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 바로잡기 공동투쟁본부(이하 투쟁본부)는 25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투쟁본부 제공
태광그룹 바로잡기 공동투쟁본부(이하 투쟁본부)는 25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투쟁본부 제공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400억원대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호진(56) 전 태광그룹 회장의 재판이 또 다시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다. 이에 따라 이 전 회장은 2심 재판을 총 3번이나 받게 됐다. 이날 오전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이호진 전 회장의 엄벌을 촉구했던 시민단체들은 선고 결과에 대해 “불구속 재판은 아쉽지만, 다음 선고는 지금보다 형량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이번엔 조세포탈... 대법, 두 번째 파기환송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5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전 회장의 재상고심에서 조세포탈 혐의를 별도로 심리·선고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이 전 회장은 대상고심에서 징역 3년6개월에 벌금 6억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우선 이 전 회장의 횡령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에는 문제가 없다고 봤다. 다만 “피고인은 금융사지배구조법에서 규정하는 ‘금융회사인 몇몇 주식회사의 최대주주 중 최다출자자 1인’으로 볼 여지가 있다”면서 “원심으로서는 피고인이 적격성 심사대상인지 아닌지를 확정한 후, 대상에 해당하면 조세포탈 부분은 금융사지배구조법에 따라 다른 죄와 분리해 심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전 회장은 2011년 섬유제품을 세금계산서 없이 대리점들에게 판매하는 무자료 거래를 하고, 가족 및 직원의 급여를 허위로 기재하는 등 회삿돈 40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주식 및 골프연습장을 저가로 인수해 그룹에 손해를 끼치고, 조세포탈 혐의도 함께 받았다.

1심은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보고, 징역 4년6개월에 벌금 20억원을 선고했다. 이와 달리 2심은 일부 배임 혐의를 무죄로 보고 1심에서 선고된 벌금 20억원을 10억원으로 감액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이 전 회장희 ‘무자료 거래’ 혐의와 관련해 횡령액을 ‘섬유제품’이 아닌 ‘판매대금’으로 산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당시 대법원은 “이 전 회장은 섬유제품 자체를 횡령할 의사로 무자료 거래를 한 것이 아니라 그 판매대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개인적으로 취하려던 것으로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파기환송심은 횡령액을 다시 산정해 징역 3년6개월에 벌금 6억원으로 감형하고, 조세포탈 혐의도 일부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 조세포탈 부분을 다시 심리하라고 대법원이 돌려보낸 것이다.

◇ ‘간암3기’라더니... 술·떡볶이 먹고 자유롭게 활보

이 전 회장의 이날 대법원 선고는 어느 때보다 관심을 받았다. 2011년 1월 구속됐던 이 회장은 그해 3월 말 구속집행이 정지된 후 2012년 6월 보석으로 풀려나 지금까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다. 실제 수감 기간은 60여일에 불과했다. 보석 사유는 간암과 대동맥류 질환이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이 담배를 피우며 술집을 드나드는 모습이 뒤늦게 공개되면서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과거 휠체어를 타고 법원에 출석하는 모습. 빨간 선 부분은 이호진 전 회장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서울 신당동에서 떡볶이를 먹는 모습. /KBS 영상 캡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과거 휠체어를 타고 법원에 출석하는 모습. 좌측 빨간박스는 이호진 전 회장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서울 신당동에서 떡볶이를 먹는 모습. /KBS 영상 캡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술집 앞에서 지인과 담배를 피우며 대화하는 모습. /KBS 영상 캡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술집 앞에서 지인과 담배를 피우며 대화하는 모습. /KBS 영상 캡처

지난 24일 <KBS>는 올해 초 서울 마포역 인근 술집에서 이 전 회장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도했다. 이 사진을 제보한 이 전 회장의 전 측근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8시 반에 들어가서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신다. 거의 매일 드신다”고 주장했다. 술집은 이 전 회장의 자택과 8㎞ 떨어진 곳으로, 집과 병원으로 거주지를 제한한 병보석 조건도 위반했다는 지적이다.

이 전 회장이 자주 드나드는 술집은 또 있었다. 아산병원이 위치한 서울 방이동의 술집이 그곳이다. 이곳 종업원 역시 KBS에 이 전 회장이 자주 온다면서 “일주일에 2~3번 오실 때도 있고, 최근에도 자주 오셨다”고 말했다. 서울 신당동의 떡볶이 집에서도 이 회장의 모습은 포착됐다. 공개된 영상 속에는 이 전 회장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맥주와 함께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 “이호진 ‘황제보석’ 방치한 당국도 책임”

시민단체들은 지금이라도 이호진 전 회장의 보석을 취소하고, 엄벌을 선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이들은 이미 2016년 국정감사에서부터 이 전 회장의 보석조건 위반 의혹이 제기됐던 만큼 사실상 당국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태광그룹 바로잡기 공동투쟁본부(이하 투쟁본부)는 25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호진 전 회장은 징역형을 선고받았음에도 63일 남짓 수감생활을 끝으로 7년 넘게 불구속 재판을 받는  황제보석 특혜를 누리고 있다”면서 “그 사이 이 전 회장 일가는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이 회장의 재산은 2017년 기준 1조3,000억원으로, 10년 사이 3배가 늘었다”면서 “법적 책임을 치루고 있어야 할 피고인이 여전히 대주주로서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3대 세습을 위한 상속도 진행했다. 이 모든 일들이 보석 중인 상황에 더욱 심화됐다”고 비판했다.

투쟁본부는 앞으로 이 전 회장의 보석 취소를 촉구하는 활동을 할 방침이다. 이형철 투쟁본부 공동대표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대법원이 사건을 또 다시 파기환송함에 따라 이 전 회장이 계속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게 된 점은 아쉽다”면서도 “그러나 조세포탈 부분을 다시 심리하면 형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욱이 지금 황제보석 논란까지 일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검찰과 사법부도 좀 더 긴장해서 사건을 검토할 것”이라며 “특히 이 회장이 7년째 보석조건을 위반한 것을 방치했던 법무부 등은 하루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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