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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자의 육아일기
[‘초보아빠’ 권기자의 육아일기⑱] 누구를 위한 공포입니까?
2018. 11. 13 by 권정두 기자 swgwon14@sisaweek.com
BCG 경피용 백신에서 비소가 검출되자 자극적인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그래픽=이선민 기자
BCG 경피용 백신에서 비소가 검출되자 자극적인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그래픽=이선민 기자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난주, 부모들을 깜작 화들짝 놀라게 만든 소식이 있었습니다. 결핵 예방을 위해 맞히는 BCG경피용 백신에서 ‘비소’가 검출됐다는 소식이었죠.

저희 아이는 피내용 예방접종을 한 덕에 걱정을 덜었지만, 경피용을 맞힌 부모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됐습니다. 기침만 해도 걱정이 한가득인 시기에 백신에서 독성물질이 검출됐다니 억장이 무너질 일이죠. 부모의 선택이 자녀에게 좋지 않은 결과로 돌아왔을 때의 참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고요.

그런데 저를 비롯한 부모들을 더욱 놀라고, 걱정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언론보도였습니다.

BCG 경피용 회수 논란… 엄마들 “국가가 내 아이에게 독약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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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G 경피용 백신 비소 검출’ 비소, 얼마나 위험한 물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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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 검출 BCG 경피용 백신 논란… 나폴레옹도 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

당시 포털사이트에서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노출된 주요 기사들의 제목입니다. 무척 자극적이죠. 제목만보면 마치 갓 태어난 신생아에게 독약을 접종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가뜩이나 예민한 부모들을 더욱 분노하고, 공포에 떨게 만듭니다.

내용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은 대부분 비소라는 물질의 특성 중 독성에 대한 부분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면, 정확히 어떤 물질이 얼마나 검출됐고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담기지 않았습니다. 부모들의 공포만 조장하고 있는 기사죠.

제가 직접 취재한 바에 따르면(관련기사 클릭 [이슈&팩트(60)] BCG경피용 비소 검출 파문… 정말 ‘독약’을 접종했나), 사태의 심각성은 자극적인 제목들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몸무게 5㎏ 아기를 기준으로 하루 허용치의 38분의 1 정도의 양이 검출됐고, 이마저도 전부 신체로 유입된 것은 아니었죠. 비소는 살에도 있을 정도로 흔한 물질이기도 하구요.

물론 비소가 검출된 것 자체가 문제이고, 정부의 관리에 구멍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핏덩이’에게 ‘독약’이나 ‘사약’을 접종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언론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왜 이러한 제목들이 나왔는지 너무 잘 압니다. 더 자극적인 제목을 내걸어야 더 많은 조회수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죠. 소위 ‘제목 장사’라고 하는 겁니다.

부모들이 걱정할 만한 내용을 보도하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정확한 근거나 사실관계 없이 부모의 마음을 악용하고, 상처를 안겨주는 막연한 공포 조장이 옳지 않다는 겁니다. 다른 가십거리야 그렇다 쳐도, 부모 마음을 가지고 조회수 장사를 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쉬움이 남는 건 언론만이 아닙니다. 정부 기관도 조금 더 친절하게 안내를 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질병관리본부가 함께 발표한 보도자료를 보면,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의문점도 여러 군데 남고요. 적어도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땐, 조금 더 쉬운 언어와 상세한 설명, 그리고 예시를 통해 일반 국민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람직 할 것 같습니다. 오해가 불거졌을 땐, 좀 더 빠르고 적극적으로 해명을 해야 하고요. 그래야 불필요한 공포와 우려, 가짜뉴스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는 비단 이번 사태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태의 본질과 무관하게 부모들이 걱정과 우려에 휩싸이거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잘못된 정보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퍼져있거나, 이를 영업 등에 악용하는 경우도 많고요.

이번 사태와 관련해 댓글과 SNS 등을 살펴보다보니 “이러니 한국에서 애 낳고 살겠나”라는 반응도 적지 않더군요. 정말 누구를 위한 공포인지, 그것이 어떤 악영향들을 남기고 있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러한 혼란을 해소하고, 부모들이 ‘쓸 데 없는 걱정’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팩트 체크’를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부모들의 걱정을 살만한 아이들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는 정부가 빠르고 정확하게 팩트 체크를 해주는 겁니다. 끊이지 않는 논란과 자극적인 보도로 속을 썩이기엔 부모는 너무 할 일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