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오른쪽 다섯 번째) 공정거래위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편의점업계 '근거리출점 자제를 위한 자율규약' 선포식에 참석해 편의점업계 대표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상조(오른쪽 다섯 번째) 공정거래위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편의점업계 '근거리출점 자제를 위한 자율규약' 선포식에 참석해 편의점업계 대표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편의점업계가 사실상 근접출점을 제한하는 내용의 자율규약을 마련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편의점 시장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율규약 제정에 참여한 편의점협회는 지에스리테일, BGF리테일, 코리아세븐, 한국미니스톱, 씨스페이시스 등의 회원사를 두고 있다. 또 협회에 소속되지 않은 이마트24도 규약에 참여하기로 하면서 영향을 받는 편의점은 전체의 96%(3만8,000여개)에 달하게 됐다.

가맹점업계에서는 이번 규약에 대해 가맹본부의 의지 표명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점수를 주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규약내용에는 ‘알맹이’가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슨 내용일까.

◇ 편의점 자율규약, 무슨 내용 담겼나

공정위는 ‘한국편의점산업협회’(이하 편의점협회)가 편의점 업계의 과밀화 해소 등을 위해 심사를 요청한 자율규약 제정(안)을 승인했다고 4일 밝혔다. 공정위는 “이번 자율규약은 과밀화 해소와 편의점주 경영여건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출점·운영·폐점 전 과정에서 본사의 준수사항을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규약에 따르면 우선 편의점본사는 ▲출점단계에서 담배소매인 지정거리(담배판매소간 거리) 등을 고려해 근접출점을 지양하기로 했다. 이 제도는 2000년에 폐지된 것으로, 이번 규약에 따라 18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물론 현재도 동일브랜드의 경우 250m 이내에 근접출점을 할 순 없지만, 타 브랜드 간에는 적용을 받지 않아 실효성이 없었다.

앞으로 각 본사들은 개별적인 출점기준을 정보공개서에 기재해야 한다. 또한 출점예정지 인근에 경쟁사의 편의점이 있을 경우 주변 상권과 유동인구, 담배소매인 지정 거리 기준 등을 고려해 출점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담배소매인 지정거리는 담배사업법 및 조례 등에 따라 각 지자체별로 다르다. 서울시는 서초구(100m)를 제외하고 모든 지역이 50m의 거리 제한을 받고 있다. 다만 앞으로는 모든 자치구에서 100m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편의점본사는 ▲운영단계에서도 가맹점주와 공정거래 및 상생협력 협약을 체결하고, 이에 따라 필요한 지원을 이행해야 한다.

가맹점주들의 불만 가운데 하나인 영업시간 강요도 금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최근 3개월간 적자 등의 요건이 갖춰질 경우 심야시간대(오전 0시∼6시) 영업강요가 금지된다. 아울러 질병치료 등 불가피한 사유가 발생할 때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폐점단계에서는 점주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인한 경영상황 악화 시 영업위약금을 감경 또는 면제하기로 했다.

자율규약 내용이 지켜질 수 있도록 각 참여사들은 규약위반에 대한 조사·심사 등을 담당하는 규약심의위원회를 운영하기로 했다. 위원회가 위반 행위라고 결정할 경우 위반사는 15일 내 시정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근접출점을 제한하는 내용의 자율규약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업계의 가장 큰 쟁점이었던 최저수입보장제는 빠져있어 알맹이가 없는 규약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뉴시스
근접출점을 제한하는 내용의 자율규약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업계의 가장 큰 쟁점이었던 최저수입보장제는 빠져있어 알맹이가 없는 규약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뉴시스

◇ 업계 ‘최대 과제’는 빠져... 알맹이 없는 자율규약

공정위는 자율 규약을 충실히 이행하는 업체가 상생협약 이행평가에서 우수한 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표준계약서도 자율규약 내용을 반영하도록 개정하는 등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물론 공정위는 자율규약에 포함되지 않은 명절·경조사의 영업단축 허용, 최저수익보장 확대 등에 대해 향후 보완해 나갈 방침이다. 하지만 규약에 빠진 내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특히 이미 과밀화된 편의점 업계에서 가맹점주들이 그간 가장 강력히 요구했던 ‘최저수입보장제’가 빠졌기 때문이다. 이는 편의점 천국으로 불리는 일본에서 이미 시행 중인 제도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편의점 점포 심사가 까다로운데다 계약 때부터 최저수입 보장을 약속한다. 약속한 수익에 미치지 않을 경우 본사가 보전해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번 자율규약 역시 최저수입보장이 빠지면서 사실상 알맹이가 빠진 규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종열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정책국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이번 규약이 근접출점 금지가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이는 본사가 아닌 행정부의 영역”이라며 “결국 편의점 본사에서 가장 중요한 상생안은 빠졌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폐점시 위약금 역시 미래수익까지 준다는 것으로 당연히 없어져야 할 제도였다”면서 “반면 점주들이 가장 큰 부담을 갖고 있는 인테리어 잔존가 위약금은 폐지는커녕 감면 얘기도 없는 실정”이라고 아쉬워했다.

특히 영업시간 강제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짚지 못했다는 평가다. 영업시간 강제는 점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발생할 정도 심각한 문제였다. 때문에 이미 24시간 영업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관련법을 마련했다. 하지만 본사의 ‘꼼수 정책’으로 사실상 강요돼왔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본사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점주들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 전기료 등의 지원금을 지급한다면서 24시간 영업을 하는 점포에게만 지급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종열 정책국장은 “수익이 어려운데도 영업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원금이라도 받기 위해 24시간 영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면서 “원칙적으로 심야영업을 강제하지 못하게 하되, 본사의 지원금을 영업시간 대비 비율로 정해 19시간을 영업하는 점포에도 지원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무분별한 출점을 막고, 상생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매우 좋은 일이나, 구체적인 실현 내용은 다소 아쉬운 게 사실”이라며 “보완할 내용이 많은만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대화를 통해 문제들을 개선해 나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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