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화재가 일어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앞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이 놓여 있다. /뉴시스
지난 11일 오후 화재가 일어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앞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이 놓여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이선재 기자] ‘종로 고시원 화재사건’ 피해자들의 생사를 가른 것은 스프링클러였다.

지난달 22일 경기 고양시 한 고시원에서도 투숙객이 잠든 시간에 불이 났다. 하지만 곧바로 불이 꺼지면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반면 지난 1월 46명의 희생자를 낳은 밀양 세종병원 화재 역시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

2009년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개정으로 고시원에도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다. 하지만 이번에 참변을 당한 국일고시원은 2007년부터 영업을 시작, 개정된 법의 적용을 받지 않았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국일고시원 건물주는 법적 책임이 아닌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건물주는 최근 비소 검출로 논란이 일었던 백신 수입사 회장으로 알려졌다. 2015년 국일고시원은 서울시의 스프링클러 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됐지만 건물주의 반대로 무산됐다.

문제는 국일고시원과 같이 스프링클러가 없거나, 있어도 작동을 하지 않는 고시원이 서울에만 1,000여개가 넘는다는 사실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이전인 2009년 7월 이전 지어진 서울의 노후 고시원은 1,080곳에 달한다. 서울 시내 고시원(5,840곳) 5곳 중 1곳은 화재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 것이다.

또한 2012~2016년 발생한 고시원 화재 252건 중 10명 이상 사망하거나 재산피해가 50억원 이상인 대형 화재는 총 20건이었다. 이 가운데 스프링클러가 작동했던 고시원은 단 1곳뿐이었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건물주의 비협조 등의 이유로 사업에 지장이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주는 대신 고시원 방값을 5년간 동결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설치를 거부하는 업주 및 건물주가 많다는 것이다.

사업 취지가 취약계층의 안전을 위한 것인 만큼 지원대상도 한정적이다. 서울시는 2009년 7월 이전부터 운영된 고시원 가운데 일용직과 무직 등 취약계층이 50% 이상 거주하는 고시원만 스프링클러 설치를 지원한다. 이처럼 여러 이유들로 노후 건물들이 계속 ‘안전 사각지대’로 남아 있으면서 취약계층의 안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는 비판이다.

주거권네트워크와 빈곤사회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10일 국일고시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화재 안전기준을 강화하고 기존 건축물에도 소급 적용해 안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면서 “쪽방과 여관,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 비주택에 거주하는 가구가 전국 37만에 달하며 이중 15만 가구는 고시원에 거주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방청 화재통계 현황에 따르면 올해 화재 사망자 306명 중 96명이 비주택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안정적인 집 없이 주택 아닌 곳을 거처로 삼는 이들이 취약한 안전대책 때문에 계속 희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찰은 화재 원인 규명을 위해 전담 수사팀을 구성했다. 지난 10일 현장감식을 진행했고, 수거한 전기난로와 콘센트, 주변 가연물 등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넘긴 상태다. 국과수의 감정 결과는 3주 내 나올 예정이다.

서울시도 관내 고시원 5,840곳과 노후 주택 및 소규모 건축물(연면적 2,000㎡ 미만) 1,675곳을 점검한다. 점검 내용은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유무 ▲비상구·피난경로 장애물 적치 여부 ▲피난 안내도 부착여부 ▲기둥·보 등의 건축물 상태와 구조적 안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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