 수립에 반대하며 서울시청 유아교육과로 몰려가 항의하던 모습. /뉴시스
지난해 7월 한유총 구성원들이 서울시청 유아교육발전 계획 수립에 반대하며 서울시청 유아교육과로 몰려가 항의하던 모습. /뉴시스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적 목소리는 크지만 길은 순탄치 않다. 그르칠 경우 집단휴업과 반목으로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만 피해가 전가될 수 있다. 모처럼 모아진 국민여론을 이어가는 한편, 사립유치원들이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달래가면서 진행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기대되는 점은 유은혜 부총리가 교육부와 사립유치원을 중재했던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9월 재무회계규칙 도입을 앞두고 한유총이 집단 휴업을 예고했을 때, 교문위 위원 신분이던 유 부총리는 적극 중재에 나서 ‘중재안’을 마련했다. 물론 한유총 내부 논의과정에서 중재안 번복과 재차 휴업예고라는 혼선이 빚어졌지만, 유 부총리는 이를 통해 한유총 인사들과 접점을 넓혔고 온건세력이 다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당시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유 부총리는 “(간담회에서는) 전체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자는 좋은 분위기였는데, (한유총) 내부에서 반대의견들이 나온 것 같다”며 “투쟁이나 휴업 상황에서는 내부적으로 목소리가 큰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무엇보다 사립유치원 문제 해결은 유 부총리 개인에게는 일종의 기회가 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 부총리를 지명할 당시 야권에서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며 자격시비에 불을 붙였다. 청문회 과정에서도 몇 가지 불미스러운 의혹이 드러나면서 논란은 작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지혜롭게 해결할 경우, 자질논란은 물론이고 임명권자인 문 대통령의 짐도 한번에 털어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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