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역 폭행사건’은 우리사회가 품고 있는 숙제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내용이나 양상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그동안 우리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들의 복사판이다. 또 다시 찝찝한 뒷맛을 남긴 채 그냥 넘어간다면, 머지않아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사건 당사자들의 문제는 경찰 수사와 향후 재판에 맡겨두고, 이번 ‘이수역 폭행사건’을 통해 우리사회가 정말로 성찰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짚어보자.

이수역 폭행 사건은 우리사회의 남녀갈등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이수역 폭행 사건은 우리사회의 남녀갈등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시사위크=정수진 기자] ‘이수역 폭행사건’은 초기 또 하나의 ‘여혐사건’으로 알려지며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피해자라고 주장한 여성은 머리를 짧게 잘랐다는 이유로 남성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고, 경찰 역시 피해자인 사진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다고 했다.

충격적인 주장에 반응은 뜨거웠다. SNS와 온라인 댓글엔 남성을 맹목적으로 비판·비하·조롱하는 내용이 넘쳐났다.

하지만 이내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목격자의 증언과 CCTV 영상, 경찰 조사내용 등이 전해지면서다. 피해를 주장한 여성들이 먼저 시비를 걸고,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폭언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

그러자 이번엔 여성에 대한 맹목적인 비판·비하·조롱이 역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수역 폭행사건’은 당사자들을 넘어 우리사회 남녀갈등으로 비화됐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무엇일까. 술집에서 손님들끼리 시비가 붙었고, 폭행사건으로 비화한 것이다.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서로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각자의 잘잘못은 향후 경찰 수사와 재판을 통해 가려질 문제다.

분명한 것은 이번 ‘이수역 폭행사건’이 본질적으로 ‘남녀혐오’와 무관하다는 점이다. 단지 폭행사건에 얽힌 당사자들이 남성과 여성이고, 서로에게 성적비하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을 뿐이다. 다수의 남성집단이 여성을 혐오해 불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했거나, 다수의 여성집단이 남성을 혐오해 불특정 남성을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 아니다.

‘이수역 폭행사건’은 불쏘시개였다. 그 불쏘시개가 여전히 꺼지지 않은 우리사회 남녀갈등을 다시 활활 타오르게 만든 것이다. 얼마 뒤면 논란이 잠잠해지고, 남녀갈등의 불길 역시 수그러들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그래왔듯 이는 결코 진화가 아니다. 언제든지 다시 불길이 솟구칠 수 있는 살아있는 불씨다.

이러한 불씨가 계속해서 남아있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양극단의 남녀혐오다. 지속적인 남녀혐오 조장이 남녀갈등을 만들고, 또 키웠다.

더 이상 비이성적이고 소모적인 갈등이 지속되지 않도록 마침표가 필요하다. 물론 해결이 쉬운 것은 아니다. 특정인이나 집단에게 책임을 묻을 성격의 문제가 아니고, 제도적 보완만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양극단의 일탈로 치부한 채 방치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진 남녀갈등을 풀기위해선 우선 사회 전반적으로 보다 성숙한 논의와 합리적인 합의점 도출이 필요하다. 특히 그 과정에서 양극단의 목소리나 주장이 갈등을 심화시키지 못하도록 합리적인 다수 시민들이 담론을 이끌어가야 한다. 아울러 사회적 영향력이 큰 오피니언 리더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국가는 물론 사회 각 분야의 노력도 요구된다. 정부는 보다 적극적인 대처로 부적절한 갈등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하고, 남녀갈등이 해결될 수 있도록 큰 흐름을 이끌어야 한다. 갈등을 부추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언론도 보다 진지한 성찰과 접근이 필요하다.

남녀혐오는 극히 일부의 잘못된 생각이다. 남녀불평등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고, 다른 차원이다. 혐오로는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고,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이수역 폭행사건’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남녀혐오에 오염됐는지 그 심각성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작은 남녀혐오 불쏘시개로도 남녀갈등은 활활 타올랐다. 이제 그 불을 끌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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