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한미간 대북공조 논의를 위해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면담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한미간 대북공조 논의를 위해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면담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10월 중 진행하기로 했던 북한 예술단의 서울 공연이 무산됐다.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약속된 사항 중 10월 말로 예상됐던 경의선 북측 구간 철도조사, 보건의료·체육회담도 지켜지지 못했다. 평양정상회담 이후 남북 합의사항이 줄줄이 지연되면서 남북관계가 정체구간에 진입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은 문화 및 예술분야의 교류를 더욱 증진시켜 나가기로 하였으며, 우선적으로 10월 중에 평양예술단의 서울공연을 진행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에 서로 합의했다. 하지만 10월 마지막 날인 31일까지도 북측 공연단의 서울 공연에는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31일 평양 예술단의 10월 공연에 대해 “(북한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이해해달라”며 “평양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해서 남북 간에 공동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도조사, 분과회담 등 추가 합의사항도 줄줄이 지연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남북 간 기본적인 (개최) 입장에는 공감대가 있는데, 일정을 잡는데 협의하는 부분도 있다”고 에둘러 답했다.

평양정상회담에 이어 고위급회담에서 합의한 사항조차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대북 제재와 관련해 미국과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남북 간 합의사항이 대북 제재 기조를 위반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철도 공동조사의 경우, 북한에 올라가는 열차에 실릴 유류 등과 관련해 유엔(UN) 대북 제재위원회와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미국 측과 저희가 부분적으로 약간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다”며 “미국이 남북 사업을 반대할 정도라 할 건 아니고 미국도 협조적 입장에서 하나하나 좀 더 검토 하고 추진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미국과) 논의해 나가는 단계”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연내로 약속했던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도 미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통일부는 일단 연내 방문을 목표로 북측과 협의를 진행 중이라는 입장이다. 이외에도 남북이 합의한 연내 양묘장 현대화 사업 이행 역시 대북 제재 문제가 걸려있어 추진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평양공동선언을 국회 동의 없이 비준하면서 야당의 반발이 커져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 문제도 멈춰서있는 상황이다. 김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비준을 해야 한다면 더 구체화된 내용에 대해 국회 동의를 받는 게 맞다”고 했고, 같은 당 원유철 의원은 “평양선언과 군사합의는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고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에 해당돼 헌법 규정에 따라 국회 비준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민주평화당 소속 천정배 의원도 “정부가 각 합의의 비준을 둘러싸고 성급하고 앞뒤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헌법 위반 시비를 자초해 소모적 분란을 일으켰다”고 꼬집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과 무소속 원희룡 제주지사는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동의와 지자체의 남북교류 협력을 위한 입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각 당 원내대표에게 성명서 발송을 통해 국회가 조속히 비준 문제 협상에 나서줄 것을 촉구한 것이다. 한국당 소속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지사는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국회는 판문점선언이 한반도 평화와 남북 공동번영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을 인식하고 비준 동의에 나서줄 것을 요청한다”면서 “지자체 차원에서 다각적인 남북교류협력을 활성화해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국회와 정부에 요청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외교당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대북제재, 남북협력 등을 논의하는 워킹그룹을 다음달 출범시키겠다고 밝혔다. 우리 측 이도훈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 미국 측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워킹그룹 양국 팀장을 맡게 된다. 외교부와 미 국무부 관료들을 중심으로 구성하고 필요에 따라 통일부 등 관계부처의 관료들도 포함시킬 계획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몇 달 전부터 한미 사이에는 한반도 비핵화의 본격적인 과정이 시작된 뒤에도 일정한 협의체가 없으면 서로의 입장을 전하기 어려워지고, 효율성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워킹그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다”고 밝혔다. 워킹그룹은 북미관계 진전보다 남북관계 진전이 앞서가면서 생긴 한미 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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