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갑질 등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부당노동행위가 실체를 드러내고 있지만, 정작 양 회장을 신고한 회사직원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폭행·갑질 등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부당노동행위가 실체를 드러내고 있지만, 정작 양 회장을 신고한 회사직원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사위크=정수진 기자] 폭행·갑질 등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부당노동행위가 실체를 드러내고 있지만, 정작 양 회장을 신고한 회사직원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5년간 고용노동부에 부당노동행위로 신고된 건은 1건으로, 이마저도 폭행신고가 아닌 ‘금품체불’ 진정이었다. 사실상 양 회장의 기행과 폭행에 대한 신고는 ‘0건’인 셈. 전문가들은 회사 직원들의 ‘침묵’에 대해 “결국 ‘양진호 방지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한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양 회장이 실제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인터넷기술원그룹 계열사 4곳에서 지난 5년 동안 고용부에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진정·고소는 1건에 불과했다. 지난 2015년 1월 계열사 1곳에서 근로기준법 제36조 위반으로 제기한 것으로, 폭행 신고가 아닌 ‘금품체불’ 진정이다. 해당 사건은 사측이 시정 조치를 해 행정종결 처리됐다.

양 회장의 폭행영상이 공개된 이후에도 △직원 염색 강요 △닭 살생 강요 △대학교수 폭행 등 수많은 기행과 갑질행각 사례들이 언론보도를 통해 폭로됐지만, 정작 경찰에 신고된 건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직원들은 양 회장의 엽기행각에 분노하면서도 쉽사리 용기를 내기 못한 것으로 보인다. 폭행을 옆에서 지켜보며 ‘다음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컸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풀이다. 또, 업무 성격 자체가 불법 요소가 많다 보니 직원들 역시 암묵적으로 동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웹하드의 경우 음란물 유통이 75%의 수익구조라고 한다면 본인도 떳떳하지 못해 피해 제보를 막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법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들의 ‘침묵’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근로기준법 8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사고의 발생이나 그 밖의 어떠한 이유로도 근로자에게 폭행을 하지 못한다”고만 명시할 뿐 폭언·갑질 등에 대한 규정은 담고 있지 않다. 폭행이 아닌 폭언이나 불합리한 지시 등을 당해도 법적으로 구제받을 별다른 방법이 없다. 갑질을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폭행이 있었다 하더라도 사용자가 근로기준법상 폭행죄로 처벌받는 경우 역시 드물다.

양진호 사태를 지켜본 많은 전문가들은 직장 내 갑질문화 청산을 위해 법과 제도의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지난 10월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직장내 갑질금지법 국회 조속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직장내에서 괴롭힘을 당한 당사자들이 그림을 그린 종이봉투를 쓰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양진호 사태를 지켜본 많은 전문가들은 직장 내 갑질문화 청산을 위해 법과 제도의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지난 10월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직장내 갑질금지법 국회 조속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직장내에서 괴롭힘을 당한 당사자들이 그림을 그린 종이봉투를 쓰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그런 점에서 직원들의 ‘침묵’은 직장 내 갑질문화 청산을 위해 법과 제도의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사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이미 법안발의가 된 상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9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정신·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이완영, 장제원 의원이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이유로 제동을 걸어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는 지난 10월 노르웨이 버건 대학의 '세계 따돌림 연구소'가 개발한 부정적 경험 설문지를 사용해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를 한 결과, 직장인 응답자 1,087명 중 300명(27.8%)가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는 이에 대해 “유럽 등 국제 연구에서 나타나는 피해율이 10% 초반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은 약 3배를 넘는 수치”라며 “해당 조사결과는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직장 괴롭힘 방지법’ 통과가 시급함을 재확인 시켜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고용부는 지난 5일부터 양 회장의 계열사 5곳을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벌이고 있다. 이를 통해 직원 폭행을 비롯한 다수의 부당노동행위 정황을 발견했다. 당초 고용부는 양 회장 계열사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지난 16일까지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니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감독 기간을 오는 30일까지로 연장했다.

양 회장의 계열사는 지난 5년간 관할 고용노동관서의 근로감독을 받은 적이 없다. 지난 5년 동안 양 회장의 계열사에서 신고가 제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상 근로감독은 신고나 민원 제기, 언론 보도 등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이번 경우처럼 겉으로 문제가 드러나지 않으면 상당 기간 근로감독을 받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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