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 5번출구 인근에 위치한 낙원상가. 이 곳 4층에는 '실버영화관'이 들어서 있다. / 시사위크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 5번출구 인근에 위치한 낙원상가. 이 곳 4층에는 '실버영화관'이 들어서 있다. / 시사위크

[시사위크=장민제 기자] 이른 아침 행사장 매표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내 줄이 형성됐고, 앞뒤로 선 이들은 오늘 공연에 대한 내용으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 유명 아이돌 가수의 공연을 보러온 것 같은 광경이지만, 줄을 선 이들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70~80대 어르신들로, 매표 개시 1~2시간 전에 나온 분도 계셨다.

31일 서울 종로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한 ‘실버영화관’에선 오전부터 어르신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종로구청 주최, 사회적기업 ‘추억을파는극장’이 주관한 이벤트성 행사 락희거리축제(가칭 ‘송해 장가가는 날’)의 티켓을 발행받기 위해 모인 것. 젊은 세대에겐 ‘송해 선생님’이지만, 이분들에겐 동시대를 살아온 스타 ‘송해 오빠’다.

어느덧 티켓 발행이 시작됐고, 행사 관계자가 나와 당일 밝히기로 한 신부(전원주)를 공개하자 어르신들 사이에선 환호성과 여러 말들이 나왔다. 주로 누가 더 아깝다는 내용이다. 서울 거주하는 어르신(70·여) 한 분은 “전원주 씨라면 (송해 오빠가) 장가 잘 갔네”라며 웃음을 짓기도 했다.

31일 실버영화관 매표소 앞에서 '송해 장가가는 날' 행사 관련 표를 받기 위해 어르신들이 줄을 선 모습. / 시사위크
31일 실버영화관 매표소 앞에서 '송해 장가가는 날' 행사 관련 표를 받기 위해 어르신들이 줄을 선 모습. / 시사위크

노년층은 현재 대중문화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들 또한 하나의 문화소비계층이다. 다만 문화콘텐츠를 구매할 만한 기회, 또는 소득이 넉넉하지 않다는 게 문제점으로 꼽힌다.

낙원상가에 자리 잡은 ‘실버영화관’은 사회적기업 ‘추억을파는극장’이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시작했다. ‘실버영화관’ 취재차 방문한 날 열린 이벤트 ‘송해 장가 가는 날’도 같은 맥락이다.

5,000원이란 가격에 점심식사와 함께 평양예술단의 공연, 그리고 송해 선생님(또는 오빠)의 가상결혼식 이벤트를 같이 보고, 웃으며 즐길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날 신랑신부(송해, 전원주님)는 영화관 뒤 골목에서 전통혼례로 결혼식을 치르고 거리행진을 거쳐 극장을 방문, ‘결혼선포’를 진행했다.

실버영화관 라운지 곳곳에 걸린 옛 배우 사진들. / 시사위크
실버영화관 라운지 곳곳에 걸린 옛 배우 사진들. / 시사위크

◇ 실버, 그들만의 문화공간 ‘실버영화관’

‘영화관’이란 본질로 돌아가면 ‘실버영화관’의 분위기는 일반적인 영화관과 달랐다. 고전영화의 장면 또는 ‘오드리햇번’ ‘마릴린먼로’ 등 유명 영화배우의 사진들이 전시됐고, 젊은 층이 알기 어려운 옛 영화들이 상영작으로 올라와 있었다. 관람료는 단돈 2,000원. ‘선명한 화질, 정확한 번역, 큰 자막으로 제공됩니다’라는 안내 글이 눈길을 끌었다.

‘영화관’하면 빼놓을 수 없는 식음료 코너도 평범하지 않았다. 음료로는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뿐만 아니라 구기자차(치매예방), 다방커피 등이 준비됐고, 그 외 옥수수, 맥반석계란, 빈대떡, 옛날건빵, 별뽀빠이, 영양갱 등의 간식거리도 메뉴에 올랐다. 매점을 운영하는 어르신은 “옛날건빵, 영양갱 순으로 많이 나간다”고 귀띔했다.

또 영화관 라운지에선 재즈풍 음악이 흘러나왔고,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테이블을 채우고 있었다. 아울러 영화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이 좋아할만한 각종 공연도 열리고 있었다.

실버영화관 내부에 있는 매점. 팝콘, 콜라를 비롯해 일반 극장에서 보기 힘든 메뉴들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 중이다. / 시사위크
실버영화관 내부에 있는 매점. 팝콘, 콜라를 비롯해 일반 극장에서 보기 힘든 메뉴들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 중이다. / 시사위크

부천에 거주 중이라는 83세 어르신 한분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월 10회 이상 방문한다”며 “평소 서부극을 좋아하지만, (오늘은) 그냥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을 보내려는 이들이 많아, 상영시간 3시간 이상 영화가 인기좋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어르신(73·여)은 “집에서 TV만 보는 것보다 산책삼아 나와서 영화도 관람하는 게 더 즐겁다”고 말했다.

단순히 고전영화 콘텐츠를 판매하는 장소가 아니라, 어르신들이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 형성된 셈이다. 극장 측에 따르면 현재 영화관 일일 관람객 수는 1,000명에서 최대 1,500명에 달한다.

김종준 낭만극장 대표는 이에 대해 “실버영화관은 어르신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아지트를 만들기 위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과거 은행에서 정년퇴직한 그는 실버영화관에서 근무하다가다 2016년 실버영화관 바로 옆 극장을 인수, ‘낭만극장’을 차렸다. 낭만극장도 실버영화관 운영업체인 ‘추억을파는극장’처럼 사회적기업으로 설립됐다.

31일 실버영화관에서 만난 김종준 낭만극장 대표. / 시사위크
31일 실버영화관에서 만난 김종준 낭만극장 대표. / 시사위크

◇ 김종준 낭만극장 대표 “실버영화관, 복합적 문화메카로 나아갈 것”

물론 실버영화관이 초기부터 흥행한 건 아니다. 김 대표는 “처음 실버영화관을 시작할 때 교회에서 ‘하루 200명’이란 제목으로 기도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버 층이 좋아할만한 영화 상영과 함께 사이다텍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이용객들이 점차  늘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사회적기업이다 보니 수익 내기가 어렵지 않냐’는 질문에는 “만만하진 않지만, 수익창출이 주목적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현재 실버영화관, 낭만극장 등은 유한킴벌리, SK 등에서 후원을, 제약사 같은 곳에선 영화 상영 전에 삽입되는 광고를 받고 있다. 또 지자체에서 복지차원으로 진행하는 사업을 대행하면서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김 대표는 “(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전체 직원 100여명 중 80%가 70대 이상”이라며 “사회공헌 일자리의 일환으로, 경험 있는 이들을 1년에 30~50명 가량 신청받아 고용한다. 정부 지원이 나오고, 그들도 즐겁게 일하면서 건강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실버영화관의 상영예정작 안내판. / 시사위크
실버영화관의 상영예정작 안내판. / 시사위크

다만 ‘실버영화관’이란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가 쉽진 않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문화를 겪은 이들도 실버족에 편입되는데, 이들까지 품기엔 현재 콘텐츠로 역부족이란 이유에서다.

김 대표는 “현재 주로 오는 고객은 70대가 제일 많고, 그 다음이 80대”라며 “그 분들은 영화를 즐겼지만, 베이비부머만 해도 영화보다 다른 오락거리를 많이 접했다. 그런 분들도 흡수하기 위해 서서히 (프로그램들을) 바꿔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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