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0 07:52
그는 왜, 한국후지제록스와 12년째 싸우는걸까
그는 왜, 한국후지제록스와 12년째 싸우는걸까
  • 정소현 기자
  • 승인 2018.11.2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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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업자 양옥균 씨, 한국후지제록스 디지털인쇄기 품질문제로 수년째 법정공방 
“허위 증거로 법정기망” 소송사기 고소 이어 재심 청구 준비중   
한국후지제록스가 홍보한 ‘최첨단 디지털인쇄기’를 샀다가 모든 것을 잃고 인생의 벼랑 끝까지 내몰렸다는 양옥균 씨는 최근 새로운 증거를 확보하고 ‘재심 청구’를 준비 중이다.  
한국후지제록스가 홍보한 ‘최첨단 디지털인쇄기’를 샀다가 모든 것을 잃고 인생의 벼랑 끝까지 내몰렸다는 양옥균 씨는 최근 새로운 증거를 확보하고 ‘재심 청구’를 준비 중이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무려 12년. 1심에서 패소했고, 항소 역시 기각 당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후지제록스 전 대표이사 등을 상대로 10년 넘게 소송을 벌이고 있는 양옥균(52) 씨 얘기다. 한국후지제록스가 홍보한 ‘최첨단 디지털인쇄기’를 샀다가 모든 것을 잃고 인생의 벼랑 끝까지 내몰렸다는 그는 최근 새로운 증거를 확보하고 ‘재심 청구’를 준비 중이다.  
  
◇ ‘세계 최고’라던 인쇄기… 그 악연의 시작 

악연의 시작은 2006년 사들인 ‘디지털인쇄기’에서 비롯됐다. 복사기·팩시밀리·디지털인쇄기 등을 제조 판매하는 한국후지제록스가 2006년 최신형으로 홍보하며 야심차게 마케팅 전략을 펼쳤던 ‘iGen3(이하 아이젠3)’를 사들인 게 화근이 됐다.  

2006년 3월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후지제록스 측은 신제품 ‘아이젠3’를 선보이며 “지난 2003년 미국 및 유럽 시장에 소개돼 디지털 컬러 인쇄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제품으로, 이 제품엔 무려 400개의 특허기술을 포함돼 있다”고 소개했다. “기존 옵셋 인쇄에 의존해 왔던 도서출간, 학습지, 사보, 홍보물 등을 원판이 필요없이 비용이 저렴한 디지털 인쇄로 대체가 가능하다”고도 했다. 정광은 당시 한국후지제록스 대표는 “세계 최고의 디지털 컬러 인쇄기 아이젠3 출시로 디지털 인쇄시장이 급속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홍보했다. 

디자인, 인쇄 실사출력 등을 전문으로 하는 인쇄·광고대행기획사를 운영하던 양옥균 씨는 8억8,000여만원(부속장비 및 후처리장비 포함)을 들여 ‘아이젠3’를 사들였다. 제품은 2006년 9월말 배송돼 12월 중순 설치가 완료됐다. 

하지만 제품의 성능은 홍보 내용에 미치지 못했다는 게 양씨의 주장이다. 원하는 색상과 해상도가 나오지 않았고, 인쇄 속도도 한국후지제록스 측에서 보장한 정도에 미치지 못했으며, 하이라이트 부분에 잉크가 뭉치거나 얼룩반점이 생기는 ‘모틀링 현상’이 이어졌다는 것. 

양씨는 수차례 한국후지제록스 측에 AS를 요청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의뢰받은 제품을 원하는 품질로 제작하지 못해 거래처로부터 납품을 거절당하고 영업을 못하는 등 큰 손실을 입게 됐다고 한다. 

이에 양씨는 한국후지제록스 측에 인쇄기 반품을 요청했다. 제품설치가 완료된 지 한달여가 지난 2007년 1월 22일, 한국후지제록스 측에 ‘공급계약해지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매매잔금 지급 소송’이었다. 한국후지제록스 측이 양씨를 상대로 ‘인쇄기 미수금 등 잔대금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한국후지제록스 측은 소장을 통해 △계약서에 명시된 기간(제품검수 후 14일 이내)이 지나 문제 제기를 한 점 △인쇄기 설치 직후 ‘아이젠3’를 이용해 의뢰받은 한복카탈로그를 제작하여 정상적으로 납품했다는 점 △동종의 기계를 납품받은 6개 업체에서 별다른 하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 △인쇄기 품질에는 문제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제품에는 문제가 없으니 매매잔대금을 납부하라’고 요구했다.

양씨는 다른 업체들과 달리 내용증명을 보내며 품질문제에 강하게 반발하자 자신의 숨통을 조이려고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한국후지제록스 측은 “양씨가 (인쇄기) 운영을 잘못하고 있고, 다른 업체들은 정상적으로 납품하고 영업하고 있다”며 “양씨는 고의적으로 해당 인쇄기의 계약 파기 및 매매대금을 지급하지 않을 목적으로 (하자 등) 허위주장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복사기·팩시밀리·디지털인쇄기 등을 제조 판매하는 한국후지제록스가 2006년 최신형으로 홍보하며 야심차게 마케팅 전략을 펼쳤던 디지털인쇄기 ‘iGen3(아이젠3)’.  / 후지제록스
복사기·팩시밀리·디지털인쇄기 등을 제조 판매하는 한국후지제록스가 2006년 최신형으로 홍보하며 야심차게 마케팅 전략을 펼쳤던 디지털인쇄기 ‘iGen3(아이젠3)’. / 후지제록스

◇ 양씨 “사건 증거조작, 법원 기망한 갑의 횡포”

결국 법원은 2008년 11월, 한국후지제록스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한국후지제록스)의 손을 들어줬다. 양씨가 즉각 항소했지만 2심 법원은 이를 기각(2010년 3월) 했다. 

당시 판결문에는 “아이젠3를 사용해 인쇄한 인쇄물에 얼룩반점이 생기는 모틀링 현상이 발견된다”거나 “업체의 카탈로그에 의하여 보증한 일정한 품질과 성능을 갖추지 못한 경우 하자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언급한 부분이 있지만, 법원은 한국후지제록스 측이 제출한 증거들을 토대로 “해당 인쇄기의 품질에는 문제가 없다고 봐야 한다”고 최종 판단했다. 

품질 이상을 주장한 증인들의 증언에 대해서도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품질 이상으로 단정하기 부족하고 증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한국후지제록스가 제출한 인쇄기 감정평가 결과가 더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양씨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한다. 양씨는 수년간 억울함을 증명할 자료들을 수집했다. 그리고 최근, 한국후지제록스가 소송에 제출한 증거 중 일부가 허위자료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양씨는 우선, 한국후지제록스 측이 제출한 A업체의 세금계산서와 대금청구서 및 사실확인서 등을 지목했다. 

그동안 한국후지제록스는 “아이젠3를 사용한 업체들이 부도나거나 제대로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양씨의 주장에 대해 “아이젠3를 구입한 7개 업체 중 양씨를 제외한 6개 업체의 인쇄기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강조해왔다. 그리고, 이에 대한 ‘증거’라며 6개 업체 중 한 곳인 A업체의 사실확인서, 세금계산서, 모 고교졸업앨범 납품과 관련한 대금청구서 등을 법원에 제출했다. 한국후제지록스는 “아이젠3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고, 제품도 생산·납품하고 있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출된 자료는 A업체가 이미 다른 회사 인쇄기(HP)로 교체한 뒤 영업한 내역으로, 양씨는 전문가 감정을 통해 당시 납품된 졸업앨범이 아이젠3의 인쇄방식(디지털인쇄)이 아닌 오프셋 인쇄방식으로 제작됐음을 확인했다. 

양씨는 한국후지제록스가 ‘6개 업체 모두 아이젠3로 정상영업을 하고 있다’고 주장해놓고 A업체 한 곳의 자료만 제출한 점도 석연치 않다고 주장했다. 조작 내지는 공모가 있었을 것이라는 게 양씨의 주장이다. 그는 이와 관련된 증거 역시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후지제록스 측이 ‘인쇄기(아이젠3)를 전혀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다’던 업체들 중 일부는 정상적인 영업을 하지 못하고 폐업하는 등 더 이상 인쇄기를 사용하지 않거나, 하자로 인한 반품이 이뤄진 사실도 확인했다. 공교롭게도 반품은 양씨의 항소심이 종결(2010년 3월)된 직후 이뤄졌다. 

또, 양씨가 ‘아이젠3’로 한복카탈로그를 제작해 정상 납품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자료를 확보했다. 당시 한국후지제록스는 “양씨가 아이젠3를 이용해 정상적으로 납품(제작)한 증거”라며 한복카탈로그 자료 일부를 제출했다. 그러나 양씨에 따르면, 이는 한국후지제록스 영업사원의 부탁으로 아이젠3를 이용해 인쇄한 ‘테스트물’이다. 거래처로부터 정식 인쇄를 의뢰받고 제작, 납품한 출력물이 아니라 단순한 ‘테스트용 샘플’이라는 것. 양씨는 이와 관련한 증언과 증거자료를 모두 확보했다.  

2006년 3월 당시 한국후지제록스 측은 언론보도 통해 “지난 2003년 미국 및 유럽 시장에 소개돼 디지털 컬러 인쇄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제품”이라며 “세계 최고의 디지털 컬러 인쇄기 아이젠3 출시로 디지털 인쇄시장이 급속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 한국후지제록스
2006년 3월 당시 한국후지제록스 측은 언론보도 통해 “지난 2003년 미국 및 유럽 시장에 소개돼 디지털 컬러 인쇄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제품”이라며 “세계 최고의 디지털 컬러 인쇄기 아이젠3 출시로 디지털 인쇄시장이 급속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 한국후지제록스

◇ 소송사기 이어 ‘재심 청구’ 계획  

이 외에도 양씨는 아이젠3를 구매한 업체 대표들로부터 ‘해당 인쇄기를 구매한 뒤 품질문제로 어려움 겪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진술서와 녹취록 등을 확보했다. 

그는 “한국후지제록스는 아이젠3 인쇄기가 정상적으로 운영 중이라는 허위주장을 하면서 증거를 조작, 민사소송을 승리로 이끌었다”며 “이 사건은 증거를 조작하여 법원을 기망한 갑의 횡포가 그 본질”이라고 말했다. 

양씨는 지난 10월 30일 정광은 전 한국후지제록스 대표를 비롯해 당시 한국후지제록스 지배인, 그리고 A업체 대표를 ‘소송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소송사기’는 법원을 속여 자기에게 유리한 판결을 얻음으로써 상대방의 제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취하는 범죄를 말한다. 검찰은 해당 사건에 대해 남대문경찰서에 수사 지휘를 내린 상태다. 

양씨는 이를 토대로 조만간 ‘재심’을 청구한다는 계획이다. 허위증거로 재판부를 기망해 얻어낸 판결인 만큼 당시 사건에 대해 다시 심리해야한다는 것이다. 

다만 양씨가 확보한 자료는 ‘사기소송’을 증거하기 위한 자료들로, 한국후지제록스의 인쇄기(아이젠3)의 품질 하자 문제와는 사실상 별개의 사안이다.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진다 하더라도 아이젠3의 품질문제를 놓고 또다시 공방을 벌여야 하는 만큼 길고 지루한 싸움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그는 “진실은 승리한다고 믿는다”고 자신했다.   

“제작제조를 업으로 하는 인쇄업체 등 소상공인들에게는 기반기계시설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사실상 선택할 수 있는 생산기계 제조업체는 몇 되지 않는다. 한국후지제록스는 영세업체들의 이 같은 한계점을 악용했다. 나는 인쇄기를 잘못 구입한 죄로 전재산을 잃고 신용불량자가 되었으며 가정까지 파탄 났다. 하지만 진실은 승리한다고 믿는다. 다시는 이와 같은 대기업의 횡포와 갑질이 반복돼선 안 된다.”

무려 12년. 지루하고 험난한 싸움이 이번엔 마침표를 찍게 될까. 양씨의 재심 청구에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한편 한국후지제록스는 1974년 설립된 코리아제록스㈜가 전신이다. 한국 동화산업과 일본 후지제록스가 각각 지분 절반씩을 투자해 설립됐다. 이후 1998년 일본 후지제록스측이 100% 지분을 인수하면서 후지제록스의 자회사가 됐다. 2018년 3월 31일 현재 후지제록스(64.29%)와 후지제록스아시아퍼시픽(35.71%)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일본 후지제록스 본사는 내년 3월 31일 한국후지제록스 인천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3월 이후 한국 내 생산은 하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