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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사랑한 통계⑦] 엘모어 레너드의 ‘글쓰기 법칙’은 믿을만할까?
2018. 10. 22 by 현우진 기자 hwjin0216@naver.com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제임스 조이스의 동상. 그는 일반적인 글쓰기 법칙과 가장 동떨어진 작가로 뽑힌다. /뉴시스·AP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제임스 조이스의 동상. 그는 일반적인 글쓰기 법칙과 가장 동떨어진 작가로 뽑힌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미국의 소설가 겸 극작가 엘모어 레너드는 2001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이 만든 ‘글쓰기의 10가지 법칙’을 소개한다. 이 규칙들은 전반적으로 짧고 간결한 문장을 요구하며, 독자를 방해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하지 말아야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설의 시작을 날씨 묘사로 시작하지 말 것 ▲느낌표 사용은 자제할 것 ▲프롤로그를 쓰지 말 것 ▲사투리는 아껴 쓸 것 등이다.

‘글쓰기의 법칙’에 엘모어 레너드 본인의 주관이 들어가 있지 않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엘모어 레너드는 사실주의 묘사와 대화체 문장으로 이름 높았고, 주로 다룬 장르도 서부극·범죄소설 등 건조한 ‘하드보일드’가 대세를 이뤘던 분야다. 또한 그는 “독자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글 속에서 작가의 존재를 지우려 했다”고 말할 정도로 문장의 자연스러움을 중요시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엘모어 레너드 자신도 글쓰기 방식에 법칙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부담스러웠는지 기고문 곳곳에서 ‘당신이 배리 로페즈(대표작 <북극을 꿈꾸다>)가 아니라면’, ‘톰 울프(대표작 <허영의 불꽃>)처럼 쓸 수 없다면’ 등의 단서를 달아뒀다. 달리 말하면, 잘 쓰면 상관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엘모어 레너드의 글쓰기 법칙을 단순히 장르적 한계에 갇힌 주장으로 치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작품성도 인정받고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작품들 상당수가 그의 글쓰기 법칙과 잘 들어맞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 첫 문장을 날씨 이야기로 시작하지 마라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땐 누구나 날씨 묘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다. /언스플래쉬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땐 누구나 날씨 묘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다. 

엘모어 레너드가 글의 첫머리부터 날씨 묘사를 늘어놓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독자들은 날씨보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과연 어느 소설이 ‘최고의 첫 문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선 평론가와 매체마다 의견이 엇갈리지만, 리스트가 발표될 때마다 늘 이름을 올리는 단골손님은 있다. <롤리타>·<모비 딕>·<위대한 개츠비>의 첫 문장은 모두 읽는 사람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길이가 짧고, 중요 등장인물을 중심 화젯거리로 삼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내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김진준 옮김, 문학동네』

날씨는 언제나 좋은 화젯거리다. 할 말이 없을 때는 특히 더 그렇다. 그러나 독자의(그리고 편집자의) 이목을 집중시켜야 하는 첫 문장에서 기상환경에 대한 묘사는 방해가 되기 십상이다. 온라인 도서 사이트 ‘북스트리트’가 선정한 최고의 첫 문장 17개 중 날씨 묘사가 담긴 것은 단 하나뿐이다.

찌뿌드드하고 후텁지근한 여름이었다. 그 여름 로젠버그 부부가 전기 사형에 처해졌고, 나는 뉴욕에서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지냈다. 전기 사형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전기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상상하는 자체가 메스꺼웠는데, 신문에서는 온통 그 얘기만 떠들어댔다. 길모퉁이마다 크고 굵은 글씨의 신문 머리기사가 빤히 쳐다봤고, 곰팡내와 땅콩 냄새가 나는 지하철 신문 가판대마다 그 기사가 실려 있었다.
『실비아 플라스, 벨 자, 공경희 옮김, 문예출판사』

<벨 자>만큼은 아니지만, 조지 오웰의 <1984> 역시 좋은 첫 문장을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후보다.

화창하지만 쌀쌀한 4월의 어느 날이었고, 시계는 13시를 치고 있었다. 윈스턴 스미스는 기분 나쁜 바람을 피하느라고 턱 끝을 가슴에 틀어박고 승리 맨션의 유리문 안으로 잽싸게 들어갔다. 그렇지만 따라 들어오는 모래 먼지 회오리는 막을 수가 없었다.
『조지 오웰, 1984, 김기혁 옮김, 문학동네』

T.S.엘리엇의 <황무지>에 따르면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숫자 13은 서구권에서는 불길함의 상징이다. 또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종을 13번 치는 시계는 <1984>의 세계 전체를 지배하는 불신과 디스토피아 분위기를 드러내는 효과도 가진다.

◇ 감탄사의 사용은 자제해라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서 단 한 개의 느낌표를 사용했다. /뉴시스·AP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서 단 한 개의 느낌표를 사용했다. /뉴시스·AP

엘모어는 이 네 번째 규칙에서 단어 10만개 당 2개 내지 3개의 감탄사(느낌표)가 적절하다고 밝혔지만, 이는 느낌표의 필요성을 상당히 과소평가한 것이다. 스포츠분석가이자 데이터저널리즘 기자인 벤 블랫이 엘모어 레너드의 소설 45편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그는 단어 10만개 당 49개꼴로 느낌표를 사용했다.

1925년에 태어난 엘모어 레너드가 스스로 작성한 원고지들을 늘어놓고 단어와 느낌표의 개수를 세어볼 일은 없었을 테니 이와 같은 오해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벤 블랫의 조사는 오히려 엘모어가 스스로의 말에 당당해질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그가 모든 영문학 작가들을 통틀어 가장 느낌표를 적게 활용한 경우에 속하기 때문이다. 벤 블랫에 따르면 존 업다이크는 자신의 소설들에서 단어 10만개 당 88개의 느낌표를 사용했으며 토니 모리슨은 111개, 존 스타인벡은 178개로 훨씬 많다.

더 많은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한 통계조사는 성공한 작가와 일반 독자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베스트셀러들은 평균적으로 단어 10만개 당 81개의 느낌표를 사용했다. 모던라이브러리 어워드에 선정된 책들은 98개로 비율이 다소 높았다. 아마추어 작가들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올리는 2차 창작물들(팬 픽션)에선 느낌표의 활용 빈도가 392개까지 높아진다.

물론 예외는 있다. 20세기 최고의 영문학 작품을 뽑을 때 반드시 거론되는 <율리시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를 쓴 제임스 조이스는 모든 작가들을 통틀어 가장 느낌표를 많이 활용하는 사례에 속한다. 그가 이 두 소설과 <피네간의 경야>에서 사용한 느낌표의 수는 단어 10만개 당 1,105개에 달한다. 빈도로 따지면 엘모어 레너드의 22배가 넘는다.

-시인의 코수건이다! 우리들 아일랜드 시인들의 새로운 예술 색채야: 코딱지초록빛. 자네 그걸 거의 맛볼 수 있을 테지, 그렇잖아?
그는 다시 흉벽에 올라가, 그의 고운 참나무빛 창백한 머리칼을 가볍게 휘날리며, 더블린만 위를 훑어보았다.
-맹세코! 그는 조용히 말했다. 바다는 앨지가 부르듯 그대로가 아닌가: 위대하고 감미로운 어머니 말이야? 코딱지초록빛 바다, 불알을 단단하게 하는 바다. ‘에피 오이노파 폰톤(포도주빛 바다)’. 아 데덜러스, 그리스 사람들! 내가 자네한테 가르쳐 줘야겠다. 자네는 그걸 원문으로 읽어야 하네. ‘탈라타! 탈라타!(바다! 바다!)’ 바다는 우리들의 위대한 어머니야. 와서 보게나.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김종건 옮김, 생각의 나무』

제임스 조이스는 엘모어 레너드의 규칙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작가로 불릴 만하다. 수많은 고대 그리스 희곡의 인용과 코딱지초록빛(snotgreen) 같은 독창적인 표현들, 그리고 ‘의식의 흐름’ 기법은 <율리시스>를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 만든다.

한편 ‘글쓰기의 10가지 법칙’에 가장 잘 부합하는 작가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어울린다. 제임스 조이스가 <율리시스>에서 모두 1,574개의 느낌표를 사용한 반면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 단 1개의 느낌표만을 그려 넣었다. 또한 헤밍웨이는 자신의 주요 작품 10편 중 단 한 곳에서도 첫 문장을 날씨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강인하지만 고난에 시달리는 인물들을 소개하는데 첫 장을 사용했다.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그만 돛단배로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팔십사 일 동안 그는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다. 처음 사십 일 동안은 한 소년이 그와 함께 나갔다. 하지만 사십 일이 지나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는 이젠 정말이지 돌이킬 수 없게 ‘살라오’, 즉 운수가 완전히 바닥난 지경이 되었다고 소년에게 말했다. 소년은 부모가 시키는 대로 다른 배를 타고 나갔고, 그 배는 일주일 동안 큼직한 고기를 세 마리나 잡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이인규 옮김,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