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광을 위해 JFK 공항 입국심사대에 모인 여행객들. 이들 중 상당수는 중국인이다. /뉴시스·AP
미국 관광을 위해 JFK 공항 입국심사대에 모인 여행객들. 이들 중 상당수는 중국인이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세계 어디를 가도 중국어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막강한 경제력과 인구수를 등에 업고 세계 관광산업계의 큰 손으로 떠오른 중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로 이 중국인 관광객들이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맞설 중국 정부의 ‘비장의 무기’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인 관광객들로부터 벌어들이는 수입이 상당하다는 것이 근거다.

◇ 무역적자로 중국 압박하는 미국, 여행수지에선 입장 반대

미국은 작년 한 해 중국과의 상품교역에서 3,750억달러의 적자를 냈지만, 서비스수지에서는 정반대의 양상이 펼쳐졌다. 미국은 지난 2017년 중국과의 서비스 교역에서 576억달러의 흑자를 냈다. 2016년보다 4.9%, 2007년보다는 339% 많은 액수다. 지식재산권과 운송, 그리고 여행수지 분야에서 막대한 흑자를 챙긴 것이 그 원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10월 29일(현지시각) 기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에 맞설 중국의 무기는 바로 관광객들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상품수지 적자를 보고 있는 미국이 중국에게 관세를 물리는 것처럼 중국 역시 관광객 제한을 통해 미국 여행업계를 공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익명을 요구한 행정부의 고위공직자는 “중국이 무역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시도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말한 ‘가능한 모든 것’에는 관광 제한을 통해 서비스수지 적자를 만회하려는 시도도 포함된다.

중국 관광객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쓰는 관광객으로 분류된다. 미국 관광청이 지난 5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관광객들은 미국에서 1인당 평균 6,900달러를 썼으며(2016년 기준) 이를 통한 수입은 330억달러에 달한다. 미국 관광객들이 중국에서 쓴 돈의 12배에 해당하는 액수다.

아직까지 중국 정부가 여행 산업을 무기로 활용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적은 없다. 다만 양국의 무역 긴장이 고조되면서 미국을 찾는 중국인들의 발길이 다소 뜸해진 것은 사실이다. 올해 5월부터 9월까지 비즈니스와 휴식, 교육을 목적으로 미국을 찾은 중국인의 숫자는 작년 동기간과 비교해 10만2,000명 적다. 또한 온라인 비행기 예약사이트 ‘스카이스캐너’에 따르면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한 건수는 10월 첫 주에 42% 감소했는데, 10월 첫 주는 중국 건국기념일(10월 1일)이 포함돼 원래라면 해외 여행객이 늘어나는 시기다.

◇ ‘미국관광 제한’ 계획의 예상 시나리오는 

중국은 이미 사드배치 문제로 마찰을 빚었던 한국을 대상으로 단체여행 금지령을 내린 바 있지만, 한국과 미국은 상황이 다르다. 아시아 전문 투자기업 ‘매튜스 아시아’의 투자전략가 앤디 로스맨은 시카고 트리뷴과의 10월 31일(현지시각) 인터뷰에서 “중국이 한국에게 했던 것처럼 미국을 상대로 단체여행을 금지할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을 밝혔다. 미국이 더 크고, 전략적으로 더 중요하며 (단체여행 금지조치를 실행할 경우) 중국 국민들의 더 많은 반발에 부딪힐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이 보다 국지적이고 소극적인 방식으로 미국여행을 제한할 가능성은 있다. 샌프란시스코 중국 영사관은 지난 7월 샌프란시스코와 라스베가스·시애틀 등 인근 지역에 여행경보를 내렸으며, 워싱턴 중국 대사관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총기사고와 길거리폭력 위험 등으로 “공공안전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해당 조치로 인해 2017년 6위였던 미국의 중국 관광객 인기순위는 9위로 내려앉았다.

또한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단체여행 금지령이 아니더라도, 양국의 무역 긴장이 미국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켜 중국 관광객들을 감소시킬 가능성은 있다. 미국 호텔 프랜차이즈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의 아르네 소렌슨 CEO는 지난 9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무역 전쟁은 중국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돌려 여행 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소렌슨 CEO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현재까지 중국의 해외관광객 숫자는 작년 동기간과 비교해 6% 증가했으며, 이들을 흡수하기 위한 경쟁에서 유럽이 미국을 압도하는 중이다. 그는 “이민과 안보 이슈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수사는 세계 여행객들을 유치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이스트웨스트 마케팅’의 알리나 시앙 대표는 중국여행전문매체 ‘징 트래블’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을 찾는 여행객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개인관광객들은 정치 이슈에 민감하지 않고 ▲중국 관광객들은 유럽인들에 비해 정치 이슈에 대한 인식이 옅으며 ▲단체관광객들의 경우 1회성 방문이 대다수라는 점을 들어 ‘관광전쟁’에 대한 우려가 기우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밝혔다. 다만 그 역시 “(무역 전쟁이 더 심화될 경우) 단체관광업체들이 비자 신청을 하지 않거나, 연기할 수 있다”며 미국 여행업계가 부분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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