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여야 의원, 3일 토론회서 키코 사건 재수사 및 피해기업 구제 필요성 강조

‘키코 재조사 및 피해기업 구제방안 대토론회’가 3일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실에서 열렸다. 사진은 축사를 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 /시사위크
‘키코 재조사 및 피해기업 구제방안 대토론회’가 3일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실에서 열렸다. 사진은 축사를 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오른쪽 두 번째). /시사위크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수많은 수출 중소기업들을 부도 위기에 빠트렸던 파생금융상품 ‘키코(KIKO)’ 사건이 재조명받고 있다. 지난 2010년 대법원이 원고(은행) 측의 손을 들어줬던 해당 사건에 대해 피해기업뿐 아니라 시민단체와 정치권 일부에서도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3일 국회 제1간담회실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실의 주최로 ‘2018 금융감독원 키코 재조사 및 피해기업 구제방안 대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키코 사태로 도산 혹은 극심한 경영난을 겪었던 기업 대표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 그리고 여‧야 국회의원들이 참석해 키코 사건 재수사와 피해기업 구제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사회를 맡은 송종운 키코 공동대책위원회 자문위원은 “이번 토론회의 핵심은 키코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라며 재수사‧피해기업 구제 논의가 계속되기 위해 참석자들이 의견을 모아줄 것을 요청했다. 

◇ “키코 사건, 재수사 시급… 전수조사 통해 실태파악 해야”

토론회에 참석한 정치권 인사들은 키코 상품이 구조적으로 기업 측에 불리하게 설계됐으며, 판매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바른미래당 박선숙 의원은 “키코 상품을 판매한 은행의 그 어떤 직원도 상품구조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10년 전 한국에선 키코 상품을 완벽히 파악할 전문가도 몇 없었다”며 키코 상품의 판매를 ‘명백한 불완전판매’라고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국가의 환율정책 실패와 은행의 도덕적 해이, 사법부의 사법 농단, 그리고 검찰‧금융당국의 불철저한 수사라는 다섯 가지 실패가 결합된 결과”라고 진단하며 검찰과 금융당국이 재수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2010년 대법원 판결 이후 키코 사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사실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특히 각 의원실 및 금융감독원과 시민단체가 추산한 키코 피해기업 실태가 제각기 달라, 현재도 피해를 받고 있는 중소기업들에 대한 실태조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0년 8월 자체 조사 결과 키코 계약을 체결했던 1,000여개 수출기업 중 738개 기업이 도합 3조2,247억원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발표했다. 반면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는 피해액이 최소 10조원, 도산과 상장폐지 등으로 소송에 참여하지 못한 기업과 2차 피해까지 더할 경우 2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는 중이다.

문귀호 전 21세기조선 회장이 키코 사태로 국내 중소조선업계가 입은 피해를 설명하고 있다. /시사위크
문귀호 전 21세기조선 회장이 키코 사태로 국내 중소조선업계가 입은 피해를 설명하고 있다. /시사위크

조붕구 키코 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키코 피해액이 제대로 추정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바로 키코 사건의 현주소”라는 입장을 밝혔으며,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피해자인 중소기업이 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피해규모 전수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의견을 보탰다.

피해기업들이 돈줄을 쥔 은행과의 갑을관계 때문에 피해사실을 알리지 못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키코 사태로 피해를 입은 중견 조선사들을 대표해 토론회에 참석한 문귀호 전 21세기조선(2013년 파산) 회장은 키코 피해규모를 약 3조원으로 추산한 금융감독원의 2010년 조사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피해 실태를) 긴밀하게 조사하지 않았다. 조선업계에서 발생한 피해만 4조원에 달한다”고 반박했다. 문귀호 전 회장은 21세기조선이 키코 계약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은 후 은행관리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은행 측이 민·형사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으며, 이 때문에 피해기업으로서의 억울함을 호소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 기업·시민단체는 “금융당국이 나서야”… ‘대타협 필요’ 의견도

피해기업 대표들과 시민단체 측은 금융감독원‧산업은행‧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기관이 피해기업 구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했다. 특히 금융거래 감독을 주관하는 금융감독원이 은행권의 파생상품 거래를 더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제시됐다.

민간 경제연구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정승일 이사는 “리만브라더스 사태 당시 위험성 높은 파생상품을 구입한 것은 (전문성을 가진) 펀드매니저들이었다. 불완전판매로부터 일반 소비자들을 보호하려면 단순한 정보 제공‧공시 의무화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을 냈다. 금융감독원이 직접 나서 금융상품이 소비자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거나, 또는 판매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현재 보험업에 대해서만 시행되고 있는 불완전상품 판매 감독 제도를 은행권에도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피해기업에 대한 구제 문제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산업은행의 역할론이 제기됐다. 키코로 인해 피해를 입은 중견조선사들이 주거래은행으로부터 선수금 환급보증(RG) 발급을 거부당했다는 문귀호 전 회장의 발언이 근거가 됐다. 정승일 이사는 “단기실적 위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는 은행들은 결국 RG를 발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산업은행 주도로 (RG 발행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5조원 규모의 RG(대손충당금 2,500억원)를 통해 조선업 일자리 5만개‧연 수출액 50~60억달러 증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한편 토론회를 주최한 표창원 의원은 “진상규명은 키코 사태 해결의 일부다. 소송·처벌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외환파생상품을 판매한 은행과 피해기업이 화해에 성공한 일본의 사례가 예시로 제시됐다. 일본 전국은행협회는 2009년 엔고 현상으로 외환파생상품에 가입한 1만900개 기업이 막대한 손해를 입자 은행 측이 손실금의 50%를 부담하는 중재안을 내놨고, 양측이 중재안을 받아들여 피해기업 구제가 빠르게 이뤄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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