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가운데) 대법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등 전원합의체에 참석하고 있다. 대법원은 종교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뉴시스
김명수(가운데) 대법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등 전원합의체에 참석하고 있다. 대법원은 종교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동일한 재판을 받고 있는 병역거부자들 역시 줄줄이 무죄 선고가 예상된다. 대법원은 14년 만에 기존 판례를 뒤집고 양심적·종교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로 인정된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양심’을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치 않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결국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는 분석이다.

◇ 14년 만에 기존 판례 뒤집은 대법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일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34) 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김명수 대법원장 등 대법관 8명이 다수의견을 냈고, 4명은 반대 의견을 냈다. 그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유죄 선고는 1968년 7월 대법원 판례에서부터 확립됐다. 1만9,000여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이 판례를 근거로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왔다.

이후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다시 한 번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기존 판례를 유지했지만, 이날 14년 만에 판단을 달리했다. ‘양심’이 병역법 제88조 제1항이 규정한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향적인 판결 배경에는 지난 6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를 마련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불합치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입영거부에 대한 처벌 조항은 기존과 같이 합헌으로 판단하고, 2019년 12월31일까지 대체복무를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림으로써 입법 공백 기간에 재판을 받게 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역시 처벌을 피하게 됐다.

이날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병역이행을 일률적으로 강제하고 형사처벌을 가하는 것은 소수자를 관용하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정신에 위배된다”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제88조 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게 다수 의견”이라고 밝혔다.

이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어떠한 제재라도 감수하고서 병역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면서 “집총 등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 이행을 강제하고 처벌하는 건 양심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양심이나 종교와 같은 개인적·주관적 신념은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는 반대의견도 나왔다. 양심은 형사재판에서 증명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게 반대의견의 골자다.

◇ 대체복무 마련만 남았다... 고심하는 국회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헌재가 주문간 시간 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대체복무 제도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김소영 대법관은 이기택 대법관과 함께 낸 반대의견의 보충의견서에서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는 헌법상 양심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대체복무제 도입 등을 통해 해결할 국가정책의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회가 결정할 문제는 병역거부자의 양심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는 대체복무 기간’을 설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8월 30일 대법원 공개변론에서 검찰 측은 “대체복무 도입까지 1년 이상 남은 상황에서 무죄가 선고된다면 현역복무자들은 어떡하느냐”면서 “대체복무를 하지도 않았는데 군대를 면제받게 됨으로써 파장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이 양심·종교적 병역거부에 대해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며 무죄를 선고한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대법원이 양심·종교적 병역거부에 대해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며 무죄를 선고한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올해 10월 말 기준, 대법원에 양심적 병역거부로 계류 중인 사건은 227건에 달한다. 하급심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병역거부자도 930여명 정도로 알려졌다. 때문에 대체복무 마련 전 무죄판결을 통해 면제를 받은 병역거부자들도 대체복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질 수 있다. 문제는 이 경우 이미 군복무를 이행할 나이를 넘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소급적용 문제 또는 형평성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각계각층의 엇갈린 평가도 눈길을 끌고 있다. 참여연대·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군인권센터·전쟁없는세상·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은 이날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부의 판단을 환영하는 뜻을 밝혔다.

병역거부로 실형을 선고 받고, 지난 9월 출소한 박상욱 씨도 기자회견에서 “많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지새웠다”면서 “대법원 판결 취지가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반면 보수단체는 유감의 뜻을 표했다. 바른군인권연구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현역장병과 앞으로 예비군 훈련을 받는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대신해 유감을 표한다”면서 “이번 판결을 통해 국방경시 풍조가 만연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현역복무자에 대한 가산점 제도와 예비군 인원에 대해 특별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를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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