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현우진 기자] ‘보이콧’의 어원은 18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연이은 흉작에 지친 아일랜드 농민들은 지주의 대리인이었던 찰스 보이콧에게 임대료를 깎아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한다.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었던 농민들은 찰스 보이콧을 보이콧하기로 결정했다. 그가 고용한 하인들은 일을 그만뒀으며 사업가들은 거래를 끊었고 우편배달부들은 편지 배달을 거부했다. 무력 행동을 제외한다면, 사회적 약자(소수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투쟁 수단은 협상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새 노동자‧사용자‧정부 합의체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22일 공식 출범했다. 본위원회는 노사정 각계의 대표와 공익위원을 포함해 모두 18명의 위원으로 구성됐지만 이날 행사에는 17명만이 참석했다. 민주노총이 정부의 탄력근로제 확대 방침에 반발해 불참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2일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에 반발하며 노사정대표자회의를 떠났던 민주노총은 복귀 3개월 만에 총파업을 선언했다.

협상 테이블에서 목소리를 내는 대신 회의실 문을 박차고 나옴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종이 몇 장짜리 합의문에 담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말을 시민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간단히 말하면 문제제기와 공론화다.

그러나 대화를 거부하고 투쟁에 나설 힘이 있는 조직은 그만한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 노조를 비롯한 각종 이익집단들, 또는 여‧야 정당들이 소위 ‘민주적 합의제도’의 한계를 벗기 위해 대화를 거부한 전례는 수없이 많다. 이들 중 대부분은 시급히 해결돼야 할 사안들을 내버려둔 채 시간을 끌다가 반쪽짜리 합의만 도출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진짜 개선을 이끌어낸 것은 제시한 근거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던 소수에 불과했다. 최저임금 인상계획의 원상복구와 노동경직성을 높이는 규제의 도입을 주장하는 민주노총의 외침은 전자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노사정 협의체를 거부한 채 정부‧국회와 개별 협상을 벌이려는 모습도 상당히 우려스럽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이 참여하는 모든 형태의 교섭‧자문‧정보 교환’으로 정의된다. 민주노총의 요구사항을 담은 선언문에서는 ‘노정 교섭’이라는 표현을 자주 찾아볼 수 있지만, ‘노사정 교섭’이라는 표현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명백히 이해관계자의 한 축인 사측을 대화에서 배제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설립 목적의 핵심은 사회적 대화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의 대표인 민주노총은 대화의 주체로서 지위를 인정받는 집단이다. 지난 6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민주노총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는 의견을 밝혔으며, 이들이 “상당한 사회적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도 발언했다. 민주노총이 약자의 수단인 보이콧을 이용하는 대신 자신이 대표해야 할 ‘진짜 약자’들을 위해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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