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에게 한국정치는 여전히 불모지다. 39세의 대통령을 탄생시킨 프랑스의 사례는 먼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젊은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이 옳다는 게 아니라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게 문제다. 유력 정치인들이 ‘청년’이라는 타이틀로 인재를 영입하지만 병풍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하지만 ‘청년’ 타이틀을 거부하고 바닥부터 ‘상향식 정치’의 길을 걷는 젊은 정치인들도 있다. 좌충우돌한 이들을 통해 한국정치의 현실을 진단해봤다. <편집자주>.

서울 서대문구 구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는 주이삭 바른미래당 서대문구의원. / 주이삭 의원실 제공
서울 서대문구 구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는 주이삭 바른미래당 서대문구의원. / 주이삭 의원실 제공

[시사위크=김민우 기자] "나오세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바른미래당(옛 국민의당)을 출입했던 국회 출입기자라면 현장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목소리다. 공보실 간사로 출입기자와 항상 소통하고, 때로는 다투기도 했던 주이삭 서울 서대문구 구의원(바른미래당)이 이 발언의 주인공이다.

주 의원은 정당의 당원부터 시작해서 의원실 보좌진, 당 사무처 당직자를 거쳐 기초 의원까지 역임했다. 정치권 밑바닥부터 성장하고 있는 '정치인 육성'의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공보실 주 간사'는 이제 어엿한 기초의원으로 서대문구의 살림을 책임지는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6·13 지방선거 이후 <시사위크>와 오랜만에 만난 주 의원은 최근 행정사무감사 시즌을 맞아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한다. 밤 11시 넘어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라 입술도 텄다. 감사를 '당하는' 공무원들도 걱정된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최근 여야 정당은 정치학교를 만드는 등 정치인 발굴 및 육성에 나서고 있다. 외부인사 영입만으로는 정당의 연속성이 담보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당의 인재육성 시스템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주 의원 스스로도 "저는 운이 정말 좋은 케이스"라고 평가할 정도다.

"의원실에 근무하면서 총선을 치러보니 지역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됐다. 정당의 당직자로 일하면서 중앙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했고, 공보실 근무 경험을 통해 언론과 정치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나고 자란 곳(서대문구)에서 정치를, 기초분야부터 할 기회를 얻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분야는 다 거쳐본 정말 운이 좋은 경우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정당이 정치인을 육성한다면 그 대상은 청년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정당은 이들에게 대부분 '청년정치인'이라거나 '청년비례대표'라는 타이틀을 씌운다. 정당이 운영하는 정치학교에서 이뤄지는 유명 정치인 초빙 강연도 실제 의정활동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각 정당이 추구하는 이념이나 정당의 역사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실제 의정활동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쌓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주 의원의 지적이다. 소위 청년층을 대표한다는 '청년정치인'이 아닌 '정치하는 청년' 육성에 정당이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도 일반 당원에서 시작해서 정당의 대학생위원회, 청년활동을 해봤다. 당시의 제가 '청년정치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마해서 당선됐다면 과연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일 잘하는 정치인이 됐을까. 지금의 제가 봐도 그건 아니라고 본다. 지역에 가서 자기 이야기를 제대로 하고, 예산안을 볼 수 있고, 조례 정도는 만들 줄 알고, 언론과 어떻게 대화하는지, 보도자료정도는 작성할 줄 아는 그런 정치인을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2017년 국민의당 공보실 간사로 활동하던 시절의 주이삭 서대문구의원. / 주이삭 의원 제공
2017년 국민의당 공보실 간사로 활동하던 시절의 주이삭 서대문구의원. / 주이삭 의원 제공

하지만 정치를 꿈꾸는 청년이 이러한 기회를 접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정당도 정치인 육성이 미비하다보니 선거를 앞두고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한다. 정당 정치인 육성 시스템이 없다보니 외부 영입인사를 둘러싼 계파 논란과 공천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주 의원은 정당은 청년들에게 정치 현장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청년들 스스로도 '줄 세우기' 비판을 받는 현행 청년정치 제도에 기대려는 생각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분야, 가령 보좌진이나 당직자, 지역활동 등의 기회가 없다면 간접적으로라도 실무를 해볼 수 있게 기회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저를 도와주는 비서를 두고 업무를 같이 배운 뒤 나중에는 같이 출마하는 도전의 기회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제도가 정당 차원에서 뒷받침됐으면 좋겠다. 이것을 해내는 정당 지도부가 정당 혁신을 제일 잘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청년들도 현실 정치, 정치 실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단순히 '제게 기회를 한번 달라'하는 그런 안이한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공부해야 한다. 아니면 자기만의 특별한 경력을 쌓아야 한다. 청년정치인 중 자신을 정치적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스스로의 능력을 굉장히 평가절하 하는 행동이다. 자신이 기존 정치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진정성 있게 얘기하면 분명히 믿고 따라주는 분들이 있다. 이렇게 정치를 하는 청년이 늘어나면 앞으로의 청년들에게도 큰 용기가 될 것이다."

30일 행정사무감사 시즌이 끝나면 내달 3일부터 지역구 예산안 심사가 시작된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바쁜 일정에 그만 놓아주기로 했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왜 지방선거에 출마했는지, 앞으로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지 물어봤다.

"상식적인 정치가 우리 동네에서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출마했다. 국민의당과 바른미래당 당직자 시절에는 모든 국민을 위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는 정치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지금은 당리당략을 떠나 서대문 구민을 위해 일하고 싶다. 어떤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정책이나 비판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더 나은 사회,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합당한 발언만 하겠다. 그런 정치인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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