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수차례 중국이 낮은 환율을 통해 무역상의 이익을 보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다만 재무부는 17일(현지시각)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 측에 환율조작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차례 중국이 낮은 환율을 통해 무역상의 이익을 보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다만 재무부는 17일(현지시각)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 측에 환율조작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놨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국제금융시장이 한시름을 덜었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꺼내들었던 ‘환율조작국 지정’ 카드를 잠시 내려놓았다.

미국 재무부는 17일(현지시각) 2018년 하반기 환율보고서를 발표했다. 환율조작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것은 한국과 중국‧일본‧인도‧독일‧스위스 6개국이었으며,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곳은 없었다. 지난 4월 발표와 같은 결과다.

◇ 경고만 한가득… ‘행동’은 언제쯤

중국이 24년 만에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수 있다던 우려는 기우로 돌아갔다. 미국은 대신 중국이 다른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미국과의 무역에서 막대한 이익을 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위안화 가치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직접 성명서에서 “우리의 가장 큰 걱정은 중국 통화의 낮은 투명성과 평가절하”라고 밝히며 압박에 나섰다. 므누신 장관은 또한 중국 측에 무역경쟁력 제고를 위해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하지 않기로 약속했던 G20 합의를 유념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지난 4월 17일 달러당 6.28위안이었던 위안/달러 환율은 10월 17일 현재 6.93위안까지 높아진 상태다. 이는 중국이 환율조작국의 3대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재무부가 환율조작국 지정을 강행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 배경이다.

다만 블룸버그가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밝힌 바에 따르면, 재무부는 중국 정부가 환율시장에 직접 개입하고 있다는 증거는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넉번 글로벌 포렉스의 마크 챈들러 수석 시장전략가는 17일(현지시각) CN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는 오히려 자국 통화가 더 이상 약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중이다”는 의견을 밝혔다. 달러 당 환율이 7위안을 넘어갈 경우 외국 자본의 이탈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고, 환율조작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구심도 더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은 것이 무역 협상을 이어가기 위한 정치적 포섭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중국은 지난 9월 미국이 2,000억달러 규모의 관세정책을 발표하자 즉시 고위급회담 일정을 취소한 바 있다. 블룸버그는 18일(현지시각) 기사에서 “환율조작국 지정은 G2의 무역 긴장을 더 고조시킬 수 있다”며 미국이 “양국 감정이 상하는 일을 막고 시장도 안심시키기 위해 (환율조작국 지정을) 포기했다”는 투자전문가의 의견을 소개했다.

양국이 무역 협상을 재개한다면 그 시점은 11월 중간선거가 지난 후가 될 것으로 보이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오는 11월 30일(현지시각) 열리는 G20 정상회담이 협상 테이블이 될 것으로 거론되고 있다. 다만 양국이 올해만 네 차례 무역 협상을 벌였음에도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는 점은 불안요소다. CNBC의 16일(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무역 문제에 대한 중국과의 대화는 현재 진행되고 있지 않으며, G20 정상회담 또한 정상끼리 만나는 시간이 짧아 적절한 협상 테이블이 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 미국 재무부가 한국의 2019년 예산안을 칭찬한 이유

한국은 대 미국 무역흑자가 많고,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도 높아 환율조작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됐다. 다만 구체적인 액수로 따졌을 때는 예년에 비해 무역불평등 수준이 다소 낮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환율보고서에서 나타난 한국의 2018년 2분기 대미 무역흑자는 GDP의 4.2%로, 8%에 근접했던 2015년보다 훨씬 완화된 상태다. 상품무역흑자는 210억달러에 달했지만 서비스수지를 포함할 경우 흑자규모가 약 70억달러로 줄어들었다.

눈길을 끈 것은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평가였다. 환율보고서는 “한국의 최근 재정정책들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2019년 예산안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다. 2019년 정부 예산안은 모두 470조5,000억원 규모로 올해보다 9.7% 많다. 일자리 창출과 소득분배 개선을 위한 정책들에 더 많은 투자를 진행한 결과다.

미국 재무부가 한국의 재정확장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배경에는 한국경제의 높은 수출의존도가 한미 무역불균형을 발생시키는 원인이라는 시각이 깔려 있다. 정부지출을 통해 고용 증대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늘리는데 성공한다면, 이것이 민간소비의 증가를 뒷받침해 궁극적으로는 무역수지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성장을 가능케 할 것이라는 뜻이다. 환율보고서는 “정부가 내수시장을 강화하기 위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청년‧여성‧노인고용 장려와 육아지원 등 사회안전망의 강화를 주문했다.

한편 지난 4월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에 시장안정조치 내역 공개를 직접적으로 요구했던 미국은 이번 보고서에선 “정보 공개가 투명하고 시기에 맞게 진행되는지 주의 깊게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5월 발표한 ‘외환정책 투명성 제고 방안’에 따라 내년 3월부터 외환당국의 외환 순거래 내역을 반기 단위로 공개한다. 해당 조치는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