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찾은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모습. 3층 창문은 전부 불에 타 까맣게 그을렸다. /조나리 기자
지난 26일 찾은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모습. 3층 창문은 전부 불에 타 까맣게 그을렸다. /조나리 기자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37만. 전국에서 집이 아닌 곳에서 거주하고 있는 가구 수다. 이중 대다수는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고, 판잣집과 비닐하우스에 거주하는 이들도 있다. 고시원은 수도권에 밀집돼 있는데, 서울에 있는 고시원의 30%가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도권까지 더하면 종로 ‘국일고시원 참사’ 위험은 더 높아지는 것.

지난 26일 이한솔 민달팽이유니온 사무처장과 함께 국일고시원을 찾았다. 시민들이 놓고 간 국화꽃과 편지에는 어느덧 먼지가 쌓여있었다. 하지만 고시원은 입구서부터 여전히 쾌쾌한 냄새가 났다. 국일고시원 화재로 희생된 7명은 모두 50~60대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다. 사연이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아마도 그들이 일생에 오랜 시간을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지냈을 것이란 짐작 때문일 것이다.

지난 26일 오전 국일고시원 앞에서 만난 이한솔 민달팽이유니온 사무처장이 청계천 일대를 가리키며 고시원 주거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이 처장 뒤에 고시원과 쪽방, 여인숙 등의 화재참사 방지대책을 마련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조나리 기자
지난 26일 오전 국일고시원 앞에서 만난 이한솔 민달팽이유니온 사무처장이 청계천 일대를 가리키며 고시원 주거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이 처장 뒤에 고시원과 쪽방, 여인숙 등의 화재참사 방지대책을 마련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조나리 기자

이한솔 사무처장은 “그분들은 고시원밖에는 선택할 수 없었고, 고시원 같은 공간은 화재가 발생하면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며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더욱 먹먹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40평에 방만 30개... 고시원, 화재 피해 클 수밖에”
서울시, 노후고시원 스프링클러 설치 사업 확대

“예전에 이 일대 청계천에 사람들이 모여 살았는데, 도시 개발로 다 정리가 됐다. 그렇다고 사람일도 다 잘 정리가 된 건 아니다. 결국 마땅한 주거공간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몰렸던 공간이 고시원이다. 종로 쪽은 주로 중장년 층이 많이 몰려있다.”

이 사무처장은 국일고시원 앞 도로에서 청계천 일대를 쭉 가리키며 이 같이 말했다. 그의 뒤에는 고시원, 쪽방, 여인숙 등의 제2의 국일고시원 참사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이 처장은 “이곳의 고시원들이 보통 40평 가량에 방이 30개 정도가 있다. 복도까지 합쳐서 사실상 1평도 안 되는 방들”이라며 “국일고시원은 복도 앞쪽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안쪽에 있던 분들이 빠져나오기 어려워 피해가 더 컸던 사례였다”고 말했다.

1평도 안 되는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고시원은 한 방에서 화재가 나도 옆방으로 불이 붙기 쉽다. 때문에 2009년 고시원에도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 하도록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소급적용이 되지 않아 그 전부터 영업을 시작한 국일고시원은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고시원 운영자의 제안이 있었지만 건물주는 거절했다.

국일고시원 앞 추모 공간에 놓여진 스프링클러. /조나리 기자
국일고시원 앞 추모 공간에 놓여진 스프링클러. /조나리 기자

이에 대해 이 처장은 “그런 건물주들이 많을 것이다. 의무도 아닌데 굳이 자기 돈 들여서 설치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라며 “그렇다고 설치를 주저할 정도로 비싼 것도 아니다. 서울은 워낙 고시원이 많다보니 더 이상 주저할 상황이 아니다. 법 개정은 물론 시 예산을 잘 짜서 행정적으로도 모두 설치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마침 서울시가 노후고시원 스프링클러 무료 설치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30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는 전날 2019년 노후고시원 안전시설 설치 지원사업 예산안 심사에서 시가 요청한 4억3,000만원을 15억원으로 증액해 가결했다. 이는 올해 예산 6억원보다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월세조차 제때 내지 못했던 국일고시원 입주자들”
“정부·지자체, 취약계층 위한 주거정책 마련해야”

단순히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거 취약계층들의 안정망을 갖춰나가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29일 국회에서 열린 ‘주거복지로드맵 1년 평가 토론회’에서는 정부의 정책이 취약계층이나 지역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신혼희망타운 등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마저도 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혜택이 전무하다는 것.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고시원 입주민 A씨는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공공임대주택도 바라보기 힘들다”면서 “몇백만원이라도 모을 수 있는 사람들은 원룸이라도 살 수 있지만 그나마도 안 되는 사람들은 천상 고시원이나 쪽방촌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말 어려운 사람들도 주거혜택을 느낄 수 있도록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 정책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실제로 국일고시원의 월세는 28만~32만원이었지만, 이마저도 제때 내는 이들이 절반도 되지 않았다. 고시원 원장 구모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시원 경영이 점점 힘들었지만 소외된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밥과 반찬을 늘 챙겨줬다”면서 “올해 처음으로 2개월 동안 건물주에 임대료도 내지 못했다. 임대차계약이 끝나면 운영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참사가 났다”고 토로했다.

이한솔 처장은 “우리나라는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최소한의 주거권 보장 제도가 사실상 없는 실정”이라며 “결국 그런 분들을 고시원이라는 공간으로 몰아넣고 방치한 셈이다. 고시원이든 어디든 사람이 사는 곳만큼은 최소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정부나 지자체에서 각각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일고시원 앞에는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들이 남긴 추모 글귀와 정부에 주거권 마련을 촉구하는 글들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 /조나리
국일고시원 앞에는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들이 남긴 추모 글귀와 정부에 주거권 마련을 촉구하는 글들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 /조나리 기자
국일고시원 앞을 지나던 시민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추모 공간을 바라보고 있다. 한 시민은 편지지에 '돌아가신 일곱 분 모두 천국에 가시길 바란다'고 남겼다./ 조나리 기자
국일고시원 앞을 지나던 시민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추모 공간을 바라보고 있다. 한 시민은 편지지에 '돌아가신 일곱 분 모두 천국에 가시길 바란다'고 남겼다./ 조나리 기자

이날 몇몇 시민들은 국일고시원 앞을 지나다 발길을 멈추고 추모 공간에 마련된 글귀를 읽기도 했다. 고시원 앞에는 주거복지단체들이 남긴 글은 물론 일반 시민들이 남긴 글귀들도 있었다. 또한 물이 필요했을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생수를 놓고 간 시민도 있었다.

이 처장은 앞서 몇 차례 국일고시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피해를 당해도 자신의 처지나 권리를 이야기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면서 “한창 고시원 화재로 시끄러웠을 때도 기자회견을 열고 방지대책을 외친 것은 시민단체였지, 고시원 거주자분들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오래 동안 안타까운 사건으로 기억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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