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진 한양대 갈등문제연구소장이 첫 발제자로 나서 '상가임대차분쟁의 특성과 조정위원회 설치 및 운영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조나리 기자
강영진 한양대 갈등문제연구소장이 첫 발제자로 나서 '상가임대차분쟁의 특성과 조정위원회 설치 및 운영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조나리 기자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궁중족발 사태’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또 다시 개정됐다. 주된 내용은 임차상인의 계약갱신권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한 것이다. 하지만 10년 뒤에도 발생할지 모르는 비슷한 분쟁들을 해결하기 위해 ‘상가건물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도 발족하게 됐다. 현재 주거임대차분쟁의 경우 전국 6개 법률구조공단 지부에서 조정 업무를 하고 있다. 이와 달리 상가임대차분쟁은 조정위원회가 없어 분쟁이 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러나 상가임대차분쟁이 조정위원회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더욱이 현행 제도상 조정위원회의 제대로 된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문제점도 있다. 이에 11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는 분쟁위원회의 향후 운영과 상가임대차분쟁의 유형, 분쟁을 더욱 키우고 있는 현행 제도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됐다.

박현정(왼쪽) 법무법인 도담 상가임차인소송센터장과 최재석 법률구조공단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상임조정위원이 간담회에 참석한 상인들의 고충을 듣고 있다. /조나리 기자
박현정(왼쪽) 법무법인 도담 상가임차인소송센터장과 최재석 법률구조공단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상임조정위원이 간담회에 참석한 상인들의 고충을 듣고 있다. /조나리 기자

◇ 분쟁조정위원회, 관건은 건물주 참여 여부

현재 상가임대차분쟁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분쟁의 조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현행 제도가 임대인에게 유리하게 설정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강영진 갈등문제연구소장에 따르면 명소소송에서 임대인이 승소하는 비율은 88.8%에 이른다. 소송만하면 대부분 승소하기 때문에 임대인(건물주) 입장에서 조정에 응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현재는 상가임대차분쟁의 경우 조정위원회가 없지만, 소송에서 절차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역시 8.6%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내년 4월부터 운영되는 조정위원회는 임대인의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에 대해 강영진 소장은 “주거임대차분쟁은 매우 사소하거나 소액인 경우가 많은 반면 상가임대차분쟁은 금액도 높고 생사를 가르기도 한다”면서 “결국 소송까지 가면 임대인이 대부분 승소하고 임차인은 패소로 끝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강 소장은 조정위원회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소장은 “상가임대차분쟁은 유형이 다 다르다. 물론 권리금 분쟁이 가장 많긴 하지만 다양한 유형의 분쟁에 대해 조정을 끌어낼 수 있는 유형별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 상인이 자신의 현재 분쟁 사례를 설명하며 강제집행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조나리 기자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 상인이 자신의 현재 분쟁 사례를 설명하며 강제집행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조나리 기자

박현정 법무법인 도담 상가임차인소송센터장은 “일부 임대인의 경우 임차인이 법리적으로 치열하게 준비해서 자신이 질 수 있다는 판단이 들면 조정에 참여한다”면서 “때문에 분쟁위원회에서는 증거조사를 강화할 수 있는 규정이 필요할 것 같다.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조정하라고 하면 결코 조정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아예 법적으로 강제 조정게시를 입법화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최재석 법률구조공단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상임조정위원은 “상가임대자분쟁위원회가 주택임대차분쟁위원회 규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사실상 당사자의 자유의사에 따라 조정을 게시할 경우 조정 자체가 열리지 않게 될 것”이라며 “의료분쟁의 경우 중장해나 사망 피해자가 발생하면 무조건 조정위원회가 열리게 돼있는 만큼 개선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토론회는 현재 분쟁을 겪고 있는 상인들도 참여해 각자의 의견을 발표했다. 서울 서촌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임대인들이 왜 조정에 나오지 않는가에 대한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면서 “법원에서 강제집행을 허용하고 있는데 누가 조정에 나오겠냐. 만약 강제집행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으면 임대인 대부분이 조정 자리에 나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상인은 “지금 대법원 소송만 남겨 놓고 있는데 임대인 승소율이 90%라는 말에 솔직히 놀랐다”면서 “임차인은 왜 권리가 없는 것이냐. 월세 다 내고 상권 만들어주니 나가라면 나가면 되는 것이냐. 대법원 판결을 포기해야 겠다”고 말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 “권리금 제도, 필요성 고민해볼 시점”

장기적인 관점에서 아예 권리금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재 상가임대차분쟁의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권리금 제도인데다, 관행에서 출발한 권리금 제도를 입법적으로 다루는 것이 지속해서 부작용을 낳고 당사자들에게 고통만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현경(왼쪽) 서울대 법이론연구센터 전임연구원과 김영리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공동운영위원장이 준비한 내용을 발제하고 있다. /조나리 기자
이현경(왼쪽) 서울대 법이론연구센터 전임연구원과 김영리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공동운영위원장이 준비한 내용을 발제하고 있다. /조나리 기자

이현경 서울대 법이론연구센터 전임연구원(법철학 박사)은 “권리금 관행이 2015년에 이르러 법제화가 됐지만 지금이라도 권리금의 필요성과 제도의 유지 여부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권리금은 당사자들의 자율적인 합의에 의해서 관행으로 굳혀졌음에도 지금은 당사자 간의 자율성은 없고, 법에 의해 승소냐 패소냐로만 귀결되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권리금은 악법의 문제가 아닌 법의 흠결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법 내지 관행을 인정하고, 법리적으로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면서 “애초의 법의 목적과 취지를 고려해 현재 존재하는 권리금 제도는 유지하되 궁극적으로 폐지하는 방향으로 흠결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리금을 점차적으로 줄이는 대신 대안 마련도 주문했다. 이 연구원은 “공적보험 또는 사보험을 통해 위험을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지역 상권에는 관심이 없는 부동산중개업소나 건물주들의 개입을 법적으로 차단할 필요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권리금 제도를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 맡기는 방안도 제기됐다. 김영리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공동운영위원장은 “장사가 잘되면 새로 들어올 사람이 권리금을 더 주더라도 들어오고, 안 되면 자연히 권리금은 줄어들 것”이라며 “문제는 일부 건물주들의 탐욕을 법적으로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장사 잘 된다고 쫒아내고, 1년 2년 잠깐 소유하고 수십억 차익을 남기고 되팔고 이런 갭투자를 하는 건물주 때문에 많은 상인들이 고통받고 있다”면서 “권리금 문제, 조정위원회 참여율 문제는 나중에 해결할 부분이다. 국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간담회는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과 서울대법이론연구센터, 한양대갈등문제연구소에서 주관했다. 좌장은 이강훈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부본부장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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