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베이징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리커창 중국 총리(오른쪽). /뉴시스·AP
26일 베이징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리커창 중국 총리(오른쪽).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앙숙이자 서로를 견제하는 입장이었던 일본과 중국이 보기 드물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25일 500여명의 경제사절단과 함께 중국을 찾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시진핑 국가주석·리커창 총리와 연달아 회동하며 관계 개선에 나섰다. 특히 시진핑 주석의 야심작인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며 경제협력에 열을 올린 것이 눈에 띈다.

◇ 일본·중국, 금융 및 인프라투자 협력 강화하기로

아베 총리와 일본 경제인들이 이번 방문에서 중국과 체결할 것으로 알려진 계약만 모두 50여개에 달한다. 이 중엔 지난 2013년 센카쿠 열도 분쟁으로 양국관계가 악화되면서 종료됐던 통화스왑 계약도 있다.

5년 만에 부활한 일본·중국 통화스왑 계약은 이전보다 규모도 크고, 범위도 넓어졌다. 우선 통화스왑 규모가 예년의 10배에 달한다. 로이터통신의 26일(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양국 중앙은행이 합의한 통화스왑 액수는 3조4,000억엔(2,000억위안·300억달러)이며, 유효기간은 2021년 10월 25일이다. 또한 일본과 중국은 역외 위안화 시장의 건전화를 위해 일본 금융청과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가 협력하는데도 의견을 모았다. 타임지는 “부채가 많고 통화가 더 불안정한 중국이 통화스왑 계약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을 내놨다.

일본은 중국의 국책사업인 일대일로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일본의 투자·보험·건설업계에 투자처를 마련해줄 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넓힐 기회이기도 하다는 판단이다. 시진핑 주석의 환심을 사는 것은 물론이다.

일본으로선 중국이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명분과 함께 남아시아 지역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실리도 취할 수 있다. 두 나라가 투자 대상으로 삼는 국가들의 특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상대적으로 시장이 더 발전돼있고 법·제도가 잘 갖춰진, 서구 선진국과 관계성이 큰 나라들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남아시아 지역의 많은 나라들은 미국·영국·프랑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 역시 해당 지역으로 진출할 의사가 있다. 이는 아베 총리가 내세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슬로건과도 정확히 부합하는 전략이다.

◇ 적의 적은 친구? 트럼프 압박이 아베·시진핑 악수로 이어졌나

물론 일본과 중국의 해묵은 갈등이 경제협력 논의를 다시 가로막을 가능성도 있다. 이번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영토분쟁 이슈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워낙 반목의 역사가 긴 만큼 언제 다시 외교전을 시작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타카하라 아키오 도쿄대학 교수는 블룸버그와의 25일(현지시각) 인터뷰에서 “중국은 언제나 역사 문제를 일본에 맞설 카드로 갖고 있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그들은 언제든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할 것이다”는 의견을 전했다.

다만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이 한창이던 지난 2013~4년과 26일의 화기애애한 분위기 사이엔 많은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물론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불어오는 경제·정치·군사적 압박이다.

타임지는 25일(현지시각) 일본·중국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진 이유를 분석하며 “중국이 일본의 투자와 무역을 거부할 여력이 없다”고 진단했다. 일본은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느끼는 관세 부담을 덜어줄 완충지대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실제로 중국이 수입하는 기계장비의 상당수를 책임지고 있기도 하다. 타임지는 일본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중국이 ‘한 번에 두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매우 전통적인 외교전술을 택했다”고 요약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일본은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고, 특히 안보 분야에서는 매우 튼튼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다음부터는 상황이 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주도하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했으며, 동맹의 가치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에서도 일본을 소외시켰다. 동해 미사일 발사 문제를 두고 북한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일본으로선 외교 전략을 수정할 필요성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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