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총리가 국무회의에 앞서 가벼운 차담을 나누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총리가 국무회의에 앞서 가벼운 차담을 나누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불통’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야권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순방 중 열린 기내간담회에서 국내 현안에 대한 답변을 피했다는 점에서다. 자유한국당은 ‘기-승-전-북한’이라는 취지로 문 대통령을 비판했고,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국내현안을 외면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답변을 회피한 이유는 충분하다. 외교현안에 대한 질문만 하기로 사전에 기자단과 합의가 돼 있었으며, 순방 중 국내현안을 언급하는 것은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 또한 국내문제를 언급함으로써 중대한 외교현안들이 가려질 우려도 있었다. 무엇보다 철저한 사전준비 없이 대통령의 발언이 전달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조금의 실수라도 있을 경우 후폭풍을 감당키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3회 나온 국내현안 질의를 냉정하게 잘라낸 것에 대해 ‘반쪽짜리 간담회’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게 됐다.

◇ 대통령 대신 국정운영 방향 설명

이 때 전면에 나선 사람이 이낙연 국무총리다. 5일 저녁 출입기자단과 만찬 겸 간담회를 개최한 이낙연 총리는 경제와 외교, 남북관계 등 폭넓은 분야에서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과 그간의 소회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9월 평양공동선언의 의미, 김정은 연내 서울답방 전망, 위안부 문제와 한일관계, 내년도 경제정책 운용방안까지 언급했다. 1년 간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평화분위기 조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최저임금인상·노동시간단축에 따른 연착륙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은 반성했다.

이 총리의 부상은 문 대통령과 청와대도 바라던 바다. 인수위 없이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가 대소사를 대부분 처리하는 등 만기친람적인 측면이 있었다. 또 남북정상회담이라는 큰 사안이 발생하면서 청와대 집중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 청와대 집중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청와대도 이를 인지해 부처별로 권한을 분산하도록 노력했다. 이 총리는 그 과정에 중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한 문 대통령의 각별한 배려가 곳곳에서 읽힌다. 지난 6일부터 3주간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열지 않았던 문 대통령은 이 총리와의 주례회동만은 빼놓지 않고 챙겼다. 경제부총리에 홍남기 전 국무조정실장을 내정하고, 청와대 정책실장에 김수현 전 사회수석을 임명한 것도 이 총리의 추천을 받아들인 결과다. 또 이 총리가 해외순방에 나설 시, 대통령 전용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 정치적 운명 함께하는 동맹관계

여야통합으로 실시된 첫 차기대선주자에서 이낙연 총리가 이전부터 인지도가 높았던 다른 주자들을 제치고 오차범위 내에서 1위를 차지했다. /데이터=리얼미터
여야통합으로 실시된 첫 차기대선주자에서 이낙연 총리가 이전부터 인지도가 높았던 다른 주자들을 제치고 오차범위 내에서 1위를 차지했다. /데이터=리얼미터

국정운영의 한 축으로 이 총리의 역할은 지대하다. 주요 업무 중 하나인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야당 의원들과 치고받으며 노련한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 것이 대표적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문 대통령은 정책에 대한 야권 및 언론의 비판에 ‘할 말은 하라’는 지시를 자주했다. 수세적으로 당하고만 있지 말라는 얘기다. 문 대통령의 공개발언 중에도 “국민께 충분히 설명하라”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총리는 문 대통령의 가려운 곳을 확실하게 긁어주고 있는 셈이다.

국정운영뿐만 아니라 정무적 측면에서 이 총리의 도움을 무시할 수 없다. 민주당의 한 재선의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대표시절 가장 뼈 아파했던 부분이 참여정부의 호남홀대론이다. 국민의당에 참패한 뒤 위기는 현실이 됐다. 그래서 대선 때 호남에 가면 ‘호남중용’ ‘인재양성’을 입에 달고 다니셨다. 당선 뒤 ‘총리로 점찍어둔 분이 있다’고 하시고 바로 이 총리를 지명했는데, 호남민심은 남달랐을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국면에서 호남이 안전핀 역할을 하는 데는 이 총리의 존재감도 분명 영향이 있다.” 

물론 이 총리도 문 대통령의 후광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리얼미터가 처음으로 실시한 여야통합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15.1%로 1위를 기록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처음 대선후보군에 포함돼 바로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황교안 전 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상위권 경쟁자들이 이전 대선부터 후보로 언급돼 인지도가 높은 인물들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다. 국정운영상 대통령을 보좌하는 동시에 정치적으로 두 사람 사이 동고동락을 함께 하는 동맹관계가 형성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사에 인용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는 오마이뉴스의 의뢰로 지난 26일부터 30일까지 유무선 전화면접·자동응답 혼용방식으로 실시됐다. 전국 성인 2,513명이 최종응답을 완료해 7.7%의 응답률을 보였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 포인트다. 보다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참조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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