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의한 직장 성폭력 사건 2심 대응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의한 직장 성폭력 사건 2심 대응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판사는 피해자에게 ‘왜 반대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하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판사가 물었어야 하는 질문은 안희정 전 지사에게 ‘적극적으로 동의를 구했냐’는 것이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반드시 피고인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항소심을 앞두고 15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공동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1심 판결의 문제점과 언론, 피의자 측근들에 의한 ‘2차 가해’에 대해 고발하고, 향후 대응 방향에 대해 밝혔다. 특히 대책위는 “1심 재판의 심각한 법리오해와 사실오인, 성인지 감수성 부재와 달리 항소심 재판부는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 대책위, 항소심 재판부에 변화 촉구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21일 오전 10시 서울지방변호사회 5층 정의실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의한 직장 성폭력 사건 2심 대응’ 기자회견을 열고 항소심 재판부의 변화를 촉구했다.

첫 발제자로 나선 정혜선 변호사는 “피해자는 세 차례 소환돼 조사를 받으며 검찰의 질문에 진실하게 답변했다”면서 “사생활이 담긴 기록은 물론 핸드폰 등 일체의 증거자료를 제출했다. 반면 피고인은 핸드폰을 폐기하고, 이를 이유로 검찰에 핸드폰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한 1심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12시간 동안 신문을 했지만 피고인에게는 어떠한 신문도 하지 않았다. 누구의 진술과 증거를 더욱 신뢰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정 변호사는 “1심 재판부는 ‘위력은 존재하지만 행사했다고 볼 증거는 없다’는 논리를 만들어 법률에서 요구하지도 않는 ‘위력의 행사’라는 요건을 자의적으로 추가했다”면서 “판결문의 내용들은 피해자가 당한 범죄 사실들과는 무관한 내용들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대책위도 성명문을 발표하며 “1심 재판부는 성폭력 사실이 알려진 직후 피고인의 입장발표와 검찰조사 시 발언, 재판에서의 주장까지 매번 번복해온 진술에 대해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서 “피고인은 자신이 일상적으로 수행비서에게 어떻게 행동해왔으며, 그 행동이 위력과 어떻게 무관한 것인지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안희정과 같이 정치·사회·경제적 권세를 가진 인물의 사건에서 재판부는 무엇을 고려하고 무엇을 배제하려고 하는지, 그것을 용기 있게 고발한 피해자의 말을 어떻게 듣고 있는지 똑똑히 지켜보겠다”고 강조했다.

◇ “피해자답지 않기에 피해 없다? 1심 오류 심각”

기자회견에서는 1심 재판부의 문제적 발언과 신문 내용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지적이 제기됐다.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는 인정 하면서도 피해자의 진술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무죄라고 판단했다”면서 “진술을 신뢰할 수 없다는 재판부의 판단에 납득할 수 있는 근거는 없었다. 피해자에 대한 의심은 판결문 곳곳에 담겨있었다”고 비판했다.

이소희 사무국장이 대표적으로 지적한 재판부 또는 판결문의 문제적 발언은 다음과 같다.

“피해를 당한 이후에도 피고인을 멀리하지 않았고, 지근거리에 있으면서 피고인을 챙겼다.”

“피해자가 음주 등으로 정상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거나 업무로 인해 심각히 위축된 상태였다거나, 피고인의 접근을 막는 손짓을 하는 행동을 못할 정도로 피고인이 위력적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볼 사정도 보이지 아니한다.”

“담배를 방문 앞에 두고 텔레그램으로 담배를 뒀다고 문자를 보내기만 했어도 간음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러시아에서 (성폭력)사건 후 피해자가 피고인의 입맛에 맞춰 ‘순두부식당’을 물색하고, 와인바에서 통역인 부부, 피고인과 동석하고, 피고인에게 존경심을 표하기도 하는 점 등...”

이 사무국장은 “이는 성폭력 사건에 있어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전형적인 통념”이라며 “재판부는 피해자가 어떤 구조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를 간과했다. 항소심만은 ‘피해자다운 행동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가 없다’라는 1심 재판부의 심각한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공동성명문을 발표하고 있다. 대책위는 항소심 재판부에 변화를 촉구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공동성명문을 발표하고 있다. 대책위는 항소심 재판부에 변화를 촉구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 “2차 가해, 재판부가 방치했고 언론이 받아썼다”

김지은 씨가 언론에 피해 사실을 폭로하고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진행된 ‘2차 가해’도 도마에 올랐다. 대책위는 이 같은 과정이 사실상 재판부의 묵인 하에 이뤄졌다고도 지적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피고인은 전 비서실장과 전 운전기사, 피해자 후임수행비서, 전 홍보팀장, 피고인 부인 등 최측근 7명을 증인으로 신청했고, 이들 모두 공개증언을 하게 됐다”면서 “피해자 변호인과 검찰은 비공개 증언을 요구했지만 재판부는 끝끝내 피고인 측만은 공개증언을 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고인 측 증인은 ‘안희정과 격의 없이 맞담배를 피웠다’며 안희정의 민주적인 면모를 주장하면서도 피해자가 격의 없이 대화하는 것은 ‘깜짝 놀랄 일’이었다고 주장했다”면서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쓰며 ‘안희정·김지은 격의 없이 대화, 깜짝 놀랐다’, ‘김지은, 직접 호텔 예약했다’는 등의 제목을 뽑으며 이를 ‘새 국면’으로 표현했다”고 비판했다.

김 부소장은 “숙박업소 예약, 식사장소 예약, 이동 동선 확인 등은 모두 수행비서의 역할”이라며 “결국 재판부는 증인신문이 다 끝나고 형식적으로 언론 자제 요청을 했다. 피해자에 대한 지독한 편견, 의심, 비난은 오래된 병폐이며, 앞으로도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책위는 지난 4월 18일 피고인 측근에 의한 2차 가해 3명의 사례를 모아 고발을 진행했다. 이후 9월 16일 서울시경찰청은 이들 3명 중 2명을 인터넷 명예훼손 및 모욕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고, 10월 27일에는 피해자를 비난하고 모욕적인 댓글을 단 21명도 송치했다.

한편 안 전 지사의 항소심은 이달 29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2부(부장판사 홍동기)의 심리로 첫 공판 준비기일이 열린다. 1심에서 3명이었던 피해자 측 변호인단은 항소심에서 9명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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