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양심·종교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며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모씨에 무죄를 선고했다. 사진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주최한 기자회견 모습. / 뉴시스
대법원이 양심·종교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며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모씨에 무죄를 선고했다. 사진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주최한 기자회견 모습.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대법원이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하면서 국회에선 대체복무제 입법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표현이 불필요한 논쟁을 확산시킨다는 판단 아래 적절한 용어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 씨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병역 이행을 일률적으로 강제하고 형사처벌을 가하는 것은 소수자를 관용하는 자유민주주의 기본 정신에 위배된다”며 “종교적·양심적 병역 거부는 정당한 병역 거부 사유에 해당한다”고 했다.

국회에서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대체복무제 입법 논의가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국가의 유지와 존속을 위한 헌법적 가치 이전의 인간 본연의 권리, 그 무엇도 어떤 경우에도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의 천부적 양심과 자유를 더욱 중요한 가치로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이제 정치권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 복무를 위한 입법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자유한국당도 송희경 원내대변인 명의로 낸 논평에서 “오늘 대법원의 판결로 대체복무제의 입법이 더욱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며 “한국당은 현역복무자들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고 국방의무의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은, 모든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 마련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했다.

다만 보수야당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전했다.

한국당은 “개인의 신념과 양심을 중시한 법원의 판단은 존중한다”면서도 “그러나 부작용을 최소화할 제도적 보완장치가 미비된 상황에서의 이번 결정은 다소 성급한 측면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당장 ‘진정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판단할 객관적 잣대와 검증절차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종교와 양심이 병역기피자들의 도피처로 악용된다면 엄청난 사회적 갈등비용만 키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며 “정부는 합리적인 대체 복무 방안을 찾아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정교한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체복무의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여야 입장차가 있어 입법까지 진통을 겪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당은 ‘종교적 병역거부’와 ‘양심적 병역거부’를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대체복무의 내용도 군 복무 수준으로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대체복무를 사회복지나 공익 관련 업무로 해야 하며 복무기간은 현역 육군의 1.5배 수준이 적절하다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를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 대변인은 “같은 내용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며 “‘군복무를 마쳤거나 군대에 간사람’들이 ‘비양심’적 병역이행자가 아니지 않나. 국군 장병들의 사기 증진 및 처우개선의 시작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양심’을 떼어 내고 표현을 바꾸는 일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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