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유럽순방을 마치고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유럽순방을 마치고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한-EU 공동성명이 무산된 것은 미국과 러시아의 외교적 입장에 반대되는 내용을 우리 정부가 채택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일본 일부 언론에서는 CVID 문구 삽입 등 북한 비핵화 온도차를 원인으로 보도했으나,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EU 측은 공동성명에 JCPOA 및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EU의 입장을 지지하는 안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를 받아들일 경우, 우리는 미국과 러시아가 대외적으로 취하는 입장에 공식적으로 반대하게 되는 셈이 된다. 공동성명 채택 불발이라는 다소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한 이유다.

◇ 이란 핵협정 등 EU의 입장 지지요구

JCPOA는 지난 2015년 이란과 5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및 독일이 참여한 핵개발 관련 합의다. ‘이란 핵협정’이라고도 불린다.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과 EU가 이란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협정에 따라 이란은 무기화가 가능한 핵물질을 15년 간 생산하지 않고, 농축 우라늄 원심분리기 보유도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도록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후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EU 및 이란과 외교적 마찰을 빚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협정에 대해 15년의 일몰기간이 끝나면 핵개발을 막을 수 없다는 맹점과 탄도미사일 관련 내용이 빠졌다는 이유로 후보시절부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미국의 탈퇴 후에도 EU와 이란 등 관련 당사국들은 합의이행을 주장하며 대치하는 상황이다.

이른바 ‘우크라이나 사태’는 EU와 러시아가 반목하는 사안이다. 2014년 우크라이나에 ‘친서방파’ 정권이 수립되자 러시아계 주민이 60% 이상 거주하는 크림반도 지역에 반대집회가 이어졌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계 주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크림반도 지역을 군사력으로 강제 병합했다. 후일 전해진 바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핵무기 사용까지 고려했을 정도로 긴박하게 진행됐다.

러시아의 움직임에 EU는 반발했고, 미국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의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이에 굴하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가스관을 잠그는 방안으로 맞불을 놨다. 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EU와 러시아의 분쟁은 계속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연장에 이탈리아가 반대입장을 드러내는 등 EU의 단일대오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평양초청과 관련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적극적인 반응에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도 놀랐다고 한다. /뉴시스
평양초청과 관련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적극적인 반응에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도 놀랐다고 한다. /뉴시스

◇ 공동성명 불발로 유럽순방 절반의 성과

두 가지 현안은 미국과 러시아가 매우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EU 측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반도 비핵화 협상과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앞둔 시점에서 관련 당사국인 미국과 러시아의 입장을 감안했다는 얘기다. 보다 단순화하면 미국·러시아와 EU 사이에서 문 대통령이 선택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유럽순방은 ‘절반의 성공’으로 남게 됐다. 당초 문 대통령은 평화를 향한 동아시아의 긍정적 변화를 EU 정상들과 공유하고,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설명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양 방문을 사실상 성사시키는 성과도 냈다.

하지만 ‘확고한 CVID와 대북제재 지속’이라는 EU의 원론적 입장을 크게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아셈회의 의장성명에는 판문점 선언과 북미정상회담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동시에 CVID와 UN안보리 결의의 완전한 이행이라는 문구도 함께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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