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 인도에서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경기지역지부 한국잡월드분회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노숙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 인도에서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경기지역지부 한국잡월드분회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노숙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공공부문 비정규 제로’를 선언한 문재인정부에서, 그것도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이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을 해고로 내몰 수 있는 것인가.”

고용노동부 산하기관 한국잡월드 비정규 노동자인 직업체험강사들이 집단 해고 위기에 놓였다. 용역업체 소속인 강사들은 한국잡월드에 직접고용을 촉구해왔다. 지난 7월부터는 천막농성을, 지난달 19일부터는 파업에 돌입한 상태다. 그러나 사측은 이달부터 자회사에 소속될 신규 강사 채용을 시작했다. 현재 잡월드 소속 비정규 강사 275명 중 자회사 편입에 동의하지 않은 강사는 160여명이다. 채용 절차가 종료되는 대로 직접고용을 촉구했던 비정규 강사들의 대량해고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KTX 승무원 집단해고 사태 되풀이하나”

2004년 철도공사(당시 코레일)는 KTX 승무원들을 채용하면서 1년 뒤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었다. 채용된 승무원들은 당시 ‘철도유통’이라는 자회사에 소속됐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1년이 지나자 승무원들에게 또 다른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로 이적할 것을 통보했다. 이를 거부하고 직접고용을 촉구했던 280여명의 승무원들은 모두 해고됐다.

지난 1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는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집회를 열고 한국잡월드에 비정규직 직접고용을 촉구했다. 2012년 설립된 잡월드는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으로 어린이, 청소년 직업체험관이다. 직업의 가치와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교육하는 기관인 잡월드는 380여명의 직원 중 80%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직접 지도하는 강사들 역시 모두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용역업체들은 1년, 2년 단위로 잡월드와 재계약을 해야 한다. 잡월드 역시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 제로 정책에 따라 대책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논의 끝에 내린 결론은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 편입으로 결정됐다. 잡월드의 자회사 추진은 마치 ‘최선의 대안’인양 일사천리로 추진됐다. 지난 7월부터 강사들의 규탄 농성이 이어지고 있지만 결국 신규 강사 채용을 시작했다.

자회사로 소속을 옮긴 비정규 노동자들의 처우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잡월드분회에 따르면 미리 자회사로 소속을 변경한 청소·미화 노동자들의 월급여는 157만원으로 책정됐다. 소속이 변경되더라도 저임금 문제는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용역업체 소속인 강사들의 급여 역시 161만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이다.

그럼에도 강사들은 저임금 문제보다는 체험장 내 운영 실태들을 주로 지적해왔다. 비용절감을 앞세운 경영과 본사와 비정규 노동자들의 소통 단절로 인한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게 강사들의 지적이다. 일례로 레스토랑 수업 중 유통기한이 지난 월계수 잎을 일부 상태가 좋은 것들을 골라내 유통기한이 2020년까지인 통에 옮겨 담기도 했다. 강사들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자회사로 전환될 경우, 이 같은 문제들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강사들의 파업으로 체험학습에 차질이 생겼다고 공고한 한국잡월드. /한국잡월드 홈페이지 캡처
강사들의 파업으로 체험학습에 차질이 생겼다고 공고한 한국잡월드. /한국잡월드 홈페이지 캡처

◇ “520만명 다녀간 잡월드, 내부는 문제 총집합체”

잡월드 비정규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이유는 또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잡월드 직업체험강사들은 지난 7년간 단 한 번도 산재처리를 받아본 적이 없다. 잡월드분회는 지난달 26일 열린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중간착취 혈세낭비 자회사 전환 반대! 현장 노동자 실태 증언대회’에 참석해 산재처리를 거부하고 있는 잡월드의 실태를 고발했다.

이날 증언대회에는 잡월드 외 ▲한국마사회 ▲중소기업진흥공단 ▲우정사업본부 ▲울산항만공사/여수광양항만공사 ▲도로공사 ▲강원랜드 ▲서울교통공사 비정규 노동자들도 참석했다.

잡월드분회에 따르면 잡월드 측은 근무 중 강사들이 안전사고를 당할 경우, 가벼운 부상은 법인카드로 치료비를 결제하게 하고, 큰 부상은 퇴사 처리 후 재입사를 시켜주고 있었다. 근무 중 발 부상을 당한 강사는 깁스를 한 상태로 근무를 지속하기도 했다. 한 강사는 이 같은 문제를 고용노동부에 문의하고, 부당해고에 해당된다는 답변을 받기도 했다.

박영희 한국잡월드분회 분회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국정감사 등에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잡월드는 자회사 설립보다 직접고용이 비용과 효율성 면에서 긍정적이라고 스스로 판단했었다”면서 “그러나 노조의 규모가 커져서 강성노조가 될 것이라는 등, 정규직 직원들의 급여 상 불이익 등의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자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현재 강사들은 오는 12월 말 계약이 만료돼 이대로라면 해고될 수밖에 없다”면서 “더욱이 정부 또한 이 같은 문제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하고 있다. 강사들은 언제나 대화할 준비가 돼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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