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5 14:06 (목)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음모론 전성시대…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음모론 전성시대…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
  • 시사위크
  • 승인 2018.10.3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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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이게 왜 그러냐면 친문과의 거리를 둬야 되고 대부분 우리가 회원들 자체가 나름대로 개혁지향적인 면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냐면 문재인 정권에 반기를 든다는 게 어떤 거냐면, 반기를 들기 위한 내부논리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어떤 내용이 나왔냐면 문재인 대통령, 김경수 의원, 윤건영 상황실장, 이런 분들이 제수이트다. 그러니까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이런 음모론에 나오는 가톨릭 사제 집단입니다. 그쪽을 제수이트로 몰고 그들이 청와대를 장악했다.’”

위에 인용된 글이 무슨 소리인지 알겠는가? 인터넷 여론조작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파워블로거 '드루킹' 김모씨가 조직했다는 인터넷 카페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에 대해서는 들어봤지? 경공모에서 2015년부터 활동해 온 A씨가 tbs 교통방송의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한 말일세. 프리메디슨, 일루미나트, 제수이트 같은 친숙하지 않은 외래어들이 나와서 우리처럼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무척 어려운 이야기일세. 이른바 음모론으로 세상사를 설명하는 사람들 입에서 자주 언급되는 저런 방송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들었을 시청자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구먼. 지금은 음모론의 전성시대라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라고? 설마.

지난 27일 미국 동부 펜실바니아주 피츠버그에서 로버트 바워스가 유대교 회당(시너고그)에 모여 예배를 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총기를 난사하여 11명이 숨지게 한 사건 뉴스는 들었지? 40대 후반의 백인 남성인 바워스는 총기 난사 직전에 백인민족주의자와 신나치 같은 극우들이 많이 사용하는 소셜미디어인 갯닷컴글을 올렸는데, 유대계 난민지원단체인 히브리이민지원사회(HIAS)’우리 국민들을 죽이려고 침략자들을 데려오려 한다고 비난하면서 서구문명이 유대인과 무슬림 때문에 소멸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네. 작년 8월에 극우세력들이 버지니아 샬러츠빌이라는 도시에 모여 우리를 대체할 수 없다며 폭동을 일으켰던 사건의 연장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그들이 말하는 우리는 백인일세.

그러면 한국의 극우세력인 태극기부대는 종종 미국과 이스라엘의 국기를 손에 나란히 들고 박근혜 석방을 외치고 있는데,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미국의 백인들 중에는 왜 유대인을 증오하고 죽이려는 사람들까지 있을까? 미국의 극우들 중 일부가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는 자본가들과 유대인들이 이민을 통해 미국에서 백인을 소수자로 만들어 서구 문명을 말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믿기 때문일세. 이른바 백인 대학살음모론이야. 그래서 자유주의적인 자선사업가이자 세계화론자인 소로스 같은 유대인이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 극우세력들의 주요 비판 대상이 되는 거지.

그러면 드루킹이 말한 일루미나트는 뭐냐고? 간단히 설명하면, 일루미니즘(Illuminism)은 계몽주의와 비슷한 거네. 1776년에 독일 바이에른에 있는 잉골슈타트대 법학교수인 아담 바이스하우프트가 이성의 법칙에 의해 통치되는 인류의 미래를 궁극적 목표로 시작한 일종의 사회운동이야. 저 인터뷰에 등장하는 일루미나티(Illuminati)빛나다, 계몽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일루미나투스의 복수형으로계몽된 사람,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지. 이들이 프리메이슨과 함께 음모론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당시 교회와 정치 권력자들이 계몽주의 사상을 적대시했기 때문이야.

거기에 스코틀랜드의 저명한 과학자인 존 로빈슨이 일루미니즘이 모든 종교기관을 해체하고 유럽의 정부를 전복한다는 구체적인 목적을 위해 설립됐다고 주장하면서 더 위험한 운동으로 탄압을 받게 되네. 로빈슨은 1797년에 쓴 <일루미나티, 프리메디슨, 독서모임 간 비밀 회합에서 모든 종교와 유럽 정부들에 대항해 음모가 꾸며진 증거>에서 프랑스혁명의 주역들 역시 일루미니즘을 신봉한 사람들이었다고 주장하며, 이 운동을 유럽 전역에서 선동을 획책하는 거대한 악마적 음모이며, 여성을 타락시키고, 감각적 쾌락에 사로잡힌 문화를 전파하고, 소유권을 부정하는 등 반종교적인 경향을 보인다고 비판하고 있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일부 보수나 극우들의 생각과 비슷하지.

나는 좌우 어느 쪽에서 제기하는 음모론이든 믿지 않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음모론(陰謀論, 영어: conspiracy theory)이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조직이나 비밀스런 단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야. 물론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음모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 나쁜 사람들만 음모를 꾸미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역사적인 사건을 어떤 초월적인 힘을 가진 세력의 음모로 설명하거나, 다양한 분석이 필요한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사회적 약자들의 책임으로 전가시키는 음모론은 위험하다는 거지. 트럼프가 음모론을 자주 들먹이는 이유가 뭐겠는가? 미국의 중하층노동자들의 삶이 이민자들 때문에 어렵다고 말하는 게 가장 쉽기 때문이야. 대중들에게는 복잡하고 어려운 사회과학적인 이론보다는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뺏고 있다는 단순명료한 주장이 훨씬 더 매력적이거든. 촘스키의 말대로 음모론이누군가 세상의 일을 좀 자세히 알려고 할 때 그걸 방해하고자 하는 사람이 들이대는 논리일 때도 분명 있지만, 대다수 음모론의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더 많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네. 간단하고 쉽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야.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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