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니스트
하도겸 칼럼니스트

본명이 롭상 텐진인 삼동린포체는 1939년 11월 5일 동티벳의 졸 지역에서 출생했다. 5세가 되던 해 간덴 데첸링(Gadhan Dhechenling) 수도원에서 제 4대 삼동 린포체님의 환생으로 인정받았다. 12세부터 나왕진빠(Ngawang Jinpa) 등의 스승으로부터 영적 수업을 받기 시작한 린포체는 중국이 티베트를 침략 후, 14대 달라이라마와 함께 인도로 정치적 망명을 했다. 1959년 같은 해 겨울, 린포체는 보다가야(Bodh Gaya)에서 링린포체, 티장린포체, 세콩린포체, 달라이라마의 위대한 스승 네분께 비구계를 받았으며 1960년, 린포체는 달라이라마의 권유로 다람살라(Dharamshala)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를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1991년부터는 티베트 국회 의장으로, 2001년부터는 중앙 티베트 행정부의 총리(Kalon Tripa)를 역임했다.

2011년까지 망명정부를 이끌었던 삼동 린포체(Samdhong Rinpoche)는 총리였을 때 중요한 사안들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방식은 민주적 방식으로 하되, 달라이 라마의 조언을 가장 중요시 여겼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티베트인들의 존경을 모은 달라이라마는 망명지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존경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진은 달라이라마와 삼동린포체(우)의 모습 / 하도겸 칼럼니스트

삼동 린포체는 달라이라마의 조언을 조금의 의심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달라이라마를 향한 근거 없는 비판과 명예훼손에 대해 논리적으로 단호하게 대응하여, 삼동린포체 외에 달라이 라마의 심오한 사상을 이해하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티베트에는 ‘머리를 받치는 어깨’라는 말이 있다. 린포체가 달라이라마를 섬기는 방식이 이와 같았다. 린포체가 국회의장과 총리일 때 망명정부의 정치시스템을 민주주의로 바꾸고, 법치주의 시스템과 입법·사법·행정의 삼권 분리 체제를 완성시켰다. 이 결과 티베트망명정부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 국가의 제도를 갖출 수 있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2011년까지 망명정부를 이끌었던 삼동 린포체는 총리였을 때 중요한 사안들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방식은 민주적 방식으로 하되, 달라이 라마의 조언을 가장 중요시 여겼다고 한다. / 하도겸 칼럼니스트 

린포체는 이외에도 여러 티베트 학교와 대학교에서 영적지도자, 교사, 교장 등으로 있으면서 많은 학생들을 훌륭하게 키워 냈다. 다수의 학생들이 티베트 망명정부에서 일하고, 전세계에서 영적교사와 학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삼동린포체를 존경하며 스스로를 향한 긍정적 자긍심과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달라이라마 곁에 삼동린포체가 함께 하지 않았다면 티베트 망명정부의 오늘은 어땠을까는 상상하기도 힘든 부분이다.

84세의 고령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달라이라마는 삼동린포체를 가장 중요한 존재로 섬기며, 또한 린포체는 변함없는 부지런함으로 달라이라마의 공헌과 가르침에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 수많은 설법 요청을 거절하다 2014년 달라이라마의 권유를 받고서야 설법을 시작한, 이 티베트의 위대한 스승 삼동린포체가 오는 12월 12일부터 20일까지 방한한다. 사단법인 나란다불교학술원(원장 박은정)이 경주 황룡원에서 개최하는 12월 12일부터 4박5일간의 보리도차제실참대법회에서 법문을 하기 위해서다. 20세기 가장 훌륭한 철학자이자 영적 스승으로 평가 받는 지두 크리슈나무르티(1895-1986)와도 수년간 교류하며 진리를 탐구했던 티베트학의 대석학이자 한번도 수행의 끈을 놓지 않았던 진정한 수행인 삼동린포체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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