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시민들이 '묻지마 살인' 사건 피해자 여성 추모글을 남기고 있다. / 뉴시스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시민들이 '묻지마 살인' 사건 피해자 여성 추모글을 남기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가 6일 “강력범죄가 사회적 약자에게 자행되면 현행법 체계 안에서라도 더 무겁게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지시했다. 지난달 경남 거제에서 20대 남성이 50대 여성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고취시킨 것이다. 하지만 정작 여성 대상 범죄 전담 대응기구로 신설된 경찰 내 ‘여성대상범죄 근절추진단’은 3개월 넘게 단장 자리를 비워두고 있어 가동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대표되는 여성 대상 범죄는 해마다 늘고 있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이 피해자였던 강력범죄(살인·성폭력)는 총 3만 270건으로, 2016년(2만 7,431건)보다 10%가량 증가했다. 21명의 희생자를 낸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 오원춘 토막살인 사건 등도 대표적으로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여성 대상 범죄다. 강력범죄를 제외하더라도 ‘몰래카메라’로 불리는 불법촬영, 불법촬영물 유포 등은 매년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제73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한 경찰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기념사를 통해 “아직 여성들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불안과 공포가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다”며 “여성의 삶과 인격을 파괴하는 범죄들을 철저히 예방하고, 발생한 범죄는 끝까지 추적해 반드시 법의 심판대에 세워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낙연 총리가 이날 국무회의에서 여성 대상 강력범죄 관련 가중처벌을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 총리는 ▲경남 거제시 50대 여성 폭행살인(10월 4일) ▲서울 강서구 지하주차장 전처 살인(10월 22일) ▲강원 춘천시 예비 신부 살인(10월 24일) 사건 등 최근 발생한 여성 대상 강력범죄를 언급한 뒤 “여성·아동·노인·장애인 같은 약자를 겨냥한 흉악범죄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대응을 한층 강화 해야겠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범죄는 예방이 가장 중요하니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은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취약지대를 중점 관리하고, 폐쇄회로(CC)TV와 비상벨을 확충하라”며 “범죄 피해자들은 신상정보 노출로 인한 보복범죄 등 2차 피해까지 걱정하기 때문에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관련 법령의 보완도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서대문구 본청 인근 바비엥3 한 사무실에서 열린 '여성대상범죄 근절 추진단' 개소식에서 민갑룡 경찰청장이 참석자들과 현판 제막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철구 사이버국장, 이은정 경무국장, 민 청장, 김창룡 생안국장, 배용주 수사국장, 김숙진 부단장. / 경찰청 제공
서울 서대문구 본청 인근 바비엥3 한 사무실에서 열린 '여성대상범죄 근절 추진단' 개소식에서 민갑룡 경찰청장이 참석자들과 현판 제막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철구 사이버국장, 이은정 경무국장, 민 청장, 김창룡 생안국장, 배용주 수사국장, 김숙진 부단장. / 경찰청 제공

◇ 전담기구 수장은 3달 째 공석

민갑룡 경찰청장은 디지털 성범죄를 비롯한 여성 대상 범죄에 강력하게 대응하라는 문 대통령의 주문과 여론에 화답하는 조치로 ‘여성대상범죄 근절추진단’을 출범시켰다. 여성 대상 범죄 대책 기획, 부처 공동 대응과제 발굴과 협업, 현안 대응, 현장 점검 및 모니터, 사건 수사와 피해자 보호 지도·모니터 등을 담당하는 전담기구다.

하지만 추진단장 직제 신설 전담부처인 행정안전부와 협의를 마치지 못해 여전히 수장 자리가 공석이다. 경찰은 학계나 시민단체 관계자 등 외부 전문가를 단장으로 영입하겠다는 방침이다. 추진단에는 총경급 부단장이 이미 배치돼 있기 때문에 외부 인사로 단장을 임명하려면 경무관급 고위공무원단 직제가 신설돼야 한다. 경찰 고위직제 신설은 경찰청 일반사무를 지휘하는 행안부와 조율을 거쳐야 한다. 예산이 지출되기 때문에 기획재정부와의 협의도 필요하다. 추진단을 임시 조직이 아닌 공식 부서로 신설하기 위해서는 대통령령인 ‘경찰청과 그 소속기관 직제’ 개정작업도 이뤄져야 한다.

민 청장은 취임 후 첫 치안현장 행보로 서울 혜화역에서 열린 불법촬영 규탄 여성집회를 찾았다. 취임사에서도 “경찰은 누구보다 여성들이 느낄 극도의 불안과 절박한 심정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불법촬영 등 여성을 위협하고 인격을 파괴하는 범죄와 불법을 근절하겠다”고 강조하는 등 여성 대상 범죄 근절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여성 대상 범죄가 계속해서 늘고 있는 만큼 추진단 구성을 조속히 완료해 본격적인 가동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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