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정말 자신의 희곡들을 모두 자신의 손으로 썼을까? 사진은 뉴욕에서 셰익스피어의 454번째 생일 축하 공연을 벌이는 시민들. /뉴시스·신화
셰익스피어는 정말 자신의 희곡들을 모두 자신의 손으로 썼을까? 사진은 뉴욕에서 셰익스피어의 454번째 생일 축하 공연을 벌이는 시민들. /뉴시스·신화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정확하네. 그리고 이 편지를 쓴 사람은 독일 사람이야. ‘귀하에 관한 평가는 여러 출처를 통해 수집했습니다’라는 문장 구조가 이상하지 않나? 프랑스 사람이나 러시아 사람이라면 문장을 이런 식으로 쓸 리가 없네. 동사를 맨 끝에 두는 실례를 범하는 건 독일 사람뿐이네.
(중략)
“제 편지를 받아보셨습니까?”
그는 몹시 거친 목소리와 확실하게 티가 나는 독일 억양으로 물었다.”
아서 코난 도일, <보헤미아 왕국의 스캔들>, 곽영미 옮김, 북하우스

오늘날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손쉽게 가해자의 지문과 발자국을 발견해낸다. 숙련된 프로파일러들은 범인의 평범한 언행에서 그의 심리와 성장 배경을 추론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글로 써진 어휘와 문장을 바탕으로 작성자가 누군지 알아내는 일도 가능할까. 출생지를 알아맞히는 일 정도는 똑똑한 탐정 한 명도 가능하지만, 방대한 양의 저술에서 특정인의 흔적을 발견해내려면 통계 프로그램의 도움이 필요하다.

◇ 익명의 범죄소설과 계량문체론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K.롤링은 지난 2013년 익명으로 범죄소설을 발표했지만, 4개월 만에 정체가 탄로났다. /뉴시스·AP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K.롤링은 지난 2013년 익명으로 범죄소설을 발표했지만, 4개월 만에 정체가 탄로났다. /뉴시스·AP

2013년 8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롤링은 <쿠쿠스 콜링>을 쓴 것이 자신이라고 발표했다.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무명의 작가가 쓴 이 범죄소설이 출판된 지 4개월을 지나던 시점이었다. 롤링이 자신의 유명세를 배제하고 신작의 작품성을 평가받겠다는 당초 의도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롤링은 자신이 한 언론사로부터 당신이 <쿠쿠스 콜링>을 썼냐는 질문이 담긴 이메일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매체는 롤링에게 이메일을 보내기 전에 대학 연구소에 문체 분석을 의뢰하는 꼼꼼함까지 발휘했다. 당시 ‘롤링 가설’을 검증하는 작업을 맡았던 듀케인 대학의 수학·컴퓨터과학 교수 패트릭 쥬올라는 훗날 미국 방송사 NPR과의 담화에서 자신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갤브레이스와 롤링, 그리고 다른 여성 범죄소설 작가 두 명의 작품을 비교·검토한 결과 <쿠쿠스 콜링>과 롤링의 <캐주얼 베이컨시> 사이에 다른 소설들과 차별화되는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누구나 두 작품의 연관성을 알 수 있는 ‘마법의 단어’들, 이를테면 등장인물의 이름이 같다거나 <해리 포터>에서 사용된 모티브가 재활용됐다거나 하는 사례는 없었다. 또한 롤링은 독자들이 작가를 추측할 수 없도록 일부터 남성적인 문체를 사용했다. 그러나 롤링은 보다 확실한 증거들이 단순히 글만 읽어서는 알 수 없는 곳에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다.

쥬올라 교수가 <쿠쿠스 콜링>에서 찾아낸 ‘언어적 지문’ 중 하나는 영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인 'the'와 at·in·on 등의 전치사였다. 포크를 접시의 어느 쪽에 놓을 것인가를 묘사할 때 누군가는 ‘on the left’를, 어떤 사람은 'to the left'라고 쓰며 'at the left'라고 쓰는 사람도 있다. 이 묘사들은 너무 단순한 나머지 작가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는 목적에서 평소 사용하지 않던 표현들을 쓰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반복해서 사용된다는 것이 쥬올라 교수의 설명이다.

텍스트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작가의 특징을 유추해내는 이 기술은 ‘계량문체론’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주성분분석(PCA)과 베이즈 정리라는 두 가지 통계 기법을 활용한다. 많은 양의 데이터에서 중요 변수만을 뽑아내 상관관계 분석을 용이하게 만드는 주성분분석은 두 작가의 특징을 비교하는데 용이하다. 한편 새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이미 알고 있던 정보를 개량해나가는 베이즈 통계는 두 작가가 같은 인물이라는 가설을 검정할 때 사용된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숨겨진 말로의 흔적

오랜 논란 끝에, 크리스토퍼 말로는 '헨리 6세'의 공저자로 인정받았다. /뉴시스·AP
오랜 논란 끝에, 크리스토퍼 말로는 '헨리 6세'의 공저자로 인정받았다. /뉴시스·AP

문장을 증거로 작가를 추적할 수 있다면 자연스레 풀어보고 싶어지는 질문이 있다. 영문학계의 가장 큰 수수께끼로 꼽히는,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정말 자기 손으로 자신의 희곡을 모두 썼을까’가 그것이다. 지난 수십 년 간 셰익스피어 연구자들은 프랜시스 베이컨을 필두로 크리스토퍼 말로나 에드워드 드 베레, 심지어는 엘리자베스 여왕까지 수많은 ‘진짜 셰익스피어’ 후보자들의 이름들을 제시해왔지만 뚜렷한 증거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옥스퍼드대학 출판부는 2016년 <헨리 6세> 3부작을 재출간하며 셰익스피어와 함께 크리스토퍼 말로의 이름을 공저자로 기재했다. <쿠쿠스 콜링>과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 희곡들의 문체를 분석한 결과다. 말로는 29살의 나이(1593년)로 이른 죽음을 맞았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중·후기 희곡들을 대필했을 가능성은 없다. 다만 <헨리 6세>의 경우 1590년대 초반에 쓰인 셰익스피어의 초기작인 만큼, 아직 출세하기 전이던 셰익스피어가 말로와 공동작업을 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셰익스피어 연구자들이 <헨리 6세>에서 찾아낸 말로의 흔적 역시 겉으로 봐선 의미를 알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몇 가지 눈에 띄는 부분들은 있다. 다음은 말로의 작품들에서 나타난 어휘가 <헨리 6세>에서도 발견된 사례다.

요크: 프랑스 계집아, 넌 이제 내 손에 꽉 잡혔다.
어디 주문이나 외워, 악령들을 해방시켜
너를 자유롭게 해달라고 시도해라.
악령의 총애를 받기에 알맞은 멋진 노획품이다.
보아라, 이 추한 마녀가 이마를 찌푸리며 보는 꼴을.
마치 그리스의 마녀 키르케처럼 내 모양이나 바꿔놓겠는가!
잔 다르크: 네 몰골을 바꿨댔자 그 이상 더 흉측하지는 못할 거다.
요크: 그렇지, 샤를르 황태자가 미남이지, 그놈 꼴이 아니면 바람기 있는 네 눈에 들 리가 없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헨리 6세>, 신정옥 옮김, 전예원

아기다스: 어떻게 마마는 그토록 험악하게 생기고 오직 전쟁에만
관심 있는 자를 사랑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자는 마마를 품에 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지 말할 것이며,
마마께서 사랑스런 대화를 원할 때, 마마의 고상한 귀에
너무도 거슬리는 주제인 전쟁과 피로 가득한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을 것입니다.
크리스토퍼 말로, <탬벌레인 대왕>, 강석주 옮김, 문학과지성사

바람기 있는 눈(your dainty eye)과 고상한 귀(your dainty ears)라는 두 표현은 모두 한 사람의 신체부위를 수식하는 단어로 ‘dainty’를 사용했는데, 이는 말로를 제외하면 동시대의 어느 작가들에게서도 발견되지 않는 표현이다. 한편 게리 테일러 플로리다 주립대학 교수는 “프랑스여, 너의 영광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Now France, thy glory droopeth to the dust)”는 잔 다르크의 독백(<헨리 6세> 1부)을 셰익스피어와 말로가 협업한 증거로 제시했다. 역시 ‘glory droopeth’가 ‘your dainty'처럼 크리스토퍼 말로밖에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라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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